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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윤인대 박사, "아름다움을 나누며..."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5/10 [11:11]

 

 

[한국인권신문= 차은선 문화부 수석]

17여 년 전 필자의 막내딸이 7살 때 쯤 이야기이다. 통유리를 향해 뛰어가다 유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굴 여러 곳에 상처를 입고 아는 선배 소개로 처음 정신없이 아이 와 함께 방문 한 곳이 노원구에 있는 윤엔정 성형외과였다. 딸이라 얼굴에 큰 상처가 남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필자와 딸을 안심 시키며 “흉터는 안남을 겁니다. 신경 써서 촘촘히 꿰멨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상냥했던 목소리와 미소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필자가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을 때 원생들이 다쳐서 병원 가면 상처가 남지 않게 잘 치료 해 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성형외과라는 고정관념을 사라지게 만들어주신   윤인대 원장님을  이번 기회를 통해  소개 하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한다.

    

1. 윤인대 박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백병원 성형외과 전공의

   YNJ 윤앤정 성형외과 원장

   대한 성형외과 학회 윤리위원장

   대한 미용성형외과 학회 윤리위원장

   대한 성형외과 의사회 윤리위원장

    

  

    

<의사를 하게 된 동기>

 

윤인대 박사(이하 윤): 의사 집안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의사가 중요하고 보람된 직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5세경부터 자연스럽게 커서 어른이 되면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집안의 11번째 의사가 되었습니다.

    

<성형외과를 선택한 계기>

    

윤: 본과 4학년때 미국 마운틴사이나이 병원의 성형외과 과장을 역임하고 귀국한 백세민 과장님을 알게 되었고 백과장님 밑에서 수련을 받고자 인제대학교 백병원 성형외과를 지원하였습니다. 백세민 과장님은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학문적으로 뛰어나셨으며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성실히 수술하여 많은 환자들에게 미소를 찾아주셨습니다. 모든 과들이 환자들에게는 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수술과 치료결과가 눈으로 확연하게 확인되는 성형외과는 저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전문의 윤인대가 생각하는 성형>

    

윤: 수련기간 동안 4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환자에게 사랑을, 둘째 선배에게 존경을, 셋째 학문에 열정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명예를 위하여..

성형외과 입문하는 첫날 입국식에서 선서를 하게 됩니다. “환자에게 사랑을, 선배에게 존경을, 학문에 열정을 그리고 우리의 명예를 위하여!!”

    

그렇게 저는 4년간의 수련을 시작하였으며, 4년 동안 성실하게 수련하였다고 자부합니다.

1년차 때 저의 바람은 하루에 2시간만 지속적으로 자보는 것이었고, 1~2주 만에 한번씩10시간정도만 집에 갈 수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에 집에 가서 일요일 새벽에 병원으로 출근하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환자가 저의 가족이었고 선후배들이 저의 형제였던 시간이었습니다.

설이나 추석 때에는 컵라면을 하루에 한두 번 먹으며 연휴 내내 수술실에서 응급수술을 하고 병동환자들을 치료하며 지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 저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고 대학의 교수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내면서 저는 성형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성형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차별 없는 평등함을 기초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의미합니다. 태어나보니 선천성 기형이란 불평등을 안고 남들에게 차별받는 시선을 느끼는 환자들에게, 기형적 모습을 재건하여 남들과 비슷한 모습을 이루어주는 그런 성형은 자체로 아름다움입니다. 그런 결과로 환자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그것은 인간 존엄의 회복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 아름다움의 근원은 외모 안에 담겨있는 따뜻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자선 Charity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다루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인생을 사는 것에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람이 있었고 기억에 남는 환자와 환자를 대할 때 고려하는 점과 저의 마음가짐>

    

윤:1년차 추석연휴가 끝나가는 새벽3시경이었습니다. 3일간 저는 잠도 못자며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100여명의 환자를 수술하며 보냈고, 이제 일이 마무리되어 잘 수 있는 여유가 잠깐 생겼던 순간이었습니다. 5시 반에 일어나서 병동환자 치료하고 회진준비를 하여야 하니 무려 2시간30분이나 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4시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응급환자가 왔다고.. 꿀잠을 자던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또 2시간도 못자는구나 하고 일어나서 응급실로 갔습니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정서적으로도 평온할 수는 없었습니다. 응급실에는 어이없게도 10살짜리 여자어린이가 이마가 찢어져서 왔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새벽3시에 어린이가 이마를 다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너무 의아해서 어린 환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 뭐하다가 다쳤니?” 그랬더니 환자는 “싱크대 올라가다가 미끄러졌어요.”라며 답했습니다.

