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인문학] 질문하라, 그리고 환원하고 공유해 융합하라(2)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5/05/11 [20:27]

 

 

 

[한국인권신문]

 

60~90년대 성장 동력은 사람

 

사람이라고 할 때 우선 교육 덕택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70%는 한글, 30%는 제도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도제교육 하에서는 스승이나 내가 문맹이더라도 장인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량생산, 공장체제에서는 안 맞는다고 했다. 문서로 작업공정, 작업일지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글은 4시간이면 해독할 수 있는 독특한 언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세대는 못 배운 한 때문에 ‘내 새끼는 배워야!’라는 강력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부모세대가 희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면성 덕택이라고 했다. 근면성이라기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것이라고 했다.

 

낙안·고창·해미·읍성만 온전히 보존돼 있다고 했다. 290여 개 읍성이 일제 때 없어졌다고 했다. 사상은 당대로 들어가 시간과 공간을 훑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성곽은 시간과 공간의 정체성인데 성곽이 사라진 것은 뿌리째 날아간 것이라고 했다. 일제는 새로운 길, 신작로를 냈다고 했다. 집을 허물어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하였다. 결국 포기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이었다.

 

 

옛날 흥부전과 요즘 흥부전

 

여기서 김 선생은 “여러분, ‘흥부전’ 읽으셨어요?”라고 물었다. 흥부전을 본 것과 읽은 것의 의미를 달리 해석했다. 옛날 흥부전은 박 네 개를 탔다고 했다. 이에 반해 지금 흥부전은 박 하나, ‘대박’을 탄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뼈가 있는 비유였다.

 

즉, 옛날 흥부전의 첫 번째 박에서는 풀뿌리, 나무 같은 약재가 나왔다고 했다. 두 번째 박에서는 책, 세 번째 박에서는 고대광실 ‘금은보화’ 산해진미가 나왔다고 했다. 네 번째 박은 흥부 부인이 타지 말자고 했으나 흥부가 탔는데 그 속에서 양귀비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무병장수, 두 번째는 사서삼경, 세 번째는 명예`부귀영화, 네 번째는 쾌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지금 흥부전에 하나밖에 없는 대박을 타면 BC카드나 돈이 나온다고 했다.

 

 

무엇이 세계화?

 

사람들은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을 따진다고 했다. 산업화시대 발전 요소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동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몬산토’와 ‘블랙워터’가 작년에 합병했다고 하였다. 플러스알파가 있다고 했다. 바깥세상의 형편이라고 했다. 더불어 김 선생은 “90년대 이후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세계화’였는데 해외여행 말고 더 뭣을?”이라는 뼈아픈 물음을 던졌다.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과 월남전이 끝난 1975년 사이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절이라고 했다. 대량생산에는 대량소비가 받쳐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부는 전쟁 때문에 소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대량생산에 대량소비가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당대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지로 각광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 기업에 하청을 줄 때 두 달을 예상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달 보름 만에 제품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품질도 괜찮고 가격도 저렴했다는 것이었다.

 

 

애들도 공감해야

 

김 선생은 이 지점에서 “왜, ‘가산디지털단지’라는 명칭?”이라고 하면서 그 명칭은 싫다고 했다. “그 시대 흔적을 왜 지워?”라고 하면서 그때 흔적이 남아 있어야 요즘 애들이 공감한다고 했다. 이에 더해 토플 900점 이상을 취득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기업에서는 통역 전문가를 쓴다고 했다. 더불어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화는 영어 잘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면서 “안 써먹으면서”라고 중얼거렸다. 또한, 김 선생은 “중국주도 금융시스템이나 반둥회의에 관심 있어요?”라고 하면서 “네팔 지진은 좀 보았겠지만”이라고 했다.

 

 

속도와 효율

 

20세기 중반 이후 시대에는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 선생 동료들이 강의하러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은 ‘교장연수’라고 했다. 김 선생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교장연수를 통해 교장을 바꾸면 애들 1,000명이 바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에 더해 교육은 무조건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이 과거 방식으로?”라고 하면서 과거에는 통했다고 하였다. 지금은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가르친다고 했다.

 

이어서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Stay hungry! Stay foolish!)을 소개했다. ‘계속해서 일하라! 멈추지 마라!’라는 의미라고 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그곳에서 쫓겨나 영화사 ‘픽사’로 갔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스티브 잡스의 말을 안 듣더란 것이었다. 오히려 따지고 물었다고 했다. ‘따지고 묻는 것’,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이라고 했다. 애플 시절에 스티브 잡스는 ‘나를 따르라(Follow me)!’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위대한 일이란 천재적인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팀에 의해 이뤄진다고 했다.

 

김 선생은 산업화시대에 중화학공업을 선택한 것은 가장 아찔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당시 월남이 패망한 후 자주국방이 강조된 시절이었다고 했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우리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변화에 무뎠다고 했다. 그러다가 IMF 한 방에 당했다는 것이었다.

 

 

팀제, 그리고 수평적 리더십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팀제로 바뀐 후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이 팀제로 바뀌었다고 했다. 1997년 이후에는 군대까지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팀제의 대전제는 민주적`수평적 소통과 리더십이라고 했다. 그래야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팀제는 무늬만 수평적이고 여전히 수직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반도체 제조공정을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MIT 박사 출신이 직원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그 교육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제품을 생산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팀제에서는 과거 MIT 박사는 팀장으로서 부하 직원들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잡담이 이뤄지는 가운데 옆길, 샛길, 지름길이 보인다고 했다. 그때 팀장은 팀에서 모은 의견을 이사회에 가서 건의하는 유연성, 가변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즉, 계급장 떼고 맞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선생은 헤드가 수직적인데 팀제로 바꾼다고 해서 수평적으로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수직적인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 읽는 CEO?'라고 하면서 시를 읽는 사람이 CEO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팀제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이어야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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