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용) 지하상가의 몰락

배재탁 | 입력 : 2024/12/23 [15:39]

 

 

(보행용) 지하상가의 몰락

 

얼마 전 참 오랜만에 명동을 나갔는데, “, 지금까지도?“ 한 경우가 있었다.

신세계 본점에서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르는 남대문로에 횡단보도가 없고, 오로지 지하보도만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지하보도로 건널 수밖에 없었다. 또 예전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을 시기에는 차가 우선이었다.

차가 귀하게도 했고 길이 좁기도 했지만, 당시엔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었다. 보행권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차가 오면 사람이 피하는 게 정상처럼 생각했다.

길을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차량의 흐름을 막는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교차로 같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만 설치했다. 그렇지 않은 곳엔 육교를 세웠는데, 육교에는 꼭 잡상인이나 거지들이 있었다. 오르내리기 불편했고, 겨울에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얼면 정말 위험했다.

 

한편 1974년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본격적인 지하 시대를 맞이했다. 이전에도 지하상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더 많은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고급화되었다. 대표적인 상가가 1979년 롯데쇼핑 지하 롯데일번가였다. 롯데쇼핑은 일본 롯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베껴와, 당시로선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 느낌이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당시로선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지하상가가 계속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이 소공동 지하상가와 지하철 2~4호선 상가 그리고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다. 특히 을지로 지하상가는 을지로입구역(롯데백화점)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무려 2.4km나 됐다.

 

당시엔 지하보도에 보행자도 많고, 지하상가 역시 중고급 수준의 상가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보행권이 중시되면서 지상에 횡단보도를 많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지하보도나 육교를 이용하기 불편하고, 특히 노인들의 경우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지상의 상가도 발전하고 인터넷 쇼핑이 크게 늘면서, 사람들이 굳이 공기도 나쁘고 불편한 지하상가를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거의 대부분의 지하상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의 지하상가는 저렴한 물건 파는 곳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파리 날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필자가 놀란 곳이 바로 명동입구 지하보도였다. 보행자가 많은 곳인데, 횡단보도가 없다니... 서울에서 가장 사람들로 붐비는 대로에 아직까지도 횡단보도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불편해도 할 수 없이 롯데영플라자와 명동입구 사이의 지하보도를 통해 길을 건너야 하고(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게이트는 있다), 따라서 지하보도가 붐비니 상가는 나름 유지하고 있었다.

 

지하철과 관계없이, 아직 남아 있는 보행용 지하상가가 서울에도 꽤 있다.(사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한때는 잘 나갔던 지하상가였겠지만, 지금은 흉물처럼 변해버렸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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