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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배우 겸 진짜 사회복지사 - 오산하
“내면이 아름다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3/04 [11:28]

 


 

 

[한국인권신문=배재탁기자] 

오산하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학 학사

수정노인종합복지관 근무

현) 화상 with Us, 노비따스 홍보대사

    

Q: 어릴 때 꿈이 배우였나?

A: 어릴 땐 의사나 선생님, 가끔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친구가 계원예고에 시험 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갔다가 나도 그냥 시험에 응시했는데, 나는 합격했고 친구는 떨어졌다. 예고에선 특기를 보기 때문에 사전에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난 연기를 공부한 적도 없고, 더구나 특기는 없었다. 시험관이 특기가 뭐냐고 질문하는 데 없다고 했더니 왜 왔냐고 하더라. 그런데 합격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Q: 집에서는 적극 지원해 주셨나?

A: 전혀 그렇지 않다. 그때엔 만약 계원예고를 가지 않게 되면 1년을 쉬어야, 즉 재수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보내주셨다. 처음엔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거나 연출을 하려고 했는데 연기가 가장 잘 맞았다. 처음 입학했을 땐 연기 공부가 전혀 안되어 있어서 고생을 좀 했는데, 졸업 작품 할 땐 주인공을 맡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Q: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사람이 있나?

A: 탤런트 소유진 선배랑 정말 친했다. 나는 소유진 언니를 정말 좋아했고, 많이 의지했다. 나는 예고에 입학했지만 연예인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집에서 TV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늘 할 말이 없었는데, 유진 언니가 많이 도와줬다. 나는 마음이 여려서 다른 배우들에게 늘 기가 눌렸는데, 유진 언니는 멘탈도 강해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소유진 언니는 학교 다닐 때도 유명했다. 예쁘고 성격도 좋고 리더십이 강했다. 그리고 정말 통이 컸다. 나는 한 번도 유진 언니가 남에게 얻어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남에게 사주고 베풀었다. 어떤 사람은 백종원 씨랑 결혼해서 시집을 잘 갔다고 하지만, 그런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유진 언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유진 언니는 나에게 최초를 많이 해준 언니다. 나는 화장을 잘 안하는데 최초로 나에게 화장품 선물을 해줬고, 고3때 최초로 강남역에 불려 나가, 최초로 프렌치 레스토랑에 데려가 격려해 줬다. 남자 친구는 없었지만 든든하고 친절한 남자친구처럼 멋있었고, 또 언니는 없지만 친언니나 그보다 더 친한 가족 같은 언니로 많이 의지했다.

언니에게 직접 대놓고 고마움을 표시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고마웠다는 얘길 하고 싶다.

    

“소유진 언니의 도움이 컸다.

소유진 언니는 참 통이 컸다“

    

 

Q: 데뷔는 어떻게 했나?

A: 2006년 KBS <연어의 꿈>이란 미니시리즈 특집극으로 데뷔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중반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 당시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늦은 편이었다. 오디션에 응시해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Q: 시작이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A: 나는 시작엔 참 운이 좋았다. 보통 아침드라마로 시작해 주말드라마를 거쳐 미니시리즈를 하게 되는데 나는 바로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도 그렇다. 배우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인기 감독인 김지운 감독님한테 캐스팅되어, 이병헌 최민식 주연이었는데 이병헌의 약혼녀 역할이었다. 편집이 많이 되어서 그렇지 원래는 주연급에 가까웠었다. 보통 이런 역할을 맡기 전에 단역이나 독립영화부터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영화에서도 바로 인기 감독과 스타 배우들 속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Q: 뮤지컬도 했던데?

A: 뮤지컬도 몇 편 했는데 그 역시 모두 주인공이었다. 가수 송창식 선생님의 <담배가게 아가씨>란 노래를 소재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는데, 내가 최초의 주인공이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공연하는 그 뮤지컬을 보면, 내가 처음에 했던 행동이나 아이디어를 지금 배우들도 똑같이 한다. 내가 처음 했던 게 이렇게 전수된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또 <진짜 진짜 좋아해>란 뮤지컬에선 박해미 선배 등 유명 기성 뮤지컬 배우들과 같이 했는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엔 참 운이 좋았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을 했다.“

    

Q: 음반도 낸 걸 보니 노래도 잘하나 보다.

A: 음반 얘긴 창피해서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대학 다닐 때 압구정동에서 우연히 <세시>란 잡지에서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었는데, 기획사에서 보고 연락이 왔다. 당시엔 내가 뮤지컬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기획사에서 음반을 내자고 해서 얼떨결에 12곡 실은 음반을 냈다. 그 당시엔 가수가 뜨려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뭔가를 보여줘야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말 한마디 못하겠어서, 나는 가수로는 안 되겠고 배우가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획사 사장님께 미안하다. 이젠 가수나 뮤지컬을 꾸준히(?) 안 해서 녹이 슬어 노래를 못 부른다.

    

Q: 처음엔 정말 잘나갔나 보다.

A: 송혜교를 모델로 하던 모 건설사 CF도 찍고 하면서 처음 시작 땐 모든 게 나름 원하는대로 잘 풀렸다. 

