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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침묵이 돈이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1/02/15 [10:00]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사람들이 서로 내외를 하고 격식을 차리면 예의범절과 대중도덕이 자리를 잡게 된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대중의 건강을 위해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면 사회는 잠자던 공중도덕심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도덕과 진실을 담고 있는 가장 소중한 인간의 도구는 말이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말에는 인격도 담아야 하고, 말에는 공동의 가치도 투영되어야 한다. 특히 말을 공론으로 담아내는 미디어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개인 채팅이나 끼리끼리 단톡들이 등장하면서 표현이 은밀해지고 치기로 흐르더니 이젠 우리 사회가 대놓고 말을 함부로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글도 멋대로 쓴다. 표준 한글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훗날 역사의 기록을 어떻게 읽고 들으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가벼운 언행은 결코 역사에 남지 않는다. 일부 정치인들이 하는 허튼 말들의 위선과 가볍고 현란한 혀를 보고 있으면 그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반드시 그는 그의 앞에서 침묵하던 사람들의 돌에 맞는다. 이젠 기자나 공중파 방송의 작가란 사람들도 이런 시류를 놓치면 구독률이나 시청률이 내려갈까 봐 그런지 한낱 시중 인플루언서 같이 최소한의 언어 격식과 진실한 상식도 방기하고 넘어간다. 반드시 이 끝 간 데 없는 가볍고 무책임한 말들을 쏟아낸 허접하고 유치한 시대는 후일 그 무거운 방종의 책임을 지게 될 일이다. 이러다간 정말 요즘 유튜버들이 원하는 구독이란 스스로 자기 인생의 “독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데이터와 정보 등이 소중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지던 인터넷이 서서히 사회적 소통에 관심을 가지더니 사회관계망을 아예 “낮은 말”의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말할 기회가 많아지면 말의 품격과 가치가 낮아지는 것을 이번에도 다시 알았다.

 

사실 이메일이나 블로그나 유튜브나 카톡이 편리하고 유익한 면이 아주 크다. 무료로 이용하다 보면 개발자들에게 많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우리가 빼앗기고 놓치고 물들어가는 것들의 폐해는 그 그림자가 너무 깊고 크게 늘어지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양심과 공동품행의 점진적인 침하이자 폐기이다. 무릇 스토리에는 진실이 있어야 하고, 이미지에는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혹자들은 소위 인플루언서가 되려고 아주 대 놓고 말을 만들고, 헛된 그림을 만들며, 온갖 거짓을 꾸미어 대중에게 마구 던진다. 이런 세상은 반드시 이쯤에서 막아야 한다.

 

학교에서 고객의 감동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고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영상물을 전달기법으로 가르친 것이 이제 와서 이런 사회적 오용과 남용을 보니 너무 후회가 크다. 개인이라도 사회와 대중을 향하는 스토리나 영상에는 자기주장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권고할 만한 인류 유익과 문화 창달의 공준을 담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혼잣말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대중전달자는 학문적 교육과 문화적 훈련이 필요하다. 소위 언론고시는 그래서 학습의 격이 높다. 학교도 글이나 말의 발표형식으로 굳이 시험을 치고 일일이 학습의 성적을 매긴다, 그런데 그렇게 말과 글을 배운 사람들이 각종 사회미디어 위에만 가면 아무 말이나 하고 제멋대로 산다. 요즘은 아예 줄임말을 재미가 아닌 재주로 겨루는 예능프로도 있으니 이건 정도가 좀 지나치다.

 

돈을 다루는 현장에는 그러지 않아도 은밀성과 사기성이 잠재해 있다. 그래서 거래서류에는 공증이 따르고 따로 보증인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도 돈을 매개로 하는 말들을 잘 믿지 못하고, 돈 앞에서 문서의 의심과 약속의 변심과 의리의 변절이 인간사에서 끊이지 않는다.

