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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 3강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5/10/11 [22:46]

 

 

 

[한국인권신문] 아래 글은 ‘2015 하반기 서울시민대학 대학연계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메모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를 주제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박영균 교수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획된 10강 중 3강이 지난 7일(수)에 있었습니다. 박 교수의 강의를 전달체가 아닌 강의자 입장에서 편집했습니다. 녹음이 아닌 노트 메모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있음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지금 우리가 ‘맑스주의 이후 맑스주의’를 공부하고 있는 이유

 

지금 우리가 ‘맑스주의 이후 맑스주의’를 공부하고 있는 이유는 맑스 자신의 의중과 달리 ‘맑스주의’가 동·서 양쪽 간 충돌로 인해 왜곡됐기 때문이다. 왜곡된 부분을 벗어나 ‘오늘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한다

 

‘맑스-엥겔스’에서 ‘레닌’으로 내려갔다. 맑스는 1843년 ‘헤겔철학 비판’ 서문에서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했다. 맑스가 언급했던 후자의 ‘무기’는 ‘힘’을 의미한다. 노동자가 주체인 집단조직, 정치조직을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레닌은 그것을 ‘외부(당)’로부터 도입했다.

 

 

맑스주의(사상)의 출발점은 독일 현실

 

맑스주의(사상)의 출발점은 독일 현실이다. 엥겔스 말에 따르면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어떤 혁명도 발발하지 않았다. 분열돼 있었고, 봉건적 형태가 남아 있었다. 그런 독일에서 ‘철학혁명’이 일어났다.

 

 

헤겔 변증법은 가장 무식한 논법

 

헤겔 변증법은 가장 무식한 논법이다. ‘정(테제)⟶반(안티테제)⟶합(진테제)’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에서의 삼단 발전도식이다. 논리학(정)은 순수한 관념철학이다. 자연(반)은 관념이 아니다. 자연은 관념에 대항하는 것이다. ‘나무’라는 관념을 예를 들어보자. 나무라는 관념에 딱 맞아떨어지는 나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합, 절대정신이 국가를 통해 드러나는 체계를 말한다. 헤겔 논리는 삼단논법으로 돼 있다. 엥겔스는 헤겔 변증법에서는 정과 반이 대립하는 것을 ‘모순’으로 설명했다고 하였다. 즉, ‘체계’는 보수적이었는데 반해 모순은 급진적이었다는 것이다.

 

 

모순

 

독일도 영국과 프랑스처럼 근대국가로 가야 하는데 현실은 분열돼 있었다. 독일 지식인들은 현실을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원인(시원)을 찾아내려가다 보면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그때 폭발하는 것이 모순이다. 헤겔 사후 독일 지식인들은 독일 현실을 이성적으로 비판했다. 우파는 종교적으로, 좌파(청년좌파)는 이성적 비판을 통해. ‘비판의 무기, 무기의 비판’, 후자의 무기는 힘(집단)을 뜻한다.

 

 

프롤레타리아, 쁘띠부르주아, 부르주아

 

비판에는 힘이 따라야 하는데 프롤레타리아(무산자)계급은 벗어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이념사회다. ‘자본 + 임노동’, 자본이 있을 때 노동자 계급이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 쁘띠부르주아(소생산자 계급)는 자기자본이 있어 계속 분화한다.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한다. 자본과 임노동 사이에 이해가 갈릴 수 있다. 여기서 합은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 특징과 모순

 

‘자본론’에서 밝히고 있는 일례를 들어보자. 자본은 생산에 투하된 화폐를 말한다. 땅속에 묻어둔 돈은 자본이 아니다. 자본 1억 중 5천은 공장부지, 설비, 원료 등에 투입하고, 5천은 임노동자 고용에 사용해 제품을 생산했다고 치자. 이 제품을 시장에 내다팔면 수익이 발생한다. 즉, ‘1억 + α’가 될 것이다. 여기서 ‘α’라는 잉여가 생긴다. 맑스가 고민한 것은 바로 이 ‘α’였다.  자본주의사회 특징은 ‘협상(거래)’이다. ‘A’와 ‘B’가 평등하면 서로가 이익을 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진다. 이때 타협은 ‘등가교환’이다. 맑스는 임노동자가 ‘노동’을 파는 것도 등가교환으로 생각했다. 이에 반해 ‘리카르도’ 좌파는 자본과 임노동의 교환을 ‘부등가’라고 주장했다. 자본가가 ‘+α(이윤)’를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리카르도는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했지만.

