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이후 마르크스(5강):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 과학과 철학의 실천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5/10/22 [23:15]

 

 

[한국인권신문] 아래 글은 ‘2015 하반기 서울시민대학 대학연계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메모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를 주제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박영균 교수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획된 10강 중 5강이 지난 21일(수)에 있었습니다. 이날 주제는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 과학과 철학의 실천’이었습니다. 박 교수의 강의를 전달체가 아닌 강의자 입장에서 다시 작성했습니다. 녹음이 아닌 노트 메모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필자 주).

 

 

‘실천의 철학’, 레닌과 그람시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성공했다. 레닌은 정치학에 초점을 맞췄다. 파시즘, 제국주의 전쟁 시기 레닌주의자 ‘그람시’는 ‘집합적 권력의지(헤게모니)’를 들고 나왔다. 그람시는 레닌의 정치학을 가져왔다. 또한 시민사회가 국가를 흡수해 국가는 소멸(비국가)한다고 했다. 레닌과 그람시는 ‘실천의 철학’을 강조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동유럽은 ‘인민민주주의혁명(PDR)’에 의해 사회주의권이 형성됐다. 사회주의 현실이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동서냉전체제가 시작됐다. 1950~60년대 ‘알뛰세르’는 맑스주의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 침투당하고 왜곡됐다고 생각했다.

 

 

‘철학의 실천, 알뛰세르

 

레닌 이전까지 사회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념, 사상,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레닌에 의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주의는 현실이 됐다. 이념과 현실은 같지 않다. 알뛰세르는 이념과 현실이 대립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원래 맑스주의는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실현하는 길을 찾겠다는 ‘과학적 사회주의’였다. 공산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이상)라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현된 사회주의는 당이 국가를 먹고 국가가 시민사회를 먹어버리는 형태로 드러나게 됐다. 알뛰세르는 ‘당=국가=시민사회’라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다. 알뛰세르는 이렇게 변질된 사회주의 현실 문제에 천착했던 것이다. ‘철학의 실천’, 즉 철학 자체를 실천했던 것이다.

 

 

철학의 실천, ‘철학이 하는 실천’

 

철학은 사람의 관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철학의 실천’은 ‘철학’이 하는 ‘실천’이다. ‘관념론’은 <‘이것만이 옳다’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가 말하는 것은 관념뿐이다.>라고 한다. 반면에 ‘유물론’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현학적인 질문일 뿐이다. 일반인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라고 한다.

 

‘노동자성’, 노동자들이 몸을 부딪치면 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천의 철학’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경험주의’의 오류이다. 경험이 들어가면 이론화되고 검증돼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맑스주의가 노동운동과 결합했을 때 노동자들은 해방의 주체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 맑스는 노동자의 잠재성은 인정했다. 알뛰세르는 이론과 노동자운동이 결합하는 유물론을 비판했다.

 

 

스탈린 시대, 과학이 당에 종속돼

 

스탈린 시대, 생물학 이론에서도 참이냐 거짓이냐가 당파성에 의해 결정됐다. 과학은 당에 종속됐다. 이론·철학이 이데올로기가 돼버렸다.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제3인터내셔널 이후 스탈린 주도로 ‘코민포름(1947)’을 만들었다. 스탈린은 소련이 사회주의 조국이라고 했다. 다른 동구국가들은 소련을 위해 싸우라고 했다. 다른 공산국가는 소련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1956년 스탈린 사후 후르시초프는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했다. 평화를 우선시하는 투쟁과 인간적 공산주의를 들고 나왔다. 프랑스 공산당도 이 노선을 따라갔다. 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것은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미봉책이었다. 알뛰세르는 이에 대해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변증법의 3대 법칙

 

‘변증법’의 3대 법칙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양적 축적의 질적 전환’,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다. ‘엥겔스’가 ‘헤겔’로부터 가져오면서 변증법에 휴머니즘이 더해졌다. 스탈린은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없애버렸다. 나머지 두 개는 살려뒀고. 알뛰세르는 헤겔로 복귀하는 것과 인간주의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양적 축적의 질적 전환은?

 

모순의 양이 축적되면 새로운 질로 전환된다고 했다. 자본주의 모순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사회주의로 전환된다고 했다. 진화론(개혁론)적 관점이다. 이처럼 스탈린의 생산력주의는 생산력이 증가하면 어느 순간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전환된다는 것이었다. 생산력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력이다. 현실사회에서 사회주의를 만들 때 생산력을 엄청나게(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만들 정도로) 높였는데 좋은 세상도 안 왔고, 내 것도 없었다. 

