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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칼럼]돈 섹스 권력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7/15 [14:59]

 

 

[한국인권신문=박병률]

 

영성신학자 리처드 포스터는 저서 <돈 섹스 권력>에서 매일매일 직면하는 수많은 <윤리적 선택>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역시 신학자이자 설교자 존 파이퍼 역시 그의 저서 <돈 섹스 권력>에서 이 세가지는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선물이자 좋은 기회’라고 하였다.

동시에 그것은 곧 그것 자체가 우상으로써 숭배의 대상이 될 위험요소라고 하였다.

다시말해 <돈 섹스 권력>의 오용과 추구 남용은 <우리모두>의 부패한 마음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저술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와같은 세가지 덫이자 기회앞에 매일매일 직면하여 파편적으로 다가오는 윤리적 선택앞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절박성과 솔직성에 기인한다.

권력의 재편과 정착에 천착했던 시기를 지나오며 현재는 돈에 대한 정의론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진행중이며 차후엔 속히 성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박원순시장 사망을 기화로 성의 공적 사적인 면과 그것의 다양한 진실을 허심탄회하게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써 불행이기도 하고 제2 제3의 사고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임시봉합하고 감추며 터부시만 해온 결과 곳곳에 직간접적 역기능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행복도에 있어서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여러 가지 개인과 집단 병리현상을 야기할 것이다.

기회(선물)로써의 <돈 섹스 권력>은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인간다운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 세가지를 추구하며 사는 게 인간이다.

문제는 누락과 중복, 남용과 오용, 수단과 목적으로써 얼마나 조화롭게 자신에게 적용하는지가 관건이 될것이기에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기로써 언제든지 토론과 소통이 필요하다.

목적이 되어버린 세가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제켜두고, 우리사회의 극단적 위험은 박원순시장 사망과 관련되어 다른 분야의 문제와 중첩되어 다가오는 문제로써의 심각성에 있다.

극한적 진영논리에 처한 집단이 양분되어 공격과 수비, 맹목성에 따라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꺼리로써 이용한다면 극심한 국론분열로 인해 국민적 손실이 자명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법은 경기장의 룰이자 규칙이다.

국가나 체제의 법은 그것대로 철저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경기가 한창인 경기장에서처럼 진행되어야 한다는 예가 가장 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다른 경기의 규칙을 축구에 적용한다는 것이나, 심판이 결정을 미루다못해 경기시간을 한참 지나버리거나, 짜고치는 고스톱이 되거나 편파, 선택적 적용을 한다면 관중의 원성을 사게 될 것이다.

너무나 룰을 과잉 적용해도 좋은 심판이 아니고 좋은 경기가 아니기에 외면을 받을 것이다.

물론 너무 두루뭉술 해태를 해도 그것은 좋은 경기가 아니고 좋은 심판이 아니다.

경기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고 관중의 참여와 행복을 고려한 절제있는 판단과 경기의 맥을 수준 높게 올린 선수들의 노력이 손잡아야 좋은 경기가 되는 것이다.

축복이자 위험요소인 성과 돈, 권력을 어떻게 꺼내어 다루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과 가정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억압하는 터부가 있는한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개인의 건강과 가정의 건강, 사회와 국가 경쟁력까지 위협하는 세가지 요소중에 금번 성에 대한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면 재발화를 꾀해야만 한다.

왜냐면 엉뚱한 문제제기로 시급한 현안을 뭉개고 전혀 다른 국면으로 끌고가게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엉뚱한 문제란, 이 사건을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면 해부를 통해 진영간만의 싸움으로 변질되지 말자는 이야기다)

하다못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솔루션프로에서 반려견 조차도 그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접근법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해결해주는 시대이다.

사회적 명사들이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어쩌면 소위 엘리트 층에서 더욱 사각지대가 많다라고 보는게 더 상식적이다. 브레이크 없는 위계나 지대에서 개인 심리적 문제에 대한 성찰이나 계기 없이 지나온 길은 더욱 다른 감수성이 더욱 빈약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지나친 기대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기에 그러한 일탈?에 놀랄 필요도 없으며 법(룰)에 따라 처분 될 일만 남을 것이다.

