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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ba Out, 굿바이 코비 브라이언트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1/30 [14:04]
 


 

 

[한국인권신문=백종관기자]

 

조던에 향수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던 남자, 조던에 가장 가까웠던 남자, LA 레이커스, 그리고 NBA의 전설인 코비 브라이언트가 1월 26일 LA인근에서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 은퇴한지 불과 4년 만에 그의 나이 고작 41세의 안타까운 사고였다.

    

미 LA당국에 따르면 전용 헬기는 26일 오전 캘리포니아 주 칼라바사스시에서 추락해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둘째 달 지아나 브라이언트를 포함해 탑승자 9명 전원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아나의 농구 경기 참가를 위해 이동 중이었으며, 지아나의 농구단 팀원인 앨리사와 페이튼과 그의 부모, 그리고 농구단 어시스턴트 코치와 조종사 등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다. 코비와 그 의 딸을 비롯한 9명의 사망 소식 이후 NBA를 비롯한 전 세계의 농구 팬들은 슬픔에 뒤덮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소식이 보도된 후 트위터에 "끔찍한 뉴스"라며 "브라이언트는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중 한명이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려 했다. 그는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고, 미래에 대한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유족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고 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는 "코비는 세계와 미 전역의 농구 팬들에게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줬다"면서 "매우 짧은 시간에 매우 큰 삶을 살다 갔다"며 애도를 표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나는 코비를 사랑했다. 그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었다."면서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가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LA 레이커스에서 그와 함께했던 또 다른 '레전드' 샤킬 오닐은 TNT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코비가 이렇게 일찍 제 곁을 떠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농구 선수 중 한명이었던 코비를 너무 빨리 잃고 말았다. 코비의 가족들과 이번 참사에서 희생된 모두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해 울며 말했다.

    

브라이언트가 마지막 트위터에서 언급한 르브론 제임스도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코비)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당신이 정녕 위대해지길 원한다면, 그리고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위해 끝까지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한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고 적었다.

    

또 제임스는 "그(코비)는 공격적으로 무결점의 선수였다. 당신이 그를 막아서면 그는 3점 슛을 때렸고 당신이 몸으로 그를 밀쳐내려 해도 그는 당신의 주변에서 돌아 미드레인지에서 득점했다. 그의 기술과 선수로서의 열정 덕분에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은 “코비는 스포츠에서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나에게도 물론이다. 그는 매우 특별한 삶을 살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코비의 사망 날,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도 브라이언트에 대한 추모로 막을 열었다. 진행을 맡은 앨리샤 키스는 "아티스트를 축하하기 위한 음악계의 가장 큰 밤을 위해 우리가 모두 모여 있지만 솔직히 우리는 지금 미칠듯한 슬픔을 느끼고 있다"며 "로스앤젤레스와 미국, 세계는 영웅을 잃었다"고 말했다.

    

뒤이어 리오넬 메시, 호날두, 타이거우즈, 데이비드 베컴, 네이마르 등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스포츠클럽, 셀럽들이 애도의 물결을 표했다.

    

  코비, 농구, 그리고 맘바 멘탈리티

 

 

NBA선수였던 조 브라이언트를 아버지로 둔 코비 브라이언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의 지명을 받은 후 곧바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을 줄곧 LA 레이커스에서만 뛰었다.

    

코비는 20년 동안 레이커스를 5번 NBA 정상에 올려놓았고, 자신은 ROY(Rookie of the year)를 시작으로 All-star 18회, All-nba team 15회, All-defensive team 12회, Season MVP 1회(2008), Final MVP 2회 등 엄청난 업적을 쌓아올렸다. 또한 한 경기 81득점으로 한 경기 최다득점 부문 2위로 Mr.81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NBA 통산 득점 3만 3천 643점을 기록하여 카림 압둘 자바, 칼 말론, 르브론 제임스에 이어 NBA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전설중의 전설이였다.

이에 LA 레이커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브라이언트의 선수 시절 등번호 8번과 24번, 두 번호를 모두 영구 결번하였다.

    

코비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득점력과 화려하고 다양한 스킬셋, 그리고 이를 공격에서 마무리 해내는 타고난 유연성과 끈질긴 승부욕으로 팬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슈퍼스타였다. 또한 코비는 조던의 모든 기술을 연구하여 보여주면서 조던키드로서 가장 조던과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련된 일화로 마이클 조던에게 전성기 컨디션으로 지금 NBA선수들과 일대일 대결을 하면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조던은 "다른 선수들은 다 내가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코비만큼은 승패를 장담할수 없다." 라는 발언을 한 것이 있다. 조던은 "코비는 나의 모든 기술을 훔치기 때문이다." ("He steals all of my moves”) 언급하며 코비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이에 대해 코비는 "옛날엔 모두 당신의 플레이를 따라하고 나도 당신을 따라했지만, 지금은 다들 나를 따라한다."라는 패기로운 답문을 한 것도 유명하다.

    

이런 스타성과 더불어 코비는 농구를 직업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 전부라고 생각하는 노력과 근면함으로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기도 했다. 농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큼은 마이클 조던을 넘어섰고,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코비는 우승한 다음 날에도 슛 연습을 쉬지 않았고, 팔이 부러진 다음 날에도 깁스를 한 채 코트에 연습하러 나와 동료선수들과 트레이너들을 기겁하게 만든 일화도 있었으며, 아킬레스건을 다친 부상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투 2구를 넣고 경기장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농구팬들에게는 생생하다.

