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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서 - 이분희
노래하는 인권전도사
 
백승렬 기사입력  2017/09/01 [17:43]

 


[한국인권신문=백승렬] 진정으로 원하는것을 찾아서

저를 많은 이들의 아픔을 웃음으로 치료하는 사회를 꿈꾸는 쿨 한 여자라고 칭찬합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쿨 함에 목숨을 걸고 사는냐고들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제가 “쿨”하지  못하다는 건데요, 이 또한 제가 참을수 없는 것 이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이 들은 “쿨“ 하게 사랑하고 쿨 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쿨“ 함에 열광하는 그들에게 최고의 찬사는 “당신은 참 쿨 한 여자” 입니다.

 

그들은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하며 여유로움 으로 무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대인 관계로 인한 상처를 “쿨” 로 방어 하고 지켜냅니다. 그렇게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로 나는 “쿨”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 을 참아내고 있는 것 일 겁니다. 내 삶이 “쿨” 함을 허락하지 않기에 “쿨” 함이란 갑옷으로 완전무장 한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육십 년 대 말 경북 영덕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5살 무렵 6·25 때 입은 총상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여의고 춥고 배고픈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아마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에 저의 제 2의 고향인 부산으로 이사 한 후 부산에서 대학 생활 및 직장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과거는 온통 고통스러운 상처 뿐 이였습니다. 내 안에 악마(죽음)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선생님이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당시에 도둑질만 빼곤 닥치는 데로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시간을 쪼개서 나름데로 열심히 공부한 덕택으로 대학도 과 수석으로 입학 하였으나. 의지할 곳 없이 살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여러 번 자살 시도 를 했었던 처절하고 암울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한 가난한 집 막내딸 로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던 저는 반평생 을 우울증·불면증등 심리적 질병들과 비염·축농증·위염 등 만성 질환에 시달린 삶을 살었습니다.가정형편 상 대학 3년 2학기때 휴학계를 내고 직장생활 을 하던 중 회사 대표님 소개로 만난 남편(공무원)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군복무중) 한 명 두었습니다.

 

결혼 후 전업주부 로 살면서도 틈틈이 공부하여 심리상담사·성상담사, 진로상담사, 코칭·학습클리닉 등 자녀 교육전문가 과정 과 한식·중식 조리사 자격증 을 취득 하였으며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초등 Wee 클래스 및 교육청 Wee 센터 에서 상담을 전담하며 뛰었습니다. 이후 상담을 넘어 치유의 소중함 을 깨달고 소외되고 아픈이 들을 돕기 위해 웃음·미술·예술·노래치료 등과 아로마요법 기능을 접목하고 시니어·장애인·다문화가정 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로 타깃을 설정하고 울산 울주군 에 집중적으로 재능기부 와 강의를 병행 진행하며 바쁜줄 모르고 행복한 마음으로 앞으로 정진 하며 살아 왔습니다.

 

작년부터 는 잠시 모든 업무를 뒤로하며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건강한 나를 만들기에 그간 50여개 전문가 자격증 취득과정 에서 습득한 심리 상담 성격· 자연치유·대체의학·사상체질·실용사주학 에 집중하여 임상시험 등을 반복.검증해가며 나에 대해 깊이 분석하고 되돌아보며 저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더욱더 타인 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된 저를 발견하며 더큰 세상을 마중하려고 열심히 온기가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저의 50년 삶 은 배움과 감사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어 교사가 되었고 멋진 부모역할 수행 을 위해 청소년 상담·학습·성·진로 코칭 전문가로 변신하였으며 테라피 스킬로 파워강사 가 되기 위해 고독한 도전 을 통해 작은 결실을 찾았으며 평생교육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톡톡 튀는 독특한 이력과 캐릭터를 무기삼아 보잘것 없는 저의 재능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나 몸과 맘이 아프거나 지친 사람들을 찾아서 웃음과 희망에 리어카 타고 오늘도 마이크를 휘어 잡습니다.

