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신문=안명옥 교수] 1차 세계대전 이후 개방된 성
이렇게 하여 임신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후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주로 상류층에서부터 시작된 성의 해방은 마침내 전 계층에 파급되어 성에 관한 많은 금기를 없애고 남녀가 자유롭게 취향대로 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유행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현대적인 옷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파는 사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소위 말하는 건달,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도 일으켰으며, 성생활의 기쁨을 강조하는 경향도 일어나 남녀의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여러 가지 대안법에 대한 다양한 체위와 구음법 등을 위한 책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경제공황이 시작되면서 남녀 모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장에서 일하는 데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으며, 여성도 직장에서 함께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性 해방 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전쟁은 평상시의 성생활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전쟁과 달리 2차 대전은 수많은 여성이 간호원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터에서 남성들과 함께 생활하였으며 그로 인한 고아 문제나 매춘 등, 전통적인 성도덕과는 판이한 상황을 야기 시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은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남성에게 의존하던 기존의 경제력을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그와 함께 여성의 교육이 강조되어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많이 강조되고 역할도 두드러졌습니다.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의 성의 기준은 과거 빅토리아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서구사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워지고 성 관념 또한 다양해져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부부교환(swinging), 자위행위, 독신자의 성생활 등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전 후 소비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각종 광고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풍조가 소비성향을 자극함에 따라 성의 자유화 내지 성이 상품화로 변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56년에 최초로 개발된 경구피임약으로 인해 더욱 여성이 임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고, 그에 힘입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