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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방빨리 퀵서비스’ 장애인 배달원 이태준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5/05/27 [03:25]

 


 

[한국인권신문] 장애를 딛고 당당히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는 조선족 출신의 귀화자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구로구에 사는 올해 42세의 이태준 씨. 그는 한쪽 다리를 전다. 선천적으로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족이었던 이씨는 약 15년 전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왔다. 당시만 해도 조선족이 한국에 들어오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장애가 있는 조선족이 한국에 온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더 힘들 때였다.

 

하지만 이씨는 부친이 국가유공자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정부로부터 정착지원금까지 받았다. 입국 3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도 취득했다.

 

 

두 번의 대박

 

국적을 취득한 이씨는 이듬해 관악구 봉천동에 ‘안강선민반점’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음식점을 냈다. 정착지원금에다가 그간 소일하며 모은 돈을 보탰다.

 

음식점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역세권이라 상권이 좋았고, 음식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북경오리’라는 소재로 KBS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식당은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영원한 일인자는 없는 법. 식당 주변에 유사 음식점들이 줄지어 생기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이씨는 재빨리 ‘퓨전샤브샤브’로 눈을 돌렸다. 퓨전샤브샤브 전문점으로 업종을 변경, ‘안캉훠꿔청’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 뜻은 “평안하고 건강한 음식점”이었다.

 

이씨의 안목은 또다시 적중했다.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유명 맛집으로 손꼽히면서 전국에서 맛집 파워블로거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불행의 기운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두 번의 대박, 그 사이 그의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심으로 변해갔다. 매출이 날로 늘어나자 이씨는 종업원을 필요 이상으로 두고, 임금도 과도하게 지급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했다. 성공을 티 내려고 이른바 ‘목에 힘주기’에만 눈이 팔렸던 것이다. 거기에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새롭게 교육·정착사업을 벌였다.

 

주인 없는 식당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관리소홀로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자 손님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결국,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인의 말만 듣고 시작한 새로운 사업도 1년을 못 버티고 접어야 했다.

 

이씨는 기존 식당을 서둘러 정리하고 구로구에 다시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그에게 세 번째 대박은 허락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오토바이 사고까지 내고 말았다. 그의 대박 인생은 그렇게 막이 내렸다.

 

‘대박’을 꿈꾸며 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을 찾아온 이태준. 한때 그 꿈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결국은 절망의 무저갱(無底坑)에 빠져버렸다.

 

 

삶의 유일한 이유는 가족이었다… 중고 오토바이 한 대로 새로운 인생 그려

 

이씨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눈을 뜨기가 바쁘게 퀵서비스 사무실로 달려간다. 아침은 거르거나 커피 한 잔으로 대신한다. 주문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낡은 오토바이는 새벽부터 밤까지 멈추질 않는다.

 

그는 사업실패 이후 비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대박에서 쪽박으로 곤두박질하자 사람들이 멀어졌다. 조선족 출신의 빈털터리 장애인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었다. 물만 먹고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그나마 운 좋게 하루일당 일을 잡는 날은 겨우 밥은 굶지 않았다.

 

죽음보다 못한 삶. 그래도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에게는 일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사업실패로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서 살았지만, 그들은 이씨가 살아가야 할 유일한 이유였다.

 

그는 오랜 방황을 접고 지난해 겨울부터 퀵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고 오토바이는 동생이 사줬다. “무엇을 해야 하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로 생각을 바꾸니 퀵서비스가 떠올랐다. 이씨는 오토바이와 택시 운전 경력이 꽤 된다. 오토바이는 중국에서부터, 택시는 한국에서 몰아봤다.

 

최근 이씨는 택시경력을 살려서 ‘사방빨리’라는 이름으로 대리운전 콜사업도 시작했다. 손님과 대리운전기사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일이다. 콜사업은 퀵서비스를 하면서도 할 수 있어서 이씨에게는 딱이었다. 아직은 걸려오는 전화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하루하루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씨는 인터넷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안강의 중국동포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일을 마치고 단칸방에 들어와서는 퀵서비스 주거래처를 홍보하는 포스팅을 한다. 단골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이씨만의 특급 전략인 셈이다.

 

퀵서비스를 하고 나서 전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약간의 돈도 모았다. 그러나 이씨는 여전히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고 있다. 집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씨의 꿈이 아주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다행히 며칠 전 이씨는 국민임대아파트에 당첨됐다.

 

어머니의 종용으로 교회에 나가게 됐다는 이씨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신다”는 말씀을 늘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간다. 다시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신 그분께 감사드리며 성실하게 낮은 자세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출신의 장애인 이태준, 앞으로도 그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절망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그의 강한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족과의 빠른 재회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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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27 [03:2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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