 

요즘 경제TV를 보고 있으면 전달의 주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자기 사업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소위 공중전문가의 허울을 쓰고 믿거나 말거나 하는 돈에 관한 말들을 마구 던진다. 사실 돈에 관한 유튜버들도 자기선전이나 소위 뒷 광고일 때는 반드시 그 사실을 알려서 청중이 구분토록 해야 한다. 예컨대 미디어로 노후연금을 권유하는 사람이 그런 업체에서 일을 한다면 그건 업체홍보의 일환이지 가치중립적인 공공의 인도가 아니다. 노후에 대한 개인의 준비는 자기에게 적절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주식을 사려고 하고, 남녀노소가 부동산을 알려고 하는 이 때에, 왜 건강정보는 대중에게 아무나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돈에 관한 정보들은 그런 규제가 없나 모르겠다. 특히 주식에 대한 정보들의 공중의 감시는 더 강화 되어야 한다.

 

돈은 가만히 두어도 양심이 달아나기 쉽고 진실이 빠져나가는 만고의 요물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세상의 앞선 위치에 가려면 돈은 돌처럼 보라는 훈계도 했고, 대처에서는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도 애환 어린 회자로 남겼다. 그러나 코로나가 덥석 모두의 손에 쥐어 준 비대면세상은 누구나 앞으로는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 돈은 모두의 처지에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절대 생존재”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신정부는 국가재정을 통 크게 사용하는 현대통화론(MMT)적 정책도 구사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그러다보니 나라마다 돈을 푼다고 야단법석이고, 그에 덩달아 온 세상의 주식이 솟아오르고, 집값들이 들썩인다. 이미 어떤 주식들은 애널리스트의 이론적 분석과 내재가치 평가의 범주를 벗어난 상황이다. 풍선으로 보면 끈이 없이 날고 있다.

 

그런데 분명 이 시기를 타고 초조한 대중을 미혹하는 “나쁜 입”들이 어디선가 “탐욕의 말”로 타인의 지갑에 손을 넣을 것이 분명하다. 이걸 거르고 막으라고 있는 게 바로 경제언론이고 경제언론인이다. 그런데 그들 상당수가 이젠 미필적으로 사사로운 이익들과 한 통속으로 비쳐진다. 경제방송을 보고 있으면 미디어가 가져야 하는 사회 목탁으로의 방임이 도를 넘는다.

 

돈은 내가 가진 생명만큼이나 개인적 획득의 기회가 유한해서, 대개는 오래 손 안에 가질만한 사회재이다. 그래서 돈이 손에 들어오면 가급적 일단 오래 가지려고 숙고해야 한다. 필요한 소비도 거듭 절제하고, 누군가에게 주더라도 의미가 커야 하고, 약속이 따르는 빌려간 돈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혹시 주식이나 주택을 돈의 증식으로 보고 투자한다면, 누구의 말이라도 참고는 하되 결코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매매중개인은 매매거래가 목적이고, 투자정보를 주는 사람은 정보이용료가 목적이다. 그래서 항상 거래를 유발하려고 새로운 말을 꾸며 대고, 스스로 나서서 자가 발전적 각설이 많다. 특히 놀라운 소식이라 칭하며 전하는 사람일수록 경계해야 한다. 만일 주식에서 그들의 말처럼 급등주식 찾는 법을 그가 안다면 이전의 급락주식을 그가 가지고 있을 게 뻔하다. 정치방담이든 경제풍문이든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그 많은 말의 허튼 수작을 어찌 다 안고 갈는지 그의 인생귀로가 공연히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마스크를 쓴 김에 한번 돌아본다면, 가벼운 말이 바이러스보다 더 남에게 튀지 말아야 할 해악임도 스스로 알자. 더불어 그것이 듣기 좋은 노래일지라고 입으로 하는 일이라 아껴서 불러야 한다. 요즘 사는 게 힘들어 그런지 방송의 노래프로에서 주는 위로가 참 크다, 하지만 노래방송도 좀 많아졌다. 사는데 노래가 은이라면 사색은 금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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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5 [10:00]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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