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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현동현 (김광식) 가수 "제 무대는 요양원, 복지관, 장애우 시설, 교도소.."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5/29 [09:32]

 

 

[한국인권신문= 광주·전남 취재본부 이길주 기자]

우리가 젊었을 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사는 게 어디 그렇게 녹록 하던가요 만만하게 여기던 인생으로부터 어퍼컷 맞고 레프트훅 그리고 이단옆차기까지 맞고 보면 산 다는 것이 참으로 호락호락 하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되면 어느새 60이 아니던가요. 그래도 마냥 서글픈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요? 겸손해지는 방법도 깨닫게 해주지 않던가요?

    

혹자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 할뿐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연륜도 벼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사회를 온몸으로 부대껴 온 만큼 모난 곳 없이 둥그스름해 졌다고나 할까? 조금씩 버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덩치 큰 아름다운 완숙미를 갖춘 (형사기동대, 서울청 폭력계, 경찰청 보안수사대)를 거친 “내사랑 당신 뿐”의 현동현 가수를 편집실에서 만났다.

    

그는 1983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최우수상, 2001년 아이넷 방송대상, 2002 KBS제2라디오 최우수상 등 천부적인 끼를 지닌(무명)가수라는 타이틀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이력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주위에서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다. 소문에 따르면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의 정신적인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사람이란다.

    

“내 사랑은 당신뿐”의 가수 현동현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어요.

    

1년전 까지만 해도 그는 고급경찰공무원 이었다.

아니 경찰공무원 신분일 때나 지금이나 가수랍니다.

대체적으로 가수와의 인터뷰를 해보면 자주 등장 하는 멘트는 “음악은 나의 생명입니다.” 가 첫 번째 답변인데요? 라고 물으니 그가 답하길 도덕이나, 법이나, 관습 등이 좀 더 유동성 있게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가수)이라고 웃는다. 그러면서. 팍팍한 사회를 조화롭고 부드러운 사회로 미세먼지 처럼 탁한 사회를 활기차고 발전적인 사회 로,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들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산소를 제공 하는 소리꾼 같은 이가 목표란다. 그러면서 자기의 행위는 대중들을 위한, 사회를 위한, 나라를 위한, 한 몫으로 일조 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한다고 목에 힘을 준다. 그의 철학은 나를 내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마음으로 새기며 양심의 세계로 돌아보게 한다. 필자가 본 가수 현동현은 자율적인 행위의 예술가이며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필자가 물었다. “진짜 직업은요?”

그는 웃으며 답한다. “경호·경비에 대한 강사로·꽃 도매 홍보대사, 애들 아빠 그리고 힘주어 가수”라고 답한다.

그의 노래 중 “잘 해봐요”라는 노래를 만나기 전에 들어 보았었다. 세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며 일반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며 서민과 함께 하고자 하는 그만의 철학이 녹아 있는 듯했다. 만날 때도 “잘 해봐요” 헤어질 때에도 “ 잘 해봐요”, 누군가를 언제 어디에서나 만날 때도 “잘 해봐요”하는 인사성 대화의 표현은 그가 꿈꾸는 그만의 세상일까 싶다.

    

필자가 물었다. “사모님은 뭐하세요?” 하니 “집에 있죠.” “슬하에 자녀는요?” “큰아이는 영화감독이고 딸내미는 대기업에 다녀요” 하여 “왜 경찰을 그만 두셨어요?” 그러면서 “그 좋은 공무원(직업)을 퇴직 하셨는데요 집에서 반대를 안 하던가요?”라고 빈정대듯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노래가 있잖아요. 반대하지 않던데요”라고 답했다. 전자에도 언급했듯이 엄청 단단해 보이고 깐깐한 외모와는 달리 그의 영혼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러면서 중얼거리듯 이야기 한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행태로든 사회에 공헌하자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전국에 메아리치는 노래를 통하여 진한 향기가 가슴을 적시며 기쁨으로 활기차고 행복 가득한 삶(세상)이 되길 바라며 열정적으로 작은 힘이나마 이 사회에 기여 하고자 한다고.

그는 어려서 부터 자기만의 가수였다고 한다. 그만큼 노래를 좋아했단다. 틈만 나면 어디든 가서 봉사활동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20여 년 전 허리를 다쳐 입원 중일 때 위문공연을 하는 이들을 보고 남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지금은 한가한 시간도 있지만 예전엔 비번 등 쉬는 날 이면 그 시간을 쪼개서 뛰어 다녔단다. 그의 공연 장소는 요양원, 복지관, 장애우 시설, 교도소 등 소외된 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초록이 동색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저희 잡지사 역시 메이저 잡지사가 아니다. 그래서 대형기획사의 특급 가수 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고 무명 같은, 진짜 실속은 없지만 초지일관 열심히 뛰는 가수분들을 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명가수 라며 멋쩍게 웃었지만 필자가 볼 땐 대형 가수였다. 곧 3집 앨범이 나온다는데 대박이 나길 조심스럽게 바라 본다.

가수 현동현 (본명 김광식)은 무대에 나설 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본명 대신 ‘현동현’이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주변에 빛을 주는 사람이 되려는 뜻에서 빛날 현(炫)자를 썼다고.

    

조용필 가수를 참으로 좋아하며 며칠 전 어버이날 부모님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데 어르신들이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부르시는 모습 속에서 힘이 나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 거지요 라고 했다.

이길주 기자 biebwh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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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9 [09:32]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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