아쉽다면 우리문화의 원시적 위상에 따라 터부로 여겨지는 영역에서의 담론부재와 생명경시 현상이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죽음을 선택할까.

무엇이 자꾸 이 <생명>을 벼랑으로 이끌고 내모는 것일까.

자기자신과 집단무의식에 손잡고 벌이는 이 죽음의 행렬은 사무라이들이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할복과 무엇이 다르랴.

단지 시대와 공간에따라 영역과 의미만 다르다.

마치 돈, 섹스, 권력이라는 거대영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대만 다르다. 각각의 토대를 밟고서서 다른 지대에 선 자, 특히 섹스에 대해 조롱하는 어설픈 광경만 보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럼 위 3가지 영역만 있을까?

중간지대나 별도의 지대 등 천차만별 개인차가 있기마련이다.

세가지 중에 가장 강력한 위력으로 불모지에 가까운 영역은 섹스이 영역이다. 프랑스만 해도 대통령이 업무시간외엔 오토바이 타고 연인 만나러 간다고 했던 보도가 있었다.

독일을 비롯 서구와 아시아권에서조차 자유연애를 개인의 성적 자결권에 맡기는 문화가 있어서 밀실에서 일어나는 일탈?로 인해 극단적 비난과 구호가 근본적으로 별무효과 없기에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스스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일도 없다.

권력의 중복과 누락

돈의 중복과 누락 등은 법과 제도, 인식의 틀을 개선함으로 인해 어느정도 양성화 되어 끊임없이 진행되는 반면에 성적인 문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위 2영역처럼 근본적인 인식의 틀을 들춰내어 바라보지 않는다면 영원한 불모지로써 어긋난 패미니즘적 고착으로 이어질 것이다.

첫단추가 잘 못 꿰어지면 마지막 단추는 갈 곳이 없다.

심리치료 중에 <체계적 둔감화>라는 프로그램을 성적 영역에도 문화적으로 정착시켜 여성이나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서만 바라보지 않는 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성을 비하하고 선긋기로 책상을 나누던 시절에서부터 관습에 따른 정력문화 등에 기대어 내려오고 성역할에 대한 이분법적 관성도 이젠 따져봐야 한다.

다시금 <돈 섹스 권력>을 동일한 선상에 두고 바라볼 때, 실제로는 각자 추구하는 수단이나 목적만 다를 뿐 같은 기제로 본다면, 특별히 이상 할 것도 없고 딱히 정상적인 존재도 없다.

다만 유난히 우리사회는 성에 대한 지나친 편견과 억측으로 인한 병리적 역기능적 폐해가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존 파이퍼와 리처드 포스터의 저서 제목 정도만 인용했을 뿐, 그 책의 본문을 읽어본 것은 아니다.

약간의 떠도는 요약을 통해 바라본 바에 의하면 3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와 잘 다루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물이 되고, 잘 못 다루거나 바라보면 파멸로 이끈다는 정도만 발견했으며 공감한다.

나아가 둘 다 그리스도교로서 목회자이거나 설교자 신학자로서 성경적 토대로 저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위치나 지위를 보더라도 누구보다 자아성찰 능력이나 영성이 탁월하게 계발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믿는자라도 이 세가지 영역에서 자유로울수 없슴의 고백과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하물며 과부하가 걸릴정도의 소위 상위계층의 관리에게 성적 정체성에 너무도 무지한 자아와 몽매한 사회적 눈만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이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나 <세상에 나쁜개는 없다>프로는 난무하는데 왜 성인들의 성교육 등 성적 둔감화 프로같은 문화적 프로는 없는가.

댄스배우면 바람났다고 바라보고, 포옹은커녕 바라보기만 해도 색안시 해서 룸싸롱과 각종 방문화가 만연한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여성단체는 수많은 건전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배타적이고 낙인찍어 구분하고 선긋기에만 시간과 비용을 들일것인가. 이를 바탕으로 세상 드문 <미투>문화를 정의 사도처럼 페미니즘 문화로 자리메김 할 것인가.