저는 더 어이가 없어서 “아니, 니가 이 시간에 거길 왜 올라가니?”라고 물었더니, 환자는 “설거지 하려구 그랬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상황이 조금 이상해서 “엄마는?” 하고 물었더니, 환자는 “엄마는 1학년 때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아빠가 술 먹고 오셔서 라면 끓여 드시고 주무실 때 제가 설거지 하려고 하다가 미끌어 졌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이라고 묻는 저의 질문에 “저기 계셔요.” 라고 대답하는데, 아빠를 보니 보호자 대기 의자에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는 연휴동안의 연속진료로 인한 피곤함이 싹 사라지면서 오히려 긴장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이 안 아프게 치료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씩씩하게 하자 이렇게 얘기하고 봉합준비를 마쳤습니다. 어린 환자들은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저는 마취주사를 놓을 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합니다.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두려움을 덜 느끼더라구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봐. 그럼 하나도 안 아프니까.” 이렇게 노래를 시켰는데.. 어린 환자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한 계단 올라가면 엄마생각, 두 계단 올라가면 아빠생각..” 이런 노래였습니다.

지금도 그 상황에서 제 눈가에 맺혔던 이슬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어린 환자의 삶이 너무 가여워서 봉합하는 내내 마음속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친 상처는 봉합을 잘 해도 흉터가 남는 경우가 많기에 걱정도 생겼습니다. 봉합을 마치고 저는 나이보다 어른스러울 수밖에 없는 어린 환자에게 제 명함을 주며 얘기했습니다. “언젠가 오늘 다친 네 이마의 흉터가 걱정이 되면 나를 찾아와라. 내가 반드시 해결 해 줄께.”

가끔씩 이제는 30살이 되었을 그 환자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때 응급실 진료로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상처보다 더 문제가 되는 환경이 있을 수 있고, 또 지금 한 수술의 먼 훗날의 결과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모두 인격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라는 숙연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제가 직업으로 하는 성형외과를 사랑합니다.

    

<혹시 취미생활이 클라리넷과 카레이싱이라고 하던데>

    

윤: 클라리넷을 6년 전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 태권도와 야구 축구 등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 집 엘리베이터에 놓여있는 벽보에 적혀있는 클라리넷 레슨을 보고 갑자기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습니다. 저의 선생님은 피바디(Peabody) 음대유학 후 귀국하여 시간이 잠깐 나는 동안 레슨 받을 학생을 찾던 중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찍 출근하여 아침레슨을 받고 클라리넷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카레이싱은 AMG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일 년에 한두번씩 참가하여 트렉데이 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AMG본사에도 가보았고, F1 상파울루도 패독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저는 운전하는 것이 늘 즐겁습니다.

    

<계획과 비전>

윤: 살면서 비전이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볼륨의 확장과 다수를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커나가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보아야겠다고 느꼈고, 그래서 동영상으로 환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올바른 진료철학을 설명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의 자료를 제공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의 질문에 유튜브 동영상으로 답변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한분 한분의 환자들에게 도움을 드리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의사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며 대학에서는 후학양성에 힘쓰고 바쁜 시간 중 틈틈이 클라리넷도 배우며 연주도 참가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윤교수님은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며 연주도하고

병원에는 음악이 흐르게 하며 환자들의 마음까지 평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분이다. 박진감 넘치는 카레이싱 취미생활을 즐기며 건강을 단련하며 행복하다는 윤원장을 보며 행복바이러스로 필자도 절로 행복해졌다. 훌륭하신 원장님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응원을 보내며 인터뷰를 마친다.

 

차은선 문화부 수석 cha5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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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0 [11:11]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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