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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4강)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현대 군주’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5/10/15 [22:07]

 

 

 

[한국인권신문] 아래 글은 ‘2015 하반기 서울시민대학 대학연계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메모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를 주제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원장 김성민) 박영균 교수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획된 10강 중 4강이 지난 14일(수)에 있었습니다. 이날 주제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현대 군주’였습니다. 박 교수의 강의를 전달체가 아닌 강의자 입장에서 다시 작성했습니다. 녹음이 아닌 노트 메모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철학적 비판-실천적 무기, 철학의 실천-실천의 철학, 역사유물론-실천적 유물론

 

맑스는 ‘철학의 실천’에서 ‘실천의 철학’으로 가는 길이었다. ‘철학의 실천’에서 ‘철학’은 주체이다. 이는 곧 소크라테스가 자기는 답하지 않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하듯이 하는 형식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완수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독일 이데올로기’는 출판되지 않았다. 쥐가 갉아먹도록 내버려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맑스의 ‘역사유물론’은 ‘과학’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이것을 ‘현실’로 바꾸면 된다고 했다.

 

‘실천의 철학’에서 ‘실천’은 몸을 의미한다. 즉, 몸이 하는 실천에 의해 만들어진 철학을 일컫는다. 정치학, 경제학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그 정점에 레닌(사회주의혁명)과 그람시가 있다. 여기서는 ‘실천적 유물론’을 중시한다. 반면에 알뛰세르는 ‘철학의 실천’을 규정하려고 했다. 철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맑스 철학을 ‘당’이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그람시 생애

 

그람시(1891. 01. 22. ~ 1937. 04. 27.)는 ‘곱추병’을 알았다. 토리노대학 장학생일 만큼 천재였으나 언어학과를 중퇴했다. 1917년 전위에 참여하면서부터 ‘맑스-엥겔스’를 연구했다. 1919년 공산당 잡지 ‘신질서’ 편집과 전국적인 ‘공장평의회운동’을 통해 정치활동을 했다. 1922년 10월,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했고 1924년 4월‘ 그람시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을 활용해 그람시는 무솔리니를 거칠게 공격했다. 이후 무솔리니 파쇼정권에 의해 2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이던 1937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사망 3일 전 병보석으로 석방이 예정돼 있었는데.

 

 

노동조합의 관료화가 공장평의회운동으로 이어져

 

노동조합이 거대해지면 노동조합도 관료화된다. 이렇게 되면 노조는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지배하게 된다. 공무원들처럼. 그러자 노동자들이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평의회이다. 여기서 노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공장을 운영하는 운동이 공장평의회운동이다. 위원회가 노조 간부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위원회 결정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1920년 공장평의회가 전국적으로 파업을 일으켰다. 동시에 이탈리아 사회당 내부도 분열하기 시작했다. 1921년 그람시와 톨리아티가 사회당을 탈당해 공산당을 만들었다. 사회당 무솔리니와 공산당 그람시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무솔리니는 그람시를 엄청나게 두려워했다. 1922년 10월,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하자 사회당 출신 당원들은 파시스트가 됐다. 무솔리니는 이들을 행동대원(부대)으로 동원했다.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파시스트는 자본주의도 싫어하고, 공산주의도 싫어한다. 파시스트는 인종과 민족만을 고집한다. 파시즘은 정치노선이 없다. 기본적으로 적대성과 증오심을 키운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원수관계다.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를 가장 많이 죽였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국가사회주의(국가 + 사회주의)’를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 파시즘은 정권을 장악하면 의회를 해산하고 의회주의 질서를 붕괴시킨다. 의회주의를 부정하고 행동대 동원 체제를 구축해 총통제(왕)로 간다. 이때 왕은 대중동원력(부대)을 이용해 적대성을 조장한다. 일본 군국주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면이 있지만, 젊은이들이 아닌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다행이다. 파시즘은 친자본적이다.

