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특집기사] 강남순 “예수는 페미니스트 였다”
"인권은 love one another!"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6/27 [10:33]

 

▲ 강남순 교수    © 한국인권신문

 

 



    

[한국인권신문= 허필연 강원춘천취재본부장]

 

지난 25일 춘천의<한국아나벱티스트센터>에서 TCU – Texas Christian University의 강 남순 교수가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책임적 기독교인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 즉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강 남순 교수는 강의 서두에 우선 ‘기독교의 과제가 무엇인가? 기독인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질문으로 던져 놓았다.

 

강 남순 교수는 위계와 그리고 교리와 조직으로 고정된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해 설명했다. “서구 기독교라고 하지만 기독교는 이제 서구만의 것이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의 기독교는 종교로서 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제도화된 기독교 영향권에서 전 세계는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예수와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 사이에 서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예수와 제도화된 기독교 사이에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인가?’ 가 과제이기도 하다. 니체는 바울과 예수를 비교하면서 최초의 기독교인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최후의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했다. 니체는 종교적 사실이란 없고 해석만 있을 뿐이라고 역설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즉 생명을 긍정한 예수에 집중했고 기독교는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집중했다.”라고 강교수는 제도화된 기독교와 예수 사이에 놓인 기독교인들의 현 위치를 짚어주었다.

이어 강 교수는 “제도화된 기독교 안에서 예수를 바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제도화된 인식 세계에서 ‘어떤 예수를 우리는 만나야 되는가?’라고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강 교수는 이번 강연 제목은 레너드 스위들러 저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는 책에서 따 왔다고 했다. “이 책에서 스위들러가‘예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한 근거는 ‘예수는 일부다처제를 금했고, 남편만 주도할 수 있었던 이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예수 부활의 증인이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예수의 여성제자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설명했다. 강 교수는 덧붙여 “최후의 심판 기준도 베고프고 목마른 자 그리고 이방인에 중점을 두었지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예수는 약자들, 버려진 자들과 생활했다.”라며 페미니즘과 예수의 연결고리를 피력했다.

 

강교수는 “이제 제도화에 갇힌 예수는 구제되어야 한다. 예수가 페미니스트였다는 논제에 가기 전에 페미니즘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페미니즘을 설명했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급진적 주장을 한다. 여기서 급진적 주장이라는 것은 뿌리로 돌아가는 것(going to the root)이다. 다시말해 뿌리에 박혀 있는 ‘여성은 열등적 존재 그리고 위험한 존재’라는 내면화된 남성 중심적 여성혐오 사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강교수는 여성혐오 사상의 쉬운 예로 하버드대학에서 전문 학부에 법학과, 의학과, 신학이 여성에게 가장 늦게 입학허가를 한 것을 들었다. 법, 의학, 신학은 다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 하버드대학의 이 세 과목을 가장 늦게 여성에게 개방한 까닭은 성숙한 사람만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여성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신학대학원이 가장 늦게 여성에게 문을 열었다고 했다.

 

강교수는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이 일었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시기는 노동환경과 임금수준 개선 등 사회적 불평등 현상에서 여성이 해방될 것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내세워 사회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급진적인 성격의 래디컬(급진적) 페미니즘이 발전했고 이때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쓴 페미니즘 연구의 고전인 《제2의 성》에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써, 여자의 성性이 제2의 성 즉 생후 다시 만들어지는 사회문학적 성이라고 주장했다.”며 이책이 페미니즘 운동에 토대가 된다고 했다.” 이렇게 페미니즘 운동이 부각되기 전,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모델은 사창가 모델과 농장 모델 두 가지였다고 했다.   이어 강교수는 페미니즘은 여성 중심적 인권이다. 여성 인권문제 말고도 다양한 인권 문제가 있다. 인종, 종교, 노소, 부자 빈자, 장애자 비장애자. 여기서 여성인권은 함정에 빠지게 되고 휴머니즘과 인권의 교차성을 발견한다. 존재 그 자체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것, 연대는 ‘윤리적 위계를 가지는 동정이 아니고 연민 즉 고통, 수난 역경도 함께한다”며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의 교차성과 페미니즘이 정치적 본질이 아님을 설명했다.

 

한편 강교수는 “책임적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연민의 종교로서 종교는 구원 클럽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열정으로 서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완전한 평등은 없다. ‘악이란 비판적 성찰의 부재’라는 말이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유의 부재로부터 온다‘라고 유대인을 독가스실에 보냈던 나치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악의 평범성’을 제기했다. 불가능성의 열정이란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을 향해 작은 걸음이라도 나가야 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특히 강교수는 “예수의 페미니스트 요소를 찾아 예수를 인권문제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즉 예수를 구속해야 한다. 기독교는 범 우주를 바탕으로 인류 보편 사상을 추구했던 그리스 로마 사상을 제치고 인류에게 자리 잡았다. 그것은 기독교가 사람 개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개별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사상 저변에는 개별 인권 존중이 깔려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 평등 ,박애(연대)이다. 이것이 우리기독교인이 예수를 재구속해서 지지를 받아야 할 당의성이고 의무이다. 책임 있는 종교는 이론을 가지고 인간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리는 도구로 써야 할 것이다. 예수의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를 실천하기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연대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 것을 믿고 씨를 뿌려야 한다.”라고 기독교 사상  뿌리를 이루는 예수의 개별 인권존중 정신을 되찾기 위해 ‘예수를 구속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강의를 마쳤다.

 

나도 질문 하나 했다. ‘페미니즘이라든지 페미니스트란 말이 주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 왜 굳이 여성인권을 여타 인권에 포함 시키지 않고 분리하는지? 상대성을 자극해서 역차별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에 강 교수는 ‘그렇다. 미국에서는 페미니스트는 심한 욕으로 쓰인다. 하지만 페미니즘에는 역사가 있다. 처음 미국에서 노예와 흑인 해방 외칠 때 여성도 함께 동참했다. 노예가 해방되고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워졌는데도 여성에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양성평등과 여러 차별받는 인권 운동에 같이 하는 것이 맞지만 이것도 상대성의 요구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인권은 ‘love one another’ 이다.  모든 인권의 기본이고 답이다.

 

허필연 기자 peelyuni@naver.com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네이버 블로그
기사입력: 2019/06/27 [10:33]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36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