[엄길청 칼럼] 유무상통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21/05/12 [10:50]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없는 것에서 있을 것을 찾고,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이 나온다. 있으나 없으나 같다는 말이다. 이른바 유무상통, 소유나 욕망이나 허위나 위선을 탓하는 말이다.

 

자산을 구분하는 용어에도 유무는 존재한다. 토지나 건물이나 기계는 유형자산이고, 브랜드나 영업권이나 특허 등은 무형자산이다. 이 둘의 관계는 개념은 완전히 정반대이지만 서로 하나로 돌아가는 기업가치의 구성요소이다.

 

그러나 은행에 대출심사를 받거나 담보를 내려고 하면 대개는 유형자산을 많이 본다. 가진 것의 통념도 사실은 유형이 대다수이다. 몸 안에 담아두고 머리에 든 것을 무형이라고 한다면 요즘 같은 세상은 그런 사람이 핫(hot)한 사람이 되겠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입증이 어려운 일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젊은 국민들 사이에 도는 농담도 유형에 한이 맺힌 시대의 수사적 절규쯤이 된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나와서 아주 무형의 갑을 보여준다. 급기야는 장난 같은 도지코인까지 나와서 수십 세기를 기라성 같던 금은보화들, 즉 다이아몬드, 금을 비롯하여, 현대 산업의 갑이었던 석유, 면화, 밀, 그리고 기축통화라는 미국의 달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경험이 생각에 미치면 사물에도 이른다고 했다지만 정말 발칵 세상을 뒤집는 일들이 코로나의 창궐 속에 우리 머릿속을 마구 흔들고 있다.

 

한 때는 권리가 돈이 되는 시대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전개발이다. 지구는 누구의 것도 아닌데 지역마다 국가가 등장하여 자기 것으로 치부하며 산다. 그런 국가의 권력을 가지면 땅의 권리를 팔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셈이다.

 

세기적인 투기의 흑 역사에는 미시시피 버블이란 증권투자 사기사건이 있었다. 남해주식회사란 증권투자 사기사건도 있었다. 모두 미지의 땅에 대한 개발권리를 국가로부터 받아서 이를 대중에게 증권으로 만들어서 시중의 돈을 끌어 모은 사건들이다.

 

코로나로 외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온 지구촌에 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르고 급기야는 코인이 오른다. 마치 과거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에 농촌에서 농한기인 겨울이면 집안에서 화투나 골패를 치던 것처럼 집집마다 개인마다 수중의 돈이나 재물을 가지고 쓰기도 하고 투기도 한다. 그리고 보면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

 

주식은 권리이고 집은 유형인데 코인은 무형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무형적인 디지털공간이다, 사실 부동산은 토지기반의 유형공간이다. 주식은 기업이 가진 유형자산과 무형자산 둘이 다 들어있다. 그러니 유무상통인 셈이다.

 

집도 사두기만 하고 빌려주면 실제는 집의 권리를 가진 무형이다. 또한 테슬라에서 코인으로 전기차를 사면 그 가치는 바로 무형에서 유형으로 이동한다. 거래나 투자는 모든 것이 권리이동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입증이 된다. 그 자유가 국가에서 나오고 국가의 관계에서 확대가 된다. 이래서 앞으로 가면 갈수록 국가권력의 중심부로 미래엘리트들이 힘주어 이동할 이유가 된다.

 

작금의 2030 MZ세대의 정치행동 붐은 코로나의 탓도 있지만 그런 점에서 아주 자연스런 역사적인 관심사의 이동현상이다. 이미 지난 서울부산 시장보선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국가를 젊은이들이 점점 관리하기 시작하면 기왕의 기성세대가 이룬 유형자산의 공유를 원하거나, 새로운 창조적 무형자산의 인정과 기존가치에의 대용확산을 원할 것이다. 곧 기성세대는 이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사상가인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역사전환의 동력으로 보았는데, 이제 한국은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충돌이나 갈등이 곧 새로운 국가운영 체제와 권력주체의 전환동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양상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고 나서 프랑스도 캐나다도 영국도 자주 젊은 지도자들이 나타나 수십 년을 거쳐야 가능할 사회변화를 단숨에 해치우는 일들이 아주 잦았다.

 

직장도 재산도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삽시간에 국가권력으로 이동하는 것이 만일 가능하다면 이 또한 유무상통의 세상사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나이가 중요한 국가지도자의 조건은 아니지만 지금 정치가십으로 대권에 논의되는 몇몇 정치인들은 이러한 미래사회 권력이동의 추정과는 개인적인 시대경험의 세계가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대전환은 다음 세대를 이해하는 자에게서가 아니라, 스스로 당면하고 있는 세대에서 더 절실하다는 점에서, 요즘 거론되는 미래지도자들의 정치 일정이 만만하고 여의할지는 마음이 걸린다.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는 지금 한치 앞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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