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모자이크 씨어터 ‘나의 삶 나의 사랑’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24/06/05 [11:14]

 

[문화비평=류재국 연극학자, 서양고전극연구소장, 칼럼니스트]

 

2024년 4월 12~13일 인사아트프라자 M스테이지에서 연극 <나의 삶 나의 사랑>(기획·연출 김경은, 예술감독 양혜숙)이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이사장 양혜숙)이 올해 야심차게 기획한 ‘모자이크 씨어터’라는 독특한 형식을 소개하고 있다. 모자이크 씨어터는 독립된 공통의 주제를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엮은 옴니버스(omnibus) 스타일이면서, ‘작은 노래나 이야기’의 조각을 붙여 만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sonnet)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 <나의 삶 나의 사랑>을 접했을 때, 요즘 연극 제목치고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 나의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 적 이야기이던가? 촌스런 제목 때문에 공연장에 잠깐만 얼굴을 비추기로 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한 끌림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아 무대를 뚫어지게 보았다. 이와 동시에 꽉 찬 객석의 눈동자와 다양한 호흡들을 응시하면서 메모를 시작했다.

 

이중의 위기 속 모자이크 씨어터의 발견

 

<나의 삶 나의 사랑>은 제작사인 한국공연예술원(KOPAC)의 정체성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듯하다. 이 작품에서 무대에 선 11명의 예술인은 한국공연예술원의 이사들로 구성된 원로 예술인들이다. 그들을 열거하면, 양혜숙(이사장), 박호남(대금 연주), 김경은(연출), 장만호(시낭송), 박찬원(시낭송), 조송자(연기), 강유철(연기), 최혜순(오카리나 연주), 유명숙(장구 공연), 박찬효(내레이션), 심옥영(내레이션)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연기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모자이크 시간 안에서 각자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마치 조각보의 이음으로 하나의 큰 세상을 만들어 갔다. 이들은 여느 배우들처럼 무대 뒤에서 떨거나 긴장하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것은 그들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심장의 박동 소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솔한 마음으로 전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전혀 난해하지 않고 겉멋 부리지 않으며, 오히려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삶과 사랑에 대한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나의 삶 나의 사랑>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령도 70세에서 80세 후반까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공연예술계의 원로이신 89세 양혜숙 이사장의 헌정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참 따듯한 공연이다. 이쯤에서 덧붙인다면,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70세만 넘으면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이행하기 위해 몸부림치듯 해외여행하고, 수명 연장에 대한 담론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나의 삶 나의 사랑>에 출연한 원로들은 장수시대의 의존성에서 탈피하고 세상을 향해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삶을 사랑하고, 때로는 구름을 타는 듯 창의적이며, 저돌적 지성으로 다가온다. 객석은 2층까지 200석을 만석으로 채웠다.

 

2024년 현재의 한국 국민은 ‘이중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대내외적으로는 문란한 정치적 권력이 좌우로 나뉘어 득세하며 국민에게 선동하고 왜곡하면서 국가체제를 뿌리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가정에서는 노예의 소일거리로 불리는 텔레비전 시청에 온통 정신을 분산시키고 있다. 하루하루를 고된 일과 걱정 속에서 지칠대로 지친 인간들은 아무런 정신 집중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사고 능력도 전제하지 않은 엔카의 연장선에 있는 뽕짝과 예능 시청 전쟁으로 국민의 정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텔레비전 제작 원칙은 시청률 극대화를 위해 ‘13세 정신력’에 맞추어 만들고 있다. 즉 모든 성인을 13세의 아동 수준에 맞추어 수동적으로 소비하도록 조종하고 있다. 이는 정신 집중을 요구하지 않고 대중의 정신 분산을 원하고 있다. 마치 5공화국 시절의 ‘3S 정책’과 로마를 멸망하게 만든 ‘빵과 포도주’ 유행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 인간의 평범한 삶에서 나온 소통의 메시지

 

독일의 사회학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벤야민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통해 획일화된 문화상품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안 대중의 사유 가능성은 사라진다고 경고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일련의 1천만 영화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에 대한 생각은 그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특히 영화와 같이 제작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장르에 있어서 대량 소비를 위한 획일화, 저질화는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우리 국민의 여가생활이 문화상품의 획일화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중독적 수용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기에 <나의 삶 나의 사랑>의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이야기를 ‘모자이크 씨어터’라는 독특한 드라마 형식을 내놓은 한국공연예술원의 모험담은 한국연극사를 새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나의 삶 나의 사랑>에서 평가될 문제를 제기해보자. 극 속에서 어떻게 자기소통의 기능을 수행하는가? 자기소통에는 자신과 소통할 주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통의 연극은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잘 나가는 연극인들은 불필요한 객관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매한 연극을 해석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고, 관객은 어렵고 난해한 연극을 보느라 극장을 외면한다. <나의 삶 나의 사랑>에서는 그런 염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무대 위에서 객석에 말을 건네고 나와 다른 당신의 삶은 어떠하였는지 질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자이크 씨어터는 소극장 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일상성에 천착하고 있고, 극사실주의 연극의 일면인 리얼리티의 서민적인 서사를 통해 피부에 와 닿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제작사 한국공연예술원 모험은 일시적인 프로덕션 체제가 아니라 일정한 지향점과 양식을 공유하고 있는 단체로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작업을 이루어내었다. 이들이 만든 모자이크 씨어터의 탄생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나의 삶 나의 사랑>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이 전해주는 과거사는 충분히 절박하고 가슴 아프며 때로는 잘 몰랐던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과거의 보편적 인생사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전화시키며, 듣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러한 매력을 교묘하게 봉합하는 힘은 김경은의 연출력이다. 리허설 때 잠깐 보았지만, 김경은은 출연자들로부터 에너지를 최대한 이끌어낸다. 아울러 고백조의 대사를 유머러스한 리얼리티로 전환시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물론 양혜숙 예술감독과의 충분한 토의가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는 삶의 이야기 구조를 한층 더 진하고 풍부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들이 만든 <나의 삶 나의 사랑>은 장년의 취미거리가 아니며, 노년의 소일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이들의 예술적 모험은 삶과 사랑을 극으로 상생시키는 광맥의 발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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