 

스탈린 후반기에는 생산력이 떨어졌다. 인간주의를 들고나온 후르시초프는 금방 경질됐다. 브레즈네프 시대, 조직된 사회주의는 망했다. 합리적 테크노크라트(개혁파)와 함께 인간주의를 내세운 고르바초프 시대, 소비에트는 다 무너졌다. 유일하게 트로츠키는 여태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양적 축적의 질적 전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현실, 여전히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정희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배는 줄어들고, 상대적 빈부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지배자의 논리이다.

 

 

헤겔적 맑스주의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알뛰세르

 

알뛰세르는 인간주의가 사회주의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됐다고 했다. 청년기 맑스는 인간적인 맑스주의자였고, 성년기 맑스는 과학적인 맑스주의자였다. 이에 대해 알뛰세르는 틀렸다고 했다. 알뛰세르는 헤겔적인 맑스주의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헤겔적 맑스주의는 경제의 본질은 정치·이데올로기라고 했다. 맑스는 헤겔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으로 정치·이데올로기의 본질이 경제라는 것이었다. 즉, 경제 토대 위에 정치·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뛰세르 중층결정론(과잉결정론)

 

이에 반해 알뛰세르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가 4차원으로 중층화돼 나름의 독자성을 갖고 움직인다고 했다. ‘중층결정론(over determination)', 중층적으로 모아지면서 어느 지점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잉결정'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청년실업률, 그리고 이명박 시대 촛불시위

 

우리나라 실업률 문제를 보자. 경제적으로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 외국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3D 업종에서 일하기를 꺼린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이런 것들이 중첩되면서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종주의, 인종차별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 때 ‘촛불집회’, ‘광우병’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정치적으로 ‘737 경제공약’이 중첩됐다.

 

알뛰세르의 과잉결정론은 경제적인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정세에 따라 중첩돼 결정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프랑스 맑스시스트들의 ‘경제결정론’을 공격했다. 엥겔스는 “나와 맑스는 경제결정론을 말한 적이 없다. ‘최종 심급에서 결정된다.’라고 말했을 뿐이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알뛰세르 중층결정론,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규정해

 

레닌은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제국주의전쟁 시기에 중첩된 고리가 가장 약했다는 것 때문에. 알뛰세르는 여기서 가져와 ‘중층결정론’을 만들었다. 알뛰세르의 중층결정론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맑스의 자본주의, 자본과 임노동 관계

 

맑스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이다. 맑스의 공산주의는 전 인민적 소유에 의한 관계이다. 계급관계가 아니다. 자본과 임노동 관계에서 갈수록 관계가 악화돼 관계가 깨져야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뛰세르, 공산주의로 가는 길은 생산력 관계를 깨뜨려야

 

A(남)와 B(여) 사이는 친한 친구 관계이다. 둘 사이에 ‘친함’ 관계가 아무리 많이 축적되더라도 연인으로 발전할 수 없다. 관계를 깨야(혁명-키스를 하든지) 연인이 될 수 있다. 알뛰세르는 생산력을 아무리 많이 축적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로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생산력 관계를 깨뜨려야(혁명) 공산주의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즉, 공산주의 관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맑스는 임금이 결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결정되는 방법은 ‘계급투쟁’이라고 했다. 자본가와 임노동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힘의 관계라는 것이었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은 임노동이 자본가 힘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알뛰세르 역사유물론

 

알뛰세르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이론을 바탕으로 한 ‘역사유물론’은 ‘과학’이라고 했다. 철학은 과학을 정립해주는 ‘이론적 실천에 관한 이론’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로부터 과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론적 실천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제적 실천은 생산수단과 노동을 결합시켜 생산물(일반성Ⅲ)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노동(일반성Ⅰ)은 ‘재료들(이데올로기)’이고, 생산수단(일반성Ⅱ)은 ‘문제틀(이론)’이다. 두 개 대립적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바꿔버리는 것, ‘어떤 질문 방식으로 사유하느냐?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토마스 쿤, 과학에서의 혁명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을 얘기했다. 패러다임 A와 패러다임 B 간 치열하게 싸우다가 승리한 쪽이 새로운 이론으로 받아들여져 정립된다고 했다. 과학은 새로운 혁명이라는 것이었다. 과학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과학으로 가는 것은 순수한 경험이 아니고 이론 의존성, 이론 우선성이라고 했다. 

 

‘만물은 변화한다.’가 변증법 명제이다. ‘명제 자체는 안 변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 못 된 것이다. 이것은 메타 명제이다. ‘이론적 실천’에서 ‘정치에서의 이론적 개입’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알뛰세르는 스탈린식으로 아무리 생산력을 높인다 해도 관계를 바꾸지 않고는 공산주의로 못 간다고 했다.

 

 

창조경제로 가려면

 

관계성을 바꾸지 않고 ‘창조경제’가 될 수 없다. 창조경제가 되려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돈이 있어야지?’,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그 순간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자기내면, 자기존재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하나는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빌 게이츠, 잡스, 주커버그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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