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 진정한 기쁨의 수요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8/11/13 [09:13]

 

 

[한국인권신문=엄길청] 자고로 현대경제는 수요창출을 기반으로 한다. 이전의 경제가 공급의 확대란 점에서 보면 이는 상반된 구조로의 반전이다.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미국에서 금융영업 수요가 부족해서 발생한 가짜 자금수요 확장의 문제가 서브 프라임이라는 주택금융 부실로 나타난 사례이다. 우리나라 역시 1997년에 닥친 바 있던 외환위기가 바로 기업들의 투자수요가 자신들의 자금사정을 초과한 즉 차입자금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서 발생한 가수요 과잉의 사례이다.

 

우리나라 주택문제를 들여다보면 정말 집에 대한 진정한 수요가 어느 선에서 고려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전에 대가족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씨족사회였기 때문에 누구나 단독가옥을 지어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마을을 형성하여 살던 민족이 아니다. 앞으로도 다시 사회변화가 나타나면 이 같은 현상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전통의 주거문화가 잠재된 사회인지라 자칫 요즘 사회의 요구가 많다고 하여 독립가구용 공공주택이나 공유용 사회주택을 많이 지으면 향후 대대적인 가족주거 복원시대가 닥치면 오히려 빈집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친밀한 공간으로 다시 파고든다. 어릴 적의 동네친구들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모교를 중심으로 한 동창생들의 만남이 공공연한 일상사가 되고 있다. 아직 가족의 규합을 중심으로 한 전통의 주거문화가 본격적으로 재현되지 않는 것은 저마다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가족 간의 근거리 거주규합이나 삶의 공유소망은 자리하고 있다. 요즘 손자들의 보육을 위해 다시 이야기꾼 할머니로 돌아가는 나이든 엄마들의 집안으로의 귀환은 다시 드러나는 전통가족 규합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4촌이나 그 이상의 가족을 다시 친밀한 사이로 만드는 가족모임의 부활도 머지않아 보게 될 우리의 새로운 생활문화의 잠재수요들이다. 이미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된 집안들은 4촌 형제간의 정기적인 교제모임도 있다고 한다.

 

여전히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물건을 사고 식사를 하는 일은 이 같은 가족기반의 복원력이 약한 사람들의 고독한 현실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 결혼과 함께  독립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부모나 조부모의 기반이 작용하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농촌사회의 풍속도이다. 사업체의 현실도 가족들의 일자리 수요가 가족사업의 규모를 정하는 세상을 암시하고 있다. 요즘 부모와 자식이 함께 동네장사를 하는 모습은 이제 구경거리가 아니라 다반사이다. 오히려 아직도 혼자 몸으로 사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알바를 찾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주식을 투자하려고 보면 대주주관계가 나온다. 통상 한사람의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000외 0명 이렇게 기재하면 이건 대개 직계가족의 소유기업이다. 그리고 000홀딩스 이렇게 적혀 있어도 이건 가족들의 공동경영 기업이다.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온지 이제 60년을 바라본다. 한 사람의 생애가 지나온 시간인데, 어느 집안은 가족들이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어느 집안은 전국으로 각기 다른 일을 하며 뿔뿔이 흩어져 산다. 그런 집안들은 아예 4촌정도의 관계는 이제 자녀들이 잘 모르고 산다.

 

요즘 서울의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들은 후일 이 지역들이 가족들의 근거리 거주가 많이 증가했을 개연성이 있다. 부산이나 대구, 광주 등의 지방 대도시가 도시세력에 비해 집값이 약한 것은 공부하러, 또는  일하러 젊은 가족들이 서울로 떠난 이유도 크다. 이런 현상은 다시 그 지역의 학교교육 수준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요즘 이제 본격적인 불경기의 논의가 일고 있어 곧 정부가 경기를 살리고자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주된 가치관이 사회적 공유경제의 기조를 가지고 있어 정책을 쓴다 해도 강렬한 수요의 규합이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이 결혼식을 준비한 것이나, 마을이 공동결혼식을 준비한 것은 참가숫자는 많아도 그 잔치의 규모나 열기가 사뭇 다르다.

 

영국이나 미국의 동부지역은 요즘 다시 가족들의 단합과 합동의 삶의 규합이 늘어나고 있다. 당장 트럼프만 해도 그는 가족이나 친구를 중심으로 다니며 나라와 세계를 경영한다. 이를 대중의 보도 가치관으로 보는 현대 언론들은 못마땅하게 보지만 가족을 스스로 돌볼 힘을 가진 가족들은 점점 그렇게 일반 세상의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가 쓰는 감성적 단어에 잘 알지만 사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기쁘다”라는 말이다. 정말 자식이 군에서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기쁘다. 아버지가 수술로 건강이 회복되어 기쁘다. 우리 딸이 결혼하니 정말 기쁘다. 그 어려운 시험을 손자가 합격을 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다. 이럴 때 주로 쓴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생활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신난다, 즐겁다. 힘차다, 상쾌하다. 맛있다, 멋있다, 이런 소위 대중문화나 마케팅용 단어들 속에서 지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또한 불특정하게 대중의 수요 감정을 자극하는 인위적으로 의도된 말들이 많다.

 

지금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3%이하로 내려가면서 저성장이란 선진국의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대중수요를 내다보고 진열대에 물건을 쌓아 두거나, 역전에서 택시를 세워두고 영업을 하면 곤란하다. 자기 수요기반이 단단한 사람들은 점점 친밀한 사이로 은밀해지고, 이런 사정이 약한 사람들은 대거 비영리공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유치원이나 아린이집들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사업에서 진정한 수요를 찾으려면 이제는 가족서비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동네 식당을 해도 노부부의 점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면 손님이 올 수 있고, 동내 병원을 해도 가족들의 질병관리를 하면 수요가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런데 가족들이나 친밀한 공동체적인 소비소감은 신이 난다거나 즐겁다가 아니고 그 요체가 대체로 기쁘다 이다. 그 가족이나 친분관계에서의 기쁜 일을 축하하고 기쁜 마음을 알아주는 서비스가 중요하다. 이런 친밀한 사이의 경영전략을 환희(delight)경영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하게 하는 일은 대중소비의 시대에 쓰던 고전이다. 환희란 단어는 “자기 뜻에 알 맞는 경계를 만났을 때 나타난 기분을 말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고 기쁜 상태”를 말한다. 먼 길에서 자녀가 집에 돌아오면, 정말 오랜 가슴 속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그리운 가족들이 하나로 모이면 그런데서 진정한 환희는 피어난다.

 

지금 투자를 하고 사업을 하려면 우선 이 일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환희의 소망을 깨우는 일인 지부터 되새겨 볼 일이다. 이제는 필요해서 집을 사고, 꿈이 있어 주식을 산다면 그런 환희의 마음으로 찾아보자. 이것이 바로 인플레도 없고 디플레도 없는 진정한 기쁨의 수요이다.

 

엄 길청(글로벌애널리스트/공익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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