    

그리고 코비의 개인 훈련 스케줄은 아침 4시에 기상, 5시 30분에 개인 체육관에서 훈련 시작, 각각 5개의 스팟에서 200개씩 던져 들어가는 것만 카운트했고 완료 후 같은 5개의 스팟에서 페이더웨이로 100개씩 카운트, 이후 팀훈련 종료 후 또다시 개인 훈련 시작, 이 후 웨이트트레이닝까지 병행하였다. 보통 개인 연습으로만 하루에 1500여개의 슛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이에 더해 연습시간외에 여자친구와 데이트 중에도 마이클 조던 비디오를 보며 농구를 보았다고 하니 그에 농구에 대한 열정은 상상 그 이상이였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농구를 할때 가장 큰 기쁨을 얻습니다. 난 농구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먹지 않고 즐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술 먹고 잡담할 시간에 공을 한번이라도 더 던지겠습니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 것을 남탓으로 돌리는 게으른 사람들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위대한 일은 근면과 인내에서 나옵니다. 이유를 대지 마세요.”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의 이런 근면정신과 농구에 대한 열정과 정신력은 그의 별명인 블램맘바와 멘탈리티를 붙여서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라고 불리며 농구선수들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런 그였기에 조던을 뒤이어 선수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귀감이 되는 선수로서 존경받았다.

    

우리 시대의 조던, 제 1의 코비

    

26일 코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슬픈 마음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경기를 뛰어야 했던 NBA 선수들은 경기 후 저마다 코비를 향한 애도와 코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은 모두 코비를 보며 꿈을 키워오고 농구를 사랑해온 선수들이였다.

    

워싱턴 위저즈의 트로이 브라운은 고교 시절 나이키 캠프에서 코비를 처음 만나 코비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직접 들은 에피소드를 말하며 감사와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때 코비의 이야기는 내 마음 한 곳에 강하게 박혔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경험은 내가 노력을 이어가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농구에 내가 가진 110%를 쏟아 붓는 계기가 되었다. 코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같은 팀 메이트인 브래들리 빌은 애틀랜타전을 치르던 중 벤치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경기 후 그는 코비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농구를 대하는 코비의 마음가짐과 자신감이 너무 좋았다. 자만함이나 건방진 것이 아니였다. 코비는 스스로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코비에 대해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대표적인 코비키드로 일컫어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드로잔은 “코비는 내게 전부였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코비에게서 비롯됐다. 지금 내게서 코비가 준 것을 빼면 나는 여기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농구에 대한 사랑, 열정, 의지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내 모든 것이 전부 코비로부터 왔다. 어떤 단어로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슬픔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코비는 농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전 세계에 영감을 준 존재였다”라고 말했다.

    

코비를 동경하여 24번을 달고 있는 토론토 랩터스의 노먼 파웰은 “코비는 내게 모든 것을 의미하는 존재였다. 승부사 기질과 매일 같이 노력하고 농구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는 마음가짐을 코비에게서 배웠다. 그의 ‘맘바 멘탈리티’를 나 자신에게 이식하려고 했고 그를 통해서 농구와 인생 모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자세를 가지고 싶었다. 코비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가진 재능을 노력을 통해 극대화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코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에 치러진 NBA 경기들에서는 경기 시작 후 한팀은 아무 플레이도 하지 않고 공격제한시간 24초를, 한팀은 아무 플레이도 하지 않고 하프코트를 넘어가지 않으며 8초를 소진했다. 코비의 생전 등번호가 24번, 8번이었던 것에 착안한 추모 의식이었다. 공격제한시간 및 하프코트 바이얼레이션 제한시간이 끝나는 24초, 8초 부저가 울리면서 양팀 벤치와 관중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24번, 8번의 슈퍼스타, 코비를 추모했다.

    

미네소타의 앤드류 위긴스는 다음날 경기에서 추모의 의미로 자유투 라인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8초를 소진했는데, 이 자리는 코비가 자유투로 득점해 조던의 통산 득점을 넘긴 역사적인 자리였다. 현지 해설진도 이를 언급했다. 이에 관련하여 위긴스와 코비의 일화로는 위긴스가 자신의 우상이었던 코비를 만나 경기에서 상대로 1대1에서 득점을 올리자 코비가 “어디서 많이 본 움직임인데?” 라고 말하자 위긴스가 “난 당신을 따라한 거에요.”라고 말했었다.

    

브루클린 네츠의 스펜서 딘위디는 코비가 나에게 “넌 내가 봤을 때 올스타야”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올스타는 투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는 뽑히기 어려운데 이제 뽑히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올스타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알아줬으니까.” 라고 인터뷰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센터 조엘 엠비드는 “2010년 NBA 파이널을 본 뒤, 코비를 보고 농구를 시작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미친듯이 슬프다.”라고 이야기 했다. 코비키드로 유명한 보스턴 셀틱스의 제이슨 테이텀은 “그는 나의 아이돌이였으며, 영웅 이였고, 제가 농구를 시작한 이유였다.”고 인터뷰하며 애도를 표했다.

    

이들을 비롯해 NBA 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이 코비의 농구의 향한 열정과 사랑이 자신이 농구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됐으며 이 일의 열정을 가지며 삶을 살아가는 모토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애도의 물결을 표하고 있다.

    

코비는 업적만으로도 위대한 농구선수였다. 하지만 업적을 넘어서 선수들뿐만 아니라 꿈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위대한 멘토이자 존경받을 만한 인간이었다.

그는 코트에서는 냉혹한 킬러의 면모를 보여준 승부사였지만 코트 밖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였으며, 또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열정적인 지도자였으며,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이제는 그를 코트에서나 현실에서 볼 수 없지만 코비가 살아생전 코트 안팎에서 보여준 맘바 멘탈리티와 삶과 농구의 대한 열정과 정신은 앞으로도 위대한 유산이 되어 다음 세대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또 이어질 것이다.

    

Rest In Peace Kobe & GiGi

 

백종관기자 jkbae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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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30 [14:04]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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