    

Q: 그런데 처음엔 잘나가다가 왜 활동이 뜸하게 됐나?

A: 제일 큰 이유는 소속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 다 놓치다보니 자꾸 움츠려 들었다. 특히 연예계에선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멘탈이 약하고 버티지 못한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연예인은 다른 사람들과 늘 비교를 당하고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인데, 난 늘 상대방의 기에 눌리고 상처받으면서 일이 두렵고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일이 줄고 나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직원으로 일했다.“

    

Q: 사회복지사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A: 일이 줄고 나 스스로 회의감이 들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가슴은 메마르고 텅 비어갔다. 그때 신부 수녀님의 도움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나는 사회복지사, 노인심리상담사, 심리상담사 이렇게 세 가지 자격증이 있다. 그렇게 자격증을 따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2년 정도 직원으로 일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 꿈이었으면 사회복지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배우가 되었고, 배우가 된 이상 봉사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내 롤 모델은 오드리 햅번이다.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뒤로한 채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어린이들을 돌봤다. 돈은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으나,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쉽지 않다. 지금까지 배우보다 사회복지사 일을 더 많이 했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배우가 되려 한다.

    

Q: 배우가 사회복지사 직원으로 일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A: 어떤 분들은 “배우인데 모든 걸 버리고 직장생활을 하나?”라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었다. 사실 배우보다 직장생활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거의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또 다른 인간관계가 있었고, 주로 노인 분들을 응대하면서 지혜도 배우고 사랑도 받았다. 나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던 시간이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한 것보다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배우 중에 사회복지사나 직장생활의 경험이 있는 배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한 기간이 단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A: 우선 내가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가 힐링이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잠깐 와서 폼만 잡고 가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텅 빈 마음이 충만해지고 스스로 들었던 회의감이 자존감으로 바뀌었다. <월간 인권>도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얘기하는 잡지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내가 노인분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젊었을 때 잘나갔거나 못나갔거나 나이 들면 다 똑같더라. 그래서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평생을 봉사하는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이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사회복지사 활동으로 내가 힐링되었다.“

    

 

Q: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은?

A: 2016년 한중합작 웹드라마 <매매폰>이었다. 중국에선 상당히 인기를 끈 작품인데, 한국 배우로는 내가 유일하게 출연했었다. 2015년에 독립영화 한 편 찍었었고, 2016년이 마지막 작품이니 내가 봐도 배우로서의 활동을 별로 안했다. 

    

Q: 요즘도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고 있나?

A: 얼마 전에 그만 두었고 지금은 ‘화상 with Us'란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화상을 입었지만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또 미혼모를 위한 ’스텔라의 집‘에서 신부님을 도와 일하고 있다. 최근엔 ’노비따스‘란 음악학교의 홍보대사 활동도 시작했다.

    

Q: 인생에 멘토나 스승이 있다면?

A: 이외수 선생님이다. <크크섬의 비밀>이란 시트콤에서 이외수 선생님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 역할을 맡으셨고 나는 딸이었다. 나는 누구한테 살갑게 하거나 아부(?) 같은 걸 못하는 성격인데, 이외수 선생님께서 착하게 보셔서 수양딸을 삼겠다 하셨고, 지금까지 수양딸로서 잘 지내고 있다.

이외수 선생님은 연세가 70이 넘으셨는데도 항상 열정이 넘치신다. 그 에너지가 정말 부럽다. 사람들은 대개 진실과 마주하기를 꺼려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진실의 힘을 믿는 그런 면에 나에게 항상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신다. 아버지와 딸 역할의 인연에 감사하고, 정말로 아버지 같으시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심에 내가 착해지는 것 같다.

특히 이외수 선생님이 이번에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학장님으로 취임하셨으니,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훌륭한 인재로 키우실 거라 믿는다.

    

“이외수 선생님은 용기와 힘을 주신다.

나는 선생님의 수양딸이 되었다.“

    

    

Q: 결혼 생각은 없나?

A: 지금 교제 중인 남자는 없지만,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올 자리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준비가 다 되고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것이다.

    

Q: 배우 활동을 다시 하게 됐는데 계획이나 마음가짐은?

A: 예전에는 모든 게 내 손에 있고 그걸 놓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으로 늘 안달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흘러가는 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랫동안 쉬어서 불안하거나 초조하겠다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서두르지 않은 여유가 생겼다.

남에게 기왕이면 따뜻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내 역할로 어떤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따뜻하고 감동을 주는 배우,

외모보다 내면이 빛나는 배우가 되겠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A: 날 보면 다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연예계에 있었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외수 선생님이나 소유진 언니 같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직까지 이 업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외모보다 내면이 빛나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내면이 아름다운 배우가 되고 그렇게 남고 싶다.

    

* 배우 오산하는 화장기도 없고 의상도 일반인처럼 소박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했고, 답변도 진지하고 성의껏 했다. 정말 연예인 같은 생각이 안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여린 마음으로 연예계에서 활동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런 배우가 잘되는 풍토가 조성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정리: 편집국장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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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4 [11:28]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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