 

 

그람시가 생각하는 혁명 실패요인

 

그람시 사상의 독창성은 공장평의회운동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왔다. 즉, 반성으로부터 ‘실천의 철학’이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A와 B를 투입하면 C가 나온다. 이론적 정합성이 있을지라도 현실에서는 이론이 ‘참’을 입증하지 못한다. 그람시는 현실에 투입해 유의미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때 이론이 타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옥중수고’를 집필했다. 이 책은 검열을 피할 수 있게 쓰였다. 3,000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여기에 혁명 실패요인을 기록했다. 그람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혁명 실패원인을 공장평의회운동의 ‘무질서’와 ‘비조직적’을 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무질서하지 않고 비조직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따돌림 당한 그람시, 반파시즘인민전선(NLPDR) 구축해 사회주의혁명 일으켜

 

1924년 레닌 사후 스탈린이 소련 권력을 장악했을 때 국제인터내셔널조직 코민테른에서는 그람시를 배제했다. 코민테른 운동 당시 소련에서 만났던 부인이나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애들도 그람시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면회하지 않았다. 코민테른에서조차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람시는 파시즘이 등장하자 철저히 비판했다. 극우와 극좌가 대립하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사민당)를 ‘사회파시즘’의 개량적인 정당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적이라고 했다. 우익적 편향의 이데올로기적 기초, 기계론적 철학을 적으로 간주했다. 제7차 코민테른에서 '반파시즘인민전선(NLPDR;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논리로 사회주의혁명을 일으켰다. 동유럽 유고,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이 이에 해당한다.

 

NL 노선은 민족해방을 기치로 하는 이석기 쪽이 해당된다. PD는 노동당이나 정의당 쪽이고. 정의당과 노동당이 이석기 쪽 통진당과 전략적으로 연합해 반파시즘인민전선(NLPDR)을 구축해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군부정권을 파시즘으로 규정해 대항하는 것과 같다.

 

 

계급혁명

 

레닌은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독재’를 들고 나왔다. 노동자혁명이든 부르주아혁명이든 레닌까지는 계급론이었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부르주아) 사이에 쁘띠부르주아가 있다. 자본주의가 막 발달하기 시작할 무렵엔 농민이 쁘띠부르주아(소생산자)였다. 레닌의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독재’는 ‘계급동맹론’에 근거한 ‘계급혁명론’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좌파공약도 이와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모순이 발생해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맑스는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말년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나 맑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레닌은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길 기대했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 공산당을 창설했다.

 

 

그람시 사상 핵심, 헤게모니

 

여기서 그람시는 강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이었다. 맑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경제적 모순이 격화되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의문을 품고 다른 요인을 찾았다. 윤리적, 지적 지도력이 문제라는 것에 도달했다. 이게 바로 그람시 사상의 핵심인 ‘헤게모니’이다. 그람시는 계급을 부정했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결속해 들어가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고 했다. 그람시는 전체 인민을 조직해 끌고 가는 정치조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정치철학은 마키아벨리즘이다. 당은 현대 군주이다. 민중의 집합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고민했다. 스스로 레닌주의자라고 칭했다.

 

 

국가주의

 

박종홍(철학) 전 서울대 교수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이념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국가주의 철학적 이념과 유신체제를 탄생시켰다. 헤겔은 독일 국가주의 이념을 만들었다. ‘박정희를 찍어서? 대중이 동의해서!’라는 대중독재(파시즘)로 갔던 원인에 대한 논란이 있다. 논의를 확대하면 대중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때 문제는 엘리트가 대중을 각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나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의 문부식 씨가 이런 주장을 한다. 윤리적, 도덕적 지도에 의한 폭력적 강제 위에 대중의 자발적 합의구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헤게모니란

 

국가는 사람들을 자발적 동의 아래 묶어내는 힘이 있다. 국가의 지배력은 ‘물리력(군대, 경찰 등; 민주화 이전, 강) + 윤리·지적 지도력(사상가치; 지금, 강)’에서 나온다. 이것이 바로 헤게모니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헤게모니는 ‘윤리·지적 지도력’을 말한다.

 

그람시는 1931년 ‘감옥으로부터의 서한’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언급했다. 정치사회는 물리력이고, 시민사회는 윤리, 지적 지도력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는 좁은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 'Civil'에서 시민권은 정치주체권리이다. 그람시의 ‘시민사회(교회, 조합, 학교 등)’는 맑스의 ‘코뮌’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지배력을 관철하는 것이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것이다.

