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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거인 송해, 국민과 울고 웃은 60년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5/08 [10:41]

 

 

[한국인권신문=백승렬]

송해라는 두 글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출생해 1955년 창공악극단을 시작으로 송해는 대한민국 대중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반세기를 넘게 호흡해 왔다. 6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송해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단순히 그 자리에 오래 있었다고 송해라는 이름이 가치 있는 것일까? 60년이 넘는 시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92년의 시간 중에서 60년이 넘게 대중과 울고 웃은 시간은 매우 특별하다.

    

송해가 무대에 처음 올랐던 1955년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시기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척박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암울했던 시대였다. 그때부터 송해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방송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송해는 악극단 무대에서 방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또한 최근 세상을 떠난 故 구봉서를 비롯해 서영춘, 배삼룡 등 당대 쟁쟁한 희극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대중에게 웃음을 줬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문화 산업 또한 호황을 맞았다. 특히 1980년대 컬러TV가 보급되면서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은 다시 한 번 전환을 맞았다. 송해 또한 이 시기에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KBS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잡았다.

    

1980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2015년 11월에 1800회를 달성했다. 드라마 부문 최장수 기록을 갖고 있는 MBC '전원일기‘의 1088회를 훨씬 뛰어넘는 기록이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 10분에는 어김없이 시청자들을 찾아온다.

    

송해는 초대 진행자였던 위키리, ‘뽀빠이’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1988년 5월부터 마이크를 잡게됐다. 이후 1994년 4월까지 ‘전국노래자랑’의 얼굴로 활동했고, 잠시 김선동에게 마이크를 넘겼다가 같은 해 10월부터 현재까지 안방마님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송해에게는 공동운명체와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장윤정 박상철 등 쟁쟁한 가수들을 배출했고,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 등 가요계 거목들 또한 송해에게 경의를 표하며 무대에 오른다. 송해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청중들은 울고 웃는다. 그것이 바로 송해의 힘이다.

    

60년은 사람이 태어나서 환갑을 맞는 나이다. 송해는 6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중과 함께 울고 웃었다. 송해가 처음으로 예능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태어난 아이는 환갑이 넘은 것이다. 그래서 송해의 위대함은 알면 알수록 경이롭기까지 하다.

    

송해는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등 코미디계의 전설들을 비롯해 오늘날 대한민국 예능을 이끌어가는 이경규, 강호동, 이수근과도 호흡을 맞췄다. ‘전국노래자랑’ 상반기-연말결선에서는 여자 아나운서 및 가수들과도 함께한다. 오직 송해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60여년의 시간이 송해에게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충격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1994년 잠시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놓기도 했다. 또한 초창기 때 동고동락했던 옛 동료들을 하나 둘 씩 떠나보냈다. 2012년에는 ‘전국노래자랑’의 동반자였던 김인협 악단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송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잡은 1988년 이후 6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또한 8차례 올림픽이 개최됐다. 월드컵은 7차례 열렸다. 또한 대한민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냈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송해는 고목나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대중들과 함께한 것이다.

    

세계사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미국이 걸프전쟁을 일으켰고, 9.11 테러가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또한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분단국가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인종차별로 세계의 지탄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흑인이 대통령이 됐다. 송해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 증인인 것이다.

 

92세의 나이에 여전히 현역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해. 많은 방송인 후배들이 “자신이 공로상을 받을 나이가 됐을 때 송해 선생님이 시상하러 와주실 것”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송해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중들과 울고 웃은 송해의 60여년 시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Q. 데뷔 60년이 넘으셨습니다. 소회를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국노래자랑’ 덕분에 현역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방송인이라는 타이틀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Q.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주십시오.

    

국민들이 ‘전국노래자랑’을 자신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보시는 분이나 나오시는 분이나 내 프로다 이런 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전국노래자랑은 곧 우리들의 생활이다’ 이런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이 하는걸 보면 나보다 못하는 것 같고 ‘내가 하면 남보다 잘할까?’ 했는데 못하고 땡도 하고 비교도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또 원래 우리 민족은 뭘 해볼까 하는 게 근성적으로 있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Q. 선생님은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고 계신지요?

 

전국에 서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진솔한 애기를 들을 수 있고 나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건강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것 같다.

    

나는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다. 되도록이면 녹화 전날 그 지역에 가서 목욕탕도 가고 재래시장에 가서 현지 계신 분들과 소통하구 피로도 풀고 이야기하면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는다. 전 국민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고 나를 반겨주시고 찾아주시니 기쁠 따름이다. 팬 여러분이 3세부터 103세 까지 오빠 오빠하고, 초등학생들이 형이라 부른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Q.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을 이끌어가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후배들에게는 건강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다보면 이런 날이 온다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우리나라 국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국민들을 기쁘게 해 줘야 한다. 나부터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뛰겠다.

 

백승렬 01776646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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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8 [10:41]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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