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투자노동에서 투자행동으로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20/02/19 [09:21]

 

 

[한국인권신문=엄길청]

 

민주 사회와 주주 경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평등한 세상과 평범한 세상도 같은 시선에서 보는 미래사회이다. 민주정치가 실행되지 않았으면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았고, 국민들이 주주가 되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은 그림의 떡이다.

 

땅이나 기술이나 재료나 지식이 특정한 사람들의 사정거리에 있으면 빈부격차는 불가피한 사회상이지만, 공유와 공감과 공생의 교류와 교환의 터전이 생긴다면 더불어 사는 세상은 더 이상 그림만은 아니다.

 

주식투자는 일견 개인들의 지혜의 각축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보면 서로 언제나 사회적 행동을 지향한다. 그래서 투자지표를 보아도 종합주가지수를 보면서 나의 주식을 본다. 내 주식의 주가를 보면서도 경쟁사의 주가도 본다. 심지어 요즘은 한국에 투자하면서 미국 주가를 먼저 본다.

 

인간의 경제적 행동은 이런 특징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인간의 행동은 무리를 이루려한다”고 로버트 트랙터는 말했고, 존 L. 케스터는 대중 안에 있으면 세상을 보는 힘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제 사회 속에 있으면 더 이상 독립의 오류와 동질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도 했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살고 혼자 노는 일은 독립의 오류가 따르고, 끼리끼리 행동하고 끼리끼리 살면 동질의 오류가 있다. 요즘 대중미디어의 오류가 바로 그런 셈이다. 점점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끼리끼리의 영상과 일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그들의 희망시청률은 그림의 떡이 된다.

 

정신이나 생각은 혼자의 몫이지만 행동은 항상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내가 필요해서 집을 구입했지만 그 때가 마침 집값이 오를 때면 정부는 다른 때와  달라 세금을 더 매기려 든다. 집값에 유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분위기를 다스리려는 것이다.

 

주식을 라면처럼 혼자 사고 혼자 먹으면 희망대로 일사천리가 되지만, 주식주문시스템에 결정을 맡기면 나도 모르는 가격과 수량이 잡힌다. 그래서 시장에 있으면 항상 사건의 인과성보다 사회적 인과성이 더 크다.

 

요즘 LG화학이란 주식이 단기적으로 핫 하다. 원래 무거운 주식이고 그 기업도 원래 호재의 인터발이 긴 점잖은 회사다. 그런데 누구는 그런 회사의 숨이 가뿐 주가를 보고 유럽의 현지 배터리공장의 생산수율의 문제가 적지 않던데 하면서 한발 물러서려 한다. 그러나 이런 주가의 변동을 보고 해당기업의 수율정보에 집중하면 사건에 주목하는 독립의 오류가 되고, 마침 한국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모빌리티 테마라는 공동의 생각에 놓이면 배터리관련 주식만을 찾아 투자하는 공동의 오류가 생긴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그 가운데서 더 큰 힘이 작용하여 그 당시의 주가흐름이라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난다. 설사 둘 다 나중에 보니 오류였다 하더라도, 당시의 주가는 독립의 오류보다 공동의 오류가 주식시장의 사회현상을 더 많이 좌우한다.

 

더 시간이 흐르면 그 기업의 내재된 가치변화가 더 중요한 판단의 기저이지만, 늘 상 움직이는 대중들의 시장주가는 이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만든 행동의 산물이다. 

 

개인의 노동이 주제가 된 세상을 오래 살아오면서 주어지는 임금은 개인의 생산적 성과에 연동하는 철칙을 믿고 살았다. 조금 더 나아간 세상에서는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 공동의 성과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투자시장은 그렇지 않다. 내가 스스로 정하고 혼자 판단하는 것 같지만, 나의 투자성과는 사회분위기에서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부동산 중개인이 집값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고, 주식매매 상담사가 주가를 보는 점쟁이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의 사회분위기를 진단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안목이 좋아야 부동산이나 주식의 중개인은 돈을 번다.

 

혹자는 이제 인공지능이 나오고 빅 데이터가 돌면 인간지식의 체계적 분석능력이나 결정재능이 소용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미 AI가 많은 투자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대중이 만드는 사회직관은 영원히 대중의 몫이다.

 

영국이 브랙시트로 유럽공동체에 돌을 던졌다. 한 국가의 보수정치인들이 주도한 독립적인 오류라면 영국의 이런 결정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선진국들의 내재적인 국가행동의 새로운 조류의 시작이라면 영국은 선수를 친 셈이다. 아베총리 저 친구의 망발도 그런 끝을 겨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2020년 2월에 한국증시에서 LG화학이 급등하는 것을 해외공장 생산정보로 보면 우려가 되지만, 만일 이 시기가 한국 증시의 모빌리티 테마투자로 가는 사회분위기의 큰 출발점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지능경제가 와도 주식투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사려고 할 때 꼭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보아야 하는 것은 이래서 옳다. 이 문제는 알파고의 담당사안이 아니다. 시장 참가자나 이해당사자 모두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래서 미래는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투자에 관한 생각은 그래서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갑자기 나의 뇌를 스치는 주식의 생각이 떠올라 행동했더니 알고 보니 그 때의 시장 분위기가 내 생각을 도울 때가 있고 그 때 일생의 행운이 찾아온다,

 

전설로 전해지는 투자의 대가들은 지금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거래나 주가의 그래프를 스스로 그리고, 재무정보를 발로 뛰면서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앞으로 점점 이 일들은 기계지능들이 담당한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세상에서는 인간의 고유한 사회적 인지역량 차이의 공감에서 결국 초과이익은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2020년 연초의 주식시장이 주는 일련의 느낌은 모빌리티의 테마가 한국증시의 사회경제 현상으로 서서히 감지된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길고 긴 바닥 조정국면에도 그래서 자꾸 눈길을 보내게 된다.

 

주식의 장세판단은 항상 지금은 맞고 다음에는 틀렸다. 이제 개인투자의 초과이익은 치열한 지식노동만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과 믿음의 사회행동 참여에서 커진다. 문제는 나의 행동력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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