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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 경기도의원 조승현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8/02/12 [11:59]
▲     경기도의원 조승현


성장과정을 말씀해주시죠.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고향은 전라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라는 곳입니다. 완연한 농촌 시골이죠. 개울 하나를 건너면 충청도 논산 땅이고, 다시 고개 하나 넘으면 충청도 금산 땅입니다. 충청도 사이에 있는 전라도로 충청도와 전라도 사람과 말투가 섞여 한 동네처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었던 것은 유별난 아버지의 교육열이었습니다. 당시 소년 조선일보, 소년 동아일보 등을 구독해 봤는데 대단한 내용을 접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장해 보니 ‘텍스트 읽기’ 능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다른 집과 좀 달랐던 점의 하나는 아버지와의 ‘토론’시간이었습니다. 밥상머리에서도, 이부자리에서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쥐방울만한 초등학생의 의견이었지만 아버지는 진지하게 대화상대가 되어주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유년시절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고 토론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학업에 전념하기보다는 바깥세상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를 통해 얻게 된 시사 잡지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기사와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그를 통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정한 것을 바로 잡으며 사회변혁의 일원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저의 희망 학과는 줄곧 ‘정치외교학과’였습니다. 그 학과에 진학해야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겼고, 정치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했으나 불합격이라는 고배를 마시고 1년 재수 후 부모님과 상의를 통해 법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치를 하던 회사원을 하든, 법은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 덕분입니다.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참여한 건 언제부터인지?
1987년 대선 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에 가입해 선거 지원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DJ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 1997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직장생활에 한창 바빴던 탓에 특별한 정당 활동은 하지 못했습니다.

 

김포시에 자리 잡게 된 것은 2001년이었는데 저도 여느 서민 중산층처럼 직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집값도 적당하고 아이들을 위해 교육환경도 갖춰진 지역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곳이 처가댁이 있는 김포시였는데,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은 정주 도시로서 ‘내 지역’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김포는 가족과 필자에게 고향과 같은 정주 도시로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김포시는 기존 농촌과 신도시가 불균형적으로 발전해 이미 난개발의 대명사가 돼 있었고, 정착해 살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과감히 정치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무를 계속한다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지언정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진 않았습니다.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열린우리당 김포 청년위원장직을 수행하며 김포시의 곳곳을 돌며 지역 정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역 정치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저의 지역 정치 활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 정도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2003년부터 시작한 정당 활동이며 다른 하나는 2005년부터 시작한 학부모 활동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 도당, 중앙당, 청년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실행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감각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정치가 왜 필요하고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당내 상향식 의사결정 체계 등 구조적인 부분도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학부모 회의로 이를 통해서 교육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2007년~2008년 동안 김포시 학교운영위원회 부회장으로서 각 급 학교를 평가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 분야의 문제점과 당면과제 등에 대해 고민하고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경기도의회 교육위원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교육에 변화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풀뿌리 민주주의란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Grassroots democracy는 1935년 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Grass-roots democracy를 그대로 직역하다 보니 풀뿌리 민주주의란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의회제에 의한 간접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주민운동 등을 통하여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의회제에 의한 간접민주주의와는 반대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뜻하며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지방자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52년부터 실시되었습니다. 특히 제2공화국 시기에는 전면적으로 실시되었으나,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성장한 민의를 바탕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자 1991년 30년 만에 기초단위인 군의회와 시·도의회 의원에 대한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6월 27일에는 기초단위 단체장, 시장·도지사 등 광역단위 단체장, 기초의회의원, 광역의회의원 등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전면적인 지방자치제가 부활하였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정치 엘리트 계급이 이끄는 민주주의를 지양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성숙한 시민 민주주의 의식을 바탕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지역 공동체의 살림살이에 자발적인 참여해 주체적으로 주권자 본인의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특히 지방자치와 분권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현실적 삶을 개선하는 민주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지방분권에 대한 실태는?
문민정부의 탄생으로 1995년 6월 27일, 제4대 지방선거를 통해 부활한 지방분권 시대가 어느덧 20년을 넘겼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많은 한계를 느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정치 선진국을 보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마냥 정치인 개인의 자세와 능력에 탓으로 돌리기에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재정 비율은 그중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방분권’이란 말 그대로 권리를 지방과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이웃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보면 일본은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57:43입니다. 미국은 56:44, 독일은 50:50입니다. 프랑스는 무려 25:7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9:21로 단순 비교로도 최소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만큼 우리의 지방정부 집행력은 중앙정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방 세율이 높은 국가 대부분 복지와 인권이 강한 나라들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돈줄’을 쥐고 있는 표현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재정권이 강하다는 것을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지방정부가 스스로 키워가야 할 자율권과 상상력, 혁신의 힘을 제약하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에 지방분권을 명시한 것도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정부에 나눠주라는 요구입니다. 개발 독재의 시대를 거칠 때는 이러한 가치를 간과했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도약한 선진국, 개개인이 행복한 시민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지방분권, 자치분권은 필수적입니다.

 

진정한 지방정치가 실현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방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지방 행정에 대한 전문가로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또한 대민접촉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정치, 경제, 복지, 문화, 예술, 교육 등에 대해서도 기본지식을 익히고 있어야 합니다.

 

상임위원회가 있어 어느 정도 전문분야가 나뉘지만 다양한 시민들의 민원을 받고 이를 해결하려면 만능맨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걸 마인드 등도 지방정치 활동을 원활히 만듭니다. 이런 것이 부족하면 지방정부 관료들과의 의사소통은 물론 소임인 지방정부 감사와 견제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의정활동 전에 얼마나 학습되어 있는지,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특히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의정활동의 결과물은 상당한 개인차를 보입니다. 김포 시의회는 시의원은 총 10명, 접촉하는 공무원의 숫자도 많지 않아 효율적인 의정활동 궤도에 오르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 편입니다. 도의원의 경우는 쉽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경기도의원의 수는 김포시보다 10배가 넘는 128명이며 외교, 국방을 제외하고는 도민의 민생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수행합니다.

 

도의회에서 결정된 것은 1,300만 명 이상의 경기도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칩니다. 관료는 행정에 있어서 가장 많이 훈련된 조직입니다. 그만큼 역량이 있는 그룹입니다. 그러나 비효율적이고 관행을 답습하면서 업무행태가 소극적이며 복지부동형으로 만성화된 것이 문제입니다.

 

그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며 오히려 능력이 저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결국 그 관료들을 통해 대시민 행정서비스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시민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끝으로 김포시를 위한 비전을 말씀해주신다면?
경기도는 인구 1300만 명과 대한민국 산업의 중추를 담당하는 전국 최대 광역단체입니다. 그 중 인구 40만의 김포는 아직 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지만, 김포는 서울 인접성, 물류 인프라, 환경 등 훌륭한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김포의 관문인 고촌읍·풍무동·사우동은 아직도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있어 시민의 행복을 디자인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그려진 개발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경기도 여성장애인 임신, 출산, 양육 지원 조례안’을 발의해 통과시켰고 ‘경기도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해 이들에게 자립생활 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순수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김포시는 양질의 일자리와 휴식이 있는 공존하는 공간, 자생력이 높은 도시로 변모할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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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2 [11:59]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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