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과 육수
한 20년 전만 해도 ‘육수’보다는 ‘국물’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고깃국물 멸칫국물 오뎅국물 김칫국물 라면국물 등등... ‘냉면’이란 노래에도 국물이 등장한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 (중략)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그런데 요즘은 육수(肉水)가 대세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육수’란 ‘고기를 삶아 낸 물’이라고 되어 있다. 육수도 분명 표준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국물 대신 육수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부대찌개를 먹다가도 “여기 국물 좀 더 붜 주세요”라고 하면, “예, 육수 더 드릴게요”라고 한다.
국물이 왜 육수로 변했을까? ‘국물’보다 ‘육수’가 더 비싼 느낌이 날까? ‘고깃국물’보다 ‘육수’가 더 짧아서일까? ‘고기’를 삶아 낸 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일까? 라면 국물을 육수라고 하진 않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멸치 육수’ 또는 ‘소고기 육수’라고 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수퍼에서 파는 물냉면 안에 ‘동치미 육수’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동치기에 들어간 무가 고기인가, 육수라고 하게... 이젠 그냥 습관적으로 국물을 육수라고 표기하는 것 같다.
국물은 순우리말이고 육수는 한자어다. 필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멸치 육수’나 ‘소고기 육수’는 의미가 중복되므로, ‘멸칫국물’과 ‘소고깃국물’로 표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굳이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더라도, 쉽고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 ‘냉면’ 노래에서 ‘냉면 ’육수‘ 더 주시오’라고 한다면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국물’이란 좋은 우리만을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맞지도 않는 ‘육수’라는 단어는 이제 가급적 지양하면 어떨까 싶다. 오늘 점심엔 뜨끈한 멸칫국물을 사용하는 멸치국수를 먹어야겠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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