 

레닌 방식은 먼저 물리력을 장악해 시민사회 윤리․지적 지도력을 장악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람시는 대중의 상식을 양식(good sense)으로 정립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국가중심권력장치(물리력)’는 ‘기동전’으로 장악하고, 시민사회(윤리․지적 지도력; 행위체계, 가치, 정서, 문화)는 ‘진지전’으로 서서히 잠식해나간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 의식이나 삶의 형식은 빨리 안 바뀐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람시 헤게모니론

 

그람시 헤게모니론은 국가와 시민사회(좁은 의미) 간 대립에 대응한 것으로부터 나왔다. 조합주의는 이익에 따라 묶는 방식이다. 헤게모니는 자기이익을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지적·윤리적 지도력이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계급을 벗어나 전 인민적 이익과 보편적 가치를 위할 때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윤리·지적 지도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람시는 국가 개념을 ‘정치사회’와 ‘정치사회 + 시민사회’ 중에서 때때로 오락가락했다.

 

 

헬 조선

 

우리나라 현재를 ‘헬 조선’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 현재 자본주의를 말해주고 있다. 미국에서도 60%는 자본가가 가져가고, 40%는 노동자가 가져간다. 이는 정부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이건 정부 신자유주의 정책 아래에서 부자감세 정책을 들고 나왔을 때 부자들의 기부금이 줄어들었다. 그 이전에는 절세 수단으로 기부를 많이 했다.

 

 

토대와 상부구조론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중후반 경실련, 여성협의회라는 시민사회가 만들어졌다. 90년대 들어서서 참여연대, 여성연합이 만들어졌고. 이때 그람시의 시민사회로부터 출발했다. ‘신사회운동론’의 보비오는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위’라는 테제에서 시민사회를 정치사회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그람시는 그렇게도 사용했고 그렇지 않게도 사용했다. 그람시는 나중에 기동전은 사라지고 진지전 중에서도 상부구조만 남는다고 했다.

 

‘토대와 상부구조론’에서 토대(맑스)는 자본과 임노동이다. 생산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상부구조는 법과 도덕이다. 텍시에르는 그람시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토대(부르주아적 경제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에 존재한다고 해석했다. 이 지점에서 박 교수는 토대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건국대학교 재단(학교법인)을 예로 들면서.

 

 

유기적 지식인론, 그리고 역사적 블록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론’으로 ‘노동자 + 지식인’ 결합을 주장했다. 전통적 지식인은 지배계급이데올로기 창출을 담당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지배계급을 배신하고 노동자 민중과 결합한다. 지식인이 노동계층으로 들어가 노동자 삶을 배우고, 노동자는 지식인으로부터 지적․윤리적 지도력을 배우는 것이다. 즉, 경제적 토대 또는 경제적 구조 상하부구조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일상적으로 서로 배움이 이뤄져야 ‘역사적 블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당은 권력의지의 집합체이다. 대중이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정당은 새로운 대중정신을 대중 스스로 창출하게 하는 ‘창조자요 선도자’라는 것이다. 유기적인 지식인은 정당과 임노동자 중간형태인 역사적 블록으로 국가를 포위하고 옥죄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새로운 문화 창출을 위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가능성과 필연성을 역설했다. 새로운 문화 창조를 통해 계속 지적․도덕적 질서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관료가 지배하는 국가를 시민사회가 흡수한다고 했다. 소비에트 현실사회주의와 정반대이다. 소비에트 현실사회주의는 당국가가 시민사회를 먹는다.

 

 

국가, 비국가, 반국가

 

시민사회가 국가를 먹어 시민사회와 대비되는 국가를 ‘비국가’라고 한다. 맑스가 말하는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 이행기에서의 프랑스 독재는 비국가로 반국가와 다르다. 비국가는 모순적 국가로 국가 스스로 국가를 부정한다. 이에 반해 반국가는 아나키즘이다. 

 

국가는 억압적 통치시스템(군대, 경찰, 감옥 등)을 갖고 있다. 시민사회가 국가를 먹어버리면 억압적 통치시스템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국가는 시민사회의 자치로 들어간다. 현실사회주의의 딜레마는 국가가 국가권력 장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단순한 도구(노동자국가든 부르주아국가든)가 될 수 없다. 그람시는 국가 자체가 독립적 조직(국가장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료들은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소비에트사회주의에서는 결국 당원들이 국가 관료가 됐다. 관료는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중세 신부가 하나님 말씀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독점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한글창제를 반대했다. 그람시는 시민사회를 깨우쳤다.

 

“국가에 물리력이 없으면 그것도 국가인가? 누가 질서를 지킬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5·18 광주에서 시민사회(코뮌)가 시스템을 만들 때 혼란스럽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없어도 질서가 유지됐다. 시스템이 잘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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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0/15 [22:07]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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