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송 전성시대

배재탁 | 입력 : 2024/07/05 [09:43]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줄줄이사탕으로 엮어 들어간다’는 얘길 했다. 순간 줄줄이사탕 CM송과 함께 과거 CM송들이 생각났다. (또 라떼 얘기임) 

 

사실 줄줄이사탕의 인기는 짧았다. 하지만 ‘줄줄이사탕’이란 단어와 CM송은 워낙 강력하게 사람들 뇌리에 박혔다, 줄줄이사탕 광고는 단순했다. 당시 필자 또래의 초등학생이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래에 맞춘 화면이 등장하는 형식이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우리들은 오리온 줄줄이 가족~”

 

우리나라 최초의 CM송은 1959년 제작된 진로소주 CM송이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너도 진로 나도 진로...”라는 노래와 함께, 당시로선 파격적인 애니메이션 광고가 등장했다. 당시엔 국내엔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외국의 배를 타는 ‘마도로스’가 선망의 직업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뱃사람들이 등장한다.

 

사실 CM송의 황금기는 70~80년대였다. 역사에 남을 만 한 주옥같은 CM송들이 등장했다.

지금까지 필자가 꼽는 최고의 CM송은 오란씨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 오란씨”

이에 경쟁 제품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써니텐이다. “태양의 정열을 마시자 써니텐~”로 시작하는 CM송이 기억난다.

당시엔 CM송을 히트시키는가가 광고의 주요 포인트가 되기도 했었다. 가장 치열했던 게 롯데껌과 해태껌의 대결이었다. “주시후레시 후레시민트 스피아민트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 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에 대한 맞불로 “해태껌 부드러운 맛 해태껌 상쾌한 기분 해태 해태 해태껌”으로 대항했다.

아카시아껌 CM송도 인기였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아~아~ 아카시아 껌”

흔히 빨아 먹는 빙과의 시초를 ‘쭈쭈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전에 나온 ‘아이차’다. “입안이 얼얼~ 삼립 아이차”라는 CM송이 있었다.

송창식이 부른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온가족이 함께 투게더~”도 인기였다.

 

당시 CM송은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유가 뭘까?

필자의 생각으론 1975년 12월 터진 ‘대마초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로라할 가수들이 모조리 연루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게다가 군부 독재로 인해, 자유로운 창작보다 사랑 타령이나 하는 음울한 가요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럴 때 짧지만 발랄하고 상쾌한 멜로디 그리고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호소하는 CM송은 단순한 광고가 아닌 노래로 다가왔다.

특히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던 뮤지션들은 생계를 위해 CM송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도향과 윤형주다. 그 두 뮤지션은 CM송계에서 양대산맥을 이루며 각각 1천여곡씩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민주화와 한국 가요의 발전을 이루면서 CM송의 위력은 이전만 못해졌다. 그 자리엔 짧고 강력한 카피 또는 슬로건이 채워졌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합니다’ 또는 ‘여자의 변신은 무죄’ 같은 게 그 사례다.

 

어쨌든 옛날 즐겨 듣고 부르던 CM송을 생각하고 속으로 부르고 나니 즐겁다.

필자는 역시 꼰대가 맞다.

 

 

<한국인권신문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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