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예전의 노래를 살피면, 그 시대가 어떠했는 지 알 수 있다.
우선 ‘빈대떡 신사’(1943년, 한복남)를 보자. 필자 이상의 나이가 든 분들이 지금도 즐겁고 재미있게 부르는 노래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가지 돈이 없어 들어갈 땐 뽐을 내며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매를 맞는구나 으하하하 우습다 우헤헤헤 우습다... (이하 생략)
요즘이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하지만, 필자가 회사 생활하던 초기만 해도 웬만한 회사에선 양복과 넥타이는 필수였다. 오죽하면 1986년 6월항쟁 시 ‘넥타이 부대’가 등장했을 정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그 당시만 해도 양복이 귀했고 양복을 입으면 신사 대접을 받았나 보다. 양복을 입는 자체로 폼을 잡고 으스대며, 남을 깔보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런 신사가 요릿집에서 무전취식하고 도망가다 붙잡혔다. 그러고는 요릿집 문 앞에서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매를 맞는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무전취식을 했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매질을 하면 폭행죄가 되어 오히려 치료비 등 합의금을 줘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 ‘사적제재’가 허용됐던 사회인가보다. 한 대에 얼마씩 때렸을 것 같다.
그런데 더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이를 보며 재미있다고 웃는다는 점이다. ‘신사’는 매질을 당해 쌍코피 터지고 쓰러지는데, 지나던 남녀노소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꼴 좋다고 웃어댄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이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면, 얻어맞는 사람은 얼마나 치욕스럽고 괴로울까? 지금 같으면 웃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만약 노래 같았다면 ‘시민의식 부족’ 또는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양복 입고 똥폼 잡고 일반 서민을 개무시 하던 ‘신사’가, 요릿집에서 요리 먹고 도망가다 붙잡혀 맞는 꼴을 보니 일반 서민들은 속이 시원했나 보다. 즉 ‘맞아도 싸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부르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참 ‘잔인한 노래’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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