 

맑스와 리카르도는 ‘+α’는 자본가에게 돌아가지만 분배를 두고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α’는 첫해 5천, 그다음 해엔 7천5백 식으로 해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대립하면서도 협상한다. 계속 싸우면 서로가 망할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임노동은 대립하면서도 통일한다. 이것이 모순이다.

 

 

부등가 교환이 아니라 노동력만 파는 것이 문제

 

맑스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끊임없이 싸우면서 가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했다. 여기서 등가교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과 ‘노동’의 분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력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근무시간; 예, 09시~17시)을, ‘노동’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맑스는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노동(밥, 청소, 운동 등)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본가는 집에서 하는 것은 안 쳐준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맑스는 ‘부등가교환’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력만 파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노동력을 배제하는 등가교환의 문제점

 

자기 생명활동에는 에너지 복원이 필요하다. 생식(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식은 노동력 인구다. 자본주의가 생기면서 인구정책이 생겼다. 우리나라 현재, 애 낳아 키우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사회적 보장이 필요하다. 자본가는 부담하지 않으려고 한다. ‘+α’가 커질수록 노동의 재생산이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는 등가교환이다. 맑스는 등가교환은 노동을 배제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자본 대 임노동’, 자본가는 자본의 담지자다. 노동자는 노동의 담지자이고. 노동자와 자본가는 파트너이다. 노동자는 해방주체도 비판주체도 아니다. 노동조합은 자기 몫을 지키려고 투쟁하는 것이다. 남들이 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노동자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 문제로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이 레닌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이중성

 

레닌은 노동자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노동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때문에 이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는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 전체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창했다. ‘+α’를 인민 전체에 돌리는 방식으로.

 

예를 들면 ‘00자동차’ 노조는 비정규직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가 퇴직하면 비정규직 파견근로자가 된다. 동일시간 동일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절반도 안 된다. 노동조건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이다. 레닌은 이런 악순환 고리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도입’을 했다. 자본과 임노동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레닌, 노동조합에서 투쟁하면서 성장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서구 ‘사민주의’는 노동조합과 당(사민당)이 분리돼 있다. 노동조합은 경제조직이고, 당은 정치조직이다. 서구에서는 이처럼 양 날개가 함께 간다. 레닌은 노동자들은 영원히 각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체제를 공격했다. 인민 전체 이익을 위해 싸우는 사람(민주주의 전위)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레닌의 생각은 노동조합에서 투쟁하면서 성장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노동당은 정치결사체이다. 민주노총은 경제(투쟁)조직이고.

 

 

자본의 권력화

 

생산과 노동력이 연합해 규모가 거대해지면 분업화되고, ‘+α’도 거대해진다는 것이 맑스의 원래 생각이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권력(사적 소유)이 커진다고 했다. 삼성 같은 재벌과 중소기업 간 권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생산이 사회화되면 권력이 줄어든다고 했다.

 

사민당 노선은 ‘소유 자체를 사회화해 가자. 사람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가자.’라는 것이다. 권력을 크게 해주는 ‘+α’가 문제라는 것이다. 생산을 사회화(국민주, 공기업화 등)시켜야 한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점차 사회화돼간다는 사민당(베른슈타인)의 점진적 개혁주의를 ‘개량’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경제주의

 

사회주의로 가늘 길에 ‘경제’를 핵심으로 여기는 것이 ‘경제주의’라고 했다. 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사회주의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맑스-레닌’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라고 했다. 즉 생산력을 사회화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은 진화론적 경제주의다. 경제주의 노선에 반대한 것이 문제다. 레닌 사후 ‘스탈린’은 ‘사회주의생산양식’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석탄채굴 노동자에게 15시간 일하게 하고 2배 생산했다는 선전을 통해 그들을 몰아갔다. 생산력의 일부가 생산관계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정치주의

 

협업생산은 생산력을 급증시킨다. 페이스북의 힘은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5억 명의 생산력에서 나온다. 레닌은 노동자를 경제조직으로 만들면 필연적으로 실패한다고 했다. 정치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노동자들이 정치지도자가 되게 하는 방식으로 훈련시키고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은 당이 아니라 소비에트가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주의다.

