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생존의 회랑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20/02/24 [10:54]

 

 

[한국인권신문=엄길청]

 

처음에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 계산과 분석을 도우려고 등장한 디지털 세상은 갈수록 힘이 세지고 넓어지고 막강해진다. 이젠 디지털 세상이 해결책으로 행동력으로 또 창조력으로 그 위세가 등등하게 진행한다. 드디어 인간사회가 디지털 세상에  두려움을 느껴지는 단계로도 감지가 된다. 과연 그럴까, 이젠 사람은 더 이상 디지털의 위세로 인해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직접 또는 여럿이 할 수 없는 것일까.

 

이처럼 디지털 세상의 혁신으로 인간의 행동과 가치와 생각을 여러 가지로 흔들어 놓고 있는 이 즈음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놀라운 공중질병의 창궐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인 생산기술 국가이고 생활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환자가 가장 많아지고 있다는 현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정학적인 근접성의 한계는 넘을 수 없는 것임을 절감하게 한다. 또한 공중질병의 속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더 위험하고 다중 속에서 더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사건이다. 

 

그동안 현대인류가 진행시켜온 인류공동 번영의 도도한 담론으로 사용한 큰 단어들은 자유, 교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이념의 전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서라도 자유주의 사상을 심어주려고 노력을 했고, 경제적인 이해증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넓은 곳으로의 교류를 위해 애써왔다. 또한 사랑의 실천을 꿈꾸는 종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선교의 현장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이제 홀연히 나타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 모든 하나의 지구, 하나의 인류라는 거대담론을 일순간에 궁지로 내몰고 있다. 통행금지 구역이 생기고 교류자제 국가가 생겨나는 오늘의 현실은 인류 공동의 정신가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디지털 세상은 그동안 민중들의 수평적인 사회적 연대의식을 강하게 키우는 한편, 개인적인 혼자의 삶을 편리하게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는 마침 민주화의 진행과정에서 찾아온 디지털 사회의 등장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진보도 큰 변화를 보인 나라이다. 특히 오늘의 한국정치는 광장에서 거리에서 정치이슈가 공동의 행동이 되고 시민의 힘이 되어 실제의 정치나 행정의 리더십으로 형성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대중이 모이고 낯선 사람들이 서로 엉키고 어울리는 일은 자칫 생명의 위험이 되거나 남의 생명을 위태롭게도 한다는 생각이 점점 부지불식간에 학습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일로 인해 이제 대중은 사회적 이유만으로 다투어 광장으로 나오고 정의에 용기를 내어 거리로 나오고 함께 공분하고 함께 치열하게 투쟁하는데는 많은 고민이 따르게 될 것이다.

 

당장 진보적인 정치인인 현 서울시장 조차 코로나바이러스를 명분으로 광화문 광장의 정치집회를 공중위생 문제로 허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지방으로 환자가 확산되고 병원에서 집에서 특정 공간에서 격리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애석한 사망자도 생겨나도 있다.  그러면서 갑자기 공간이용의 규제가 나오고 통행의 제한이 생기고 자유로운 교류가 움츠려드는 생경한 세상을 본다.

 

생각은 새로운 길도 열지만, 생각은 있던 길도 거두어들인다. 생리학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역사학자인 그의 아내 미셀 루트번스타인은 그들의 저서 “생각의 탄생(spark of genius)”에서 인간의 느낌과 상상력이 위대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이 책에서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진 짐펠이란 의학자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그는 당시에 농촌에서 농부들이 공중위생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가축의 접근을 막기 위해 우물에 울타리를 치고 가축도 울타리를 치도록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도 격리하여 의사들이 체험하고 관찰하여 해결책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해서 오늘의 공중위생 관리와 처치의 모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격리의 치료모형은 이렇게 생겨났지만, 지금 다른 얼굴의 격리로 우리를 찾아온다. 바로 그 격리가 새로운 질서로 굳혀지거나 마음의 차단으로 이어지면 단절과 차단과 격차라는 비정한 문명의 분리충격은 시작될 수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선견지명으로 볼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도 확산방지의 효과와 새로운 해결책의 규명을 위해 건강한 사회와 구분되고 격리된 관찰과 감시상태의 공간 속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혼자 이런 분리와 두려움을 겪을 것이라곤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고 참담한 고통이다. 어서 그 해결책과 속 시원한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충격이 더 커지면 우월한 사람들은 새로운 특정한 생존의 회랑을 만들어 우리 이웃의 삶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지능인프라로 등장한 디지털 세상은 이같이 인간사회의 온전한 삶의 생태모형(eco-system)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이란 물리적 사물과 컴퓨터에 의해 동일하게 표현되는 가상모델을 통해, 원하는 대로 더 안전한 인간의  생존자산을 최적화하고 불의의 사고를 최소화하고 번영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데 사용하면 된다.

 

공원에서 정원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병원에서 저택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시장에서 자기 집 창고로 쇼핑 현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생길까 두렵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데 중세의 유럽 역사를 돌아보면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부디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생존의 회랑 속으로 숨어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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