  

경험

요즘 많은 사람들이 뭔가에 짓눌린 결과로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더더욱 우울해지는 삶 즉 남 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고 삽니다. 다들 그 토록 싫어하는 위선적인 모습 들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말 싫으면서도 말입니다. 실수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었는데도 그것을 비난 으로 받아들여 심하게 좌절 하고 상처 를 입곤 하지요 그런 증상 이 좀 더 심해지면 직장 을 떠나고 자괴감 과 무력감 에 시달리며 우울의 함정 에 빠져 들게 됩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우울 에 빠져 있다는 사실 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와 같이 30~40대 때의 보편적인 삶 들은 나의 경험 에서 볼 때 자신 에게 너무 완벽함 을 요구 하고 있어서 라고 사료 됩니다. 저는 완벽 에 대한 강박 을 버리고 기쁨 을 누릴 줄 알게 되면서 진정 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행복해 질 것입니다. 또 성공도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성공 한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제 주변 에는 저에게 일 에 중독 되었다고 말 하고들 합니다. 맞는 말 인 것 같습니다. 일 중독자 들은 보통 자신이 일에 중독 되었다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문제가 있음 을 발견 하는 것은 아프다거나 사람 과의 관계 가 극으로 치 달았을 때 등 입니다. 일 로 인하여 삶 이 파괴될 쯤 에서야 문제 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 입니다.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저는 초월 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즉 즐기는 것 이지요, 휴식 말 입니다. 그래서 충고 합니다. 지치지 말라고요. 대충 포기도 하고 빈둥 거리면서 즐기라고 말 입니다. 아니면 가족과 친구와 여인 과 휴가 를 떠나라구요. 며칠 전 저를 위해 희생과 배려와 외조 등 물심양면 으로 지지하고 응원 해주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이대성씨 와 군 생활 중 인 자랑스러운 외아들 이강산 군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다시 한 번 휴식 에 고마움을 깨닫고 그들에게 무한 감사 와 사랑을 드립니다. 특히 늘 부족한 며느리 인 저를 입이 닳도록 칭찬 해주시는 시부모님, 엄마와 형제 시 조카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멋진 발라드 를 부르며 행사장으로 달려갑니다. 오늘 행사에서는 트로트를 부를 겁니다. 그리고 오늘도 확신합니다. 행복하라고 사랑은 확인 하는 게 아니라 확신 하는 것 이라고.

  

인권에 대한 임무

지난해 부터 온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의 헌법 준수여부 와 탄핵, 제왕적 대통령제 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에 대한 논의 등 으로 다양해 졌습니다. 우리는 왜 헌법 을 알아야 하는 가 등 입니다. 인간은 존엄합니다. 그리고 평등하며 나라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을 알아야 인권도 지키고 감시도 할 수 있다고 요약해 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저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접 합니다. 여기 에는 탈북자, 동성애자, 성 소수자, 장애인 분 들에게(힐링, 스트레스해소, 건강강좌, 성희롱예방, 학교폭력 예방, 자살예방)등 다양한 컨텐츠 로 사회 구석구석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 웃음으로 치료하고 레크리에이션, 여가놀이 등 남녀노소 누구와도 소통 하며 특히 어렵고 소외된 이웃 에게 나눔과 웃음 그리고 그 분 들의 인권에 대한 권리를 전도함 으로 책임과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 하겠습니다.

  

뜨겁고 간절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배움이 부족하지만 세상 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가르쳐 주는 박종삼 여사 저의어머니 정신적인 멘토이신 정환경, 심상철 성공해 교수님, 배대열 회장님, 작곡가 정상님, 윤보영 시인, 정진일 대표님 간절 하게 사랑합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살아온 세월 만큼 경험이 쌓인다는 뜻 이기도 합니다.

 

직접 이든 간접이든 그런 경험 들을 통 하여 인생의 여러 측면들을 이해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모순 과 싸우고 자신 과 타인 에 대해 관대해져 간다. 특히 사람을 보는 눈 즉 지혜가 생깁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과 포용력 으로 더욱 더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예전엔 무심 했던 화분속의 식물 들에게 눈길이 갑니다. 꽃 은 이미 져 버렸고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와서 화사한 꽃이 필지 말입니다.  꽃이니 나무니 하는 것 에 맘이 가는 건 저두 나이 가 들었나 봅니다. 벚꽃놀이 가던 것을 이해할수 없었는데 말 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감정은 평생 늙지 않는다고 믿고 살겠습니다.

  

배려

앞으로 활동계획 과 목표를 묻는데요 저는요 부산.대구.경북,경남 등 대 도시를 제외 하고는 타 지역에 비해 교육정보가 열악한 영남지역에 인재들을 발굴, 양성하여 영남 전역에 양질의 교육을 보급하고자 함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자신의 일 과 삶 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배려가 시작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성장 발전해 왔으며,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남 을 위한 배려 일 겁니다.

 

제가 조그마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유통업을 통하여 얻은 수익은 다문화가정.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빈곤·노인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신장을 지원하는 사회사업가가 저의 최종 목표 입니다. 저는 과거에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과 결정의 반복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텐데 하며 후회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그때 그 나름대로는 오랜 숙고 끝에 내렸던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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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1 [17:43]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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