미투문화를 오용하면 망신주기에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어 진영간 세대결과 정국의 마비를 가져오게 되어 그 폐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다가오며 죽음의 행렬로 스스로 가는 홀로코스트의 그림자가 된다.

박원순시장만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족 내이웃의 문제이자 바로 당신과 나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왜 망각해야 할까.

그 누구도 자신이 그러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만큼 돈과 섹스 권력은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크고작은 커뮤니티에서 상존하는 문제이다. 가족내의 돈과 섹스 권력은 없다고 보는가?

모두가 감수성의 폭압으로인해 소외되고 불안하여 자유롭지 않은 세상을 관통해서 걸어가는 존재다.

좀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본과 의제를 통해 너무 멀리 나갔던 영역에서 돌아와서 우리사회에 더 이상 여성운동가 등이라고 하는 별정영역과 집단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얼마나 사회와 집단, 개인이 뒤떨어졌으면 무슨무슨 운동가가 다 있을까? 미지의 영역에서의 운동가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악취가 무성하고 해결되지 않은 영역이나 푸세식 변소가 있는 사회는 그것을 퍼 나르는 인부가 필요한 법. 이제는 수세식 변기처럼 자동화 시켜 별도로 신경쓰지 않는 <돈 섹스 권력>이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이 사건을 기화로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여 정치적 목적을 취득하려는 것은 똥물로 온동네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려는 폭력으로 보면된다.

이는 푸세식 변소를 없애, 파리와 악취 등 전염병을 없애려는 노력과 배치되는 행태로써 전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다.

오래된 병폐는 하나하나 제거하여 근본적인 개선에 노력을 쏟아야지 개인의 아픔과 하나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악취를 만연케 하는 행위가 될것이기에 사회적 공기?인 언론은 더욱 공동체적 정신을 통해 거론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더 이상 이러한 사건이 없어야 한다는 의식개혁만이 사회공동체를 건강하고 건전하게 육성하여 저출산과 자살률을 막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열게 된다.

이웃을 의심하고 사람을 배척하는 세상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사회적 고비용과 저효율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생산성의 악화도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박원순의 공과를 굳이 다룰 필요는 없다.

<공은 공대로 사는 사대로 폐는 폐대로....>라는 말처럼 공허한 말은 없다.

이 말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고 합리화도 안되는 말이고 어쩌면 고인의 입장에서 명예에도 최악의 말이 되리라.

필자는 사람의 편에서서 혹은 진영의 편에서서 말하고싶지 않다.

이는 곧 스스로 폄하되기에 말이다.

하지만 자명하다. 이 글 속에 필자가 말하고 싶은 진실이 다 들어가 있다.

죽음으로 이끄는 세상과 고별하자는 것과, 이 사건을 가지고 오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죽음의 결과는 실로 커서 스스로 가지고 떠날 정도에서 법적 공소권도 없는 시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시각각 부화뇌동하는 언론의 드러내기 식 보도행위는 과감히 일소해야 한다.

제2, 제3의 가해는 아직도 원시성에 가까운 토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악순환을 방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박원순은 우리 개인의 단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권력이라는 위치의 정점과 돈에 대한 지나친 터부 양극단에 서서 성의 딜레마에 좌초되어 매도 당할 위치에 선 것이다.

죽음도 그 후유증을 거두기에는 우리사회의 후진성이 너무도 깊어 개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군의 적은 적의 우군’ ‘나의 결점은 상대의 표적’

언제까지 사회의 후진성을 물고 늘어지거나 반대급부 상대의 결점을 찾고 있을 시간은 없다.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 이후, 터부시 바라보는 영역에 대한 솔직한 담론과 구체적인 교육적이고 실제적인 접근이야말로 근본적이고 해결지향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예스냐 노우냐를 분명히 하고 바로 해결지향적인 대처로 진행되어 병리적인 면은 치료와 치유프로그램으로 유도하는 신속성에 따라 처리되어야만 처벌지향적인 반복의 악순환을 끊게 될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고, 유무형의 양상으로 지금 이순간 진행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의 문제처럼...

 

박병률 highea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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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15 [14:59]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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