 

 

맑스주의가 변질된 계기

 

‘맑스주의’는 노동운동을 만나면서 ‘경제주의’, ‘조합주의’로 변질됐다. 노동자는 해방투사가 아니다.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노동조합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체제에 내화됐다. 권력화 됐다. 노동자는 해방주체가 아니다. 당이 소비에트를 지도하면서 일당독재가 됐다. 정치, 경제 양쪽 다 오염됐다.

 

 

사회주의

 

‘노예제⟶농노제⟶자본주의⟶(    )⟶공산주의’ 발달 단계에서 (    )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다. 즉, 사회주의다. 생산관계를 보면 노예제는 ‘노예주인과 노예’, 봉건제에서는 ‘영주와 농노’,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과 임노동’, 공산주의에서는 ‘각자 생산’이다.

 

 

맑스주의의 변질과 권력의 비대칭

 

맑스의 사회주의에 ‘노동운동’을 더해 ‘카우츠키’는 ‘사민주의’를, 소련은 ‘스탈린주의’를 들고 나왔다. 둘 다 경제주의다. 이에 반해 레닌은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로 조직했다. 정치주의이다. 부르주아에 유리한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독재’는 통치 내용이다. 형식은 독재가 아니다. 지배형식은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이는 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다. 권력의 비대칭 속에 살고 있으니 설득력이 있다.

 

 

맑스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르다

 

맑스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르다. 파리 꼬뮌에서 비롯된 '꼬뮌주의(communism)'는 무정부주의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가 사회주의다. 정치형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맑스는 공산주의 국가를 얘기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생산형태이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형식을 직접민주주의(소환권 갖는 것)로 바꾸려고 했다.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곧바로 공산주의로 갈 수 없다고 했다. ‘바쿠닌’이 주창한 ‘국가소멸론’, 즉 경제(재화)의 분배 시스템만 남고 물리적 무장은 사라지는 ‘아나키즘’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국민)이 현명하지 않으면 좋은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근대 ‘노동가치론’에서는 내 노동력을 투입해 개간한 땅은 80~90%가 내 소유라고 예기하고 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로츠키는 똑똑한 지식인이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1917년 혁명 때 최고지도자로서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부터’라고 했다. 그때 3인의 심복 중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는 반대했으나 원래 볼셰비키가 아닌 트로츠키는 지지했다. 레닌은 이들에게 권력을 줬으나 별 볼일이 없었던 스탈린은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는 죽이고 트로츠키는 해외로 추방했다. 물론 트로츠키 식구들도 죽였다. 후에 트로츠키는 ‘제4인터내셔널(IS; 국제자본주의)’을 조직하다가 스탈린에 의해 암살당했다. 시민(국민)이 현명하지 않으면 좋은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맑스주의의 최고 경지에 오른 두 사람, 알뛰세르와 그람시

 

스탈린은 ‘당=이성의 화신=수령의 무오류’라고 했다. 여기서 이성은 ‘과학=진리’이다. 그런데 당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학문은 정치에 종속됐다. 맑스주의는 과학도 학문도 아닌 정치의 도구로 전락했다. 지다노프, 리셍코주의와 같이. ‘정치 대 학문(이론)’의 틀을 끊으려고 한 사람이 ‘알뛰세르’다. 그는 맑스주의를 살리려고 했다.

 

이에 반해 그람시는 레닌처럼 운동(실천)을 조직화해 맑스주의를 혁신하려고 했다. 그는 1917년 혁명을 보고 이탈리아 토리노로 갔다. 1919년 ‘자본에 반하는 혁명’에서 경제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하면서 ‘헤게모니론’을 발전시켰다. 그람시는 당만 있어서는 안 되고 전체가 윤리, 도덕적으로 전 인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주창했다.

 

그람시와 알뛰세르 두 사람은 맑스주의의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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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0/11 [22:46]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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