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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소국과민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12/04 [11:45]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축의 시대가 있었다. 기원전 800년을 전후하여 기원전 200년까지를 이어온 동서양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사상가들이 등장해 철학과 종교와 인문의 세계에서 오늘까지도 그 영민한 섭리를 전해주던 사변의 시대를 말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노자, 장자 등이 동서양에서 유사한 시기에 대표적인 축의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가들이다.

 

생활문명의 수준으로 말하면 서서히 청동기시대가 저물어가고 저만치에서 철기시대가 서서히 창궐하여 곳곳에서 전쟁과 살육이 끝이지 않던 시대이기도 하다. 동양은 오늘의 중국공산당이 관할하는 지역에 많은 나라들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갖가지 사상들이 다툼과 논쟁을 지속하던 백가쟁명의 시대가 이와 겹친다.

 

오늘의 하나 된 중국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같은 민족문화국가라기보다, 그 시기 시기마다 한 시대를 지배한 정치논리가 다르게 작동한 지리적 근접성과 언어적 유사성이 있는 사회운영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노자와 장가로 대표되는 도가학자들이 주장한 사상으로서 소국과민이란 말이 있다. 가능하면 나라를 작게 하고 국민도 적은 사람들이 모여 법이나 문명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담담히 살아가는 무위자연의 이상적인 나라를 표현한 말이다. 이는 오늘의 중국정부가 지향하는 제국굴기 지향성을 보면 정반대의 논리들이다. 당시에 특히 법가의 세도가 높아지면서 다른 한편에서 학문의 향기를 내던 논리들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법가의 사상을 주로 인용하여 전제적인 나라를 만들어 전국시대의 통일을 추구하였다.

 

요즘 우리나 미국이나 국가운영이 중대한 변화를 맞이한 인상을 준다. 우선 두 나라는 강력한 통치력을 가진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이면서도 연일 국가의 권력을 놓고 대중적 토론과 언론의 여론전이 뜨겁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인권이나 자유나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권력진영을 만들어 주도권을 다투는 이전투구의 형국이다. 게다가 호사가들이 자기 미디어와 몇몇 패거리로 뭉치고 나서서 더 세상이 어지럽다. 요즘 미국은 우수하고 강력한 미국의 재기를 노리는 국가가치주의자들과, 인권적이고 개방적이며 호혜적인 사회가치주의자들의 다툼이 이번 대선에서 보듯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우리나라가 요즘 보이고 있는 국가운영 상황도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국가리더십의 유동화가 대저 카오스 상황이다. 겉으로 보면 개혁과 보수의 다툼으로 보이지만, 내면은 서로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저마다의 가치지향성을 놓고 갈라서는 모습이다.

 

방송이나 신문은 이제 시대의 정론이나 전체의 공론은 없다. 지금 미디어는 각기 자기 이해진영의 전략적인 나팔수이다. 개인들의 사회관계망도 말벗이나 친소관계로 만나서 갈수록 서로서로 의견이 같은 사람들로 압축하고 갈라지는 양상이다. 이럴 거면 네트워크 소통기술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무리마다 사람마다 통용하는 화폐통화도 서로 다른 것을 쓸 소지가 엿보인다. 가상화폐가 나오면서 세상은 급속히 거래와 투자의 테두리가 작아지고 분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급기야는 우리 정부도 2022년부터 디지털자산으로 암호화폐를 사실상 인정하고 투자차익에 대한 과세를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중앙정부는 이제 세금징수에만 관심이 남는 조세국가주의로 갈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독립과 통합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광주와 전남이 행정통합을 선언했고, 대구와 경북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부산경남울산지역은 통합을 넘어서서 아예 중앙정부와 일정하게 공유하고 일정하게 분리하는 자치적인 지방정부로 사실상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 소리도 들린다. 경기도지사는 자기지역의 고유화폐를 병행하여 쓰자고 연일 논쟁을 벌인다.

 

서울을 시작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집값상승도 양상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점점 동네마다 단지마다 집값이 세밀하게 다르다. 주민끼리 작은 환경과 생활가치의 차이를 두고 주택가격이 갈라지고 나누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외곽의 일부지역은 예컨대 불과 걸어서 몇 분 차이인 광교와 수지의 집값이 차이가 크고, 실개천 하나를 두고 분당과 죽전의 차이가 크고, 겨우 도로 하나를 두고 일산서구와 한류단지의 가격차이가 아주 크다. 신축과 구옥의 차이를 말하기보다 갈수록 단지마다 동마다 같이 이용하는 공동커뮤니티 환경과 구성원들의 수준인식 차이가 마치 같은 비행기의 일등석과 삼등석의 인식차이 같은 느낌을 준다.

 

서서히 백신이 나오고 있지만, 이렇게 세밀히 나누어지기 시작한 일상생활과 정보교류와 시대공감은 다시 하나가 되어 만나기 어려운 분열의 변곡점을 돌아서고 있다. 생각이 다르면 이제 다신 안 만나면 되고 더 이상 소통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코로나가 준 역사의 필연적인 전환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500년을 넘게 사상들이 진화한 문명의 혁신이었다면 이제 광속도의 시대를 만나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저마다 작으나 편안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나만의 세상으로 삶의 굴레를 옮긴다.

 

점점 내가 선호하는 대통령과 나의 정부가 다르고, 내가 믿는 거래소와 나의 화폐가 다르고, 나의 종교문화와 나의 주거단지가 다르고, 나의 미래지식이 다르고, 나의 선호주식이 다른 것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지금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이 돌발적으로 겹치면서 과거에 500년 이상을 관통하며 성장하고 다투어온 삶의 가치와 국가적 사상과 사회질서와 인간관계의 변화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다시금 2천여 년 전에 노자장자가 남긴 도가의 “소국과민”의 식견이 참 새롭다. 아마도 이렇게 <비대면>을 넘어 <비상면>의 시대가 오고 있나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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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04 [11:4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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