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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달리는 노동전문가
-이석행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
 
백승렬 기사입력  2017/08/10 [14:04]

 

 

[한국인권신문=여창용] 이석행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1958년 충청남도 청양 출신인 이석행 위원장은 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을 비롯해 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과 위원장을 지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내는 노동조합을 이끈 인물이다.

 

강한 목소리를 내는 자리인만큼 정권과 마찰도 많았다. 특히 의료, 전기, 수도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던 이명박 정권에 의해 징역 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2008~2009년 이명박 정권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을 이유로 징역을 살았다. 그만큼 권력자들에게 이석행이라는 이름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이석행 위원장은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가 합당했다면 나 역시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의견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은 대화를 거부했고, 결국 내 활동을 막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9년 수감생활을 마친 이석행 위원장은 2010년 인천지역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과의 야권연대를 위해 힘썼고, 송영길 인천시장이 탄생했다. 이 위원장은 무급직인 인천시 노동특보를 맡았다. 노동특보를 하면서 인천지하철 해고자 복직과 청소노동자 정규직 전환이란 성과를 이끌어 냈다. 이 모델은 서울가 부산, 광주로 확산됐다.

 

이 위원장이 중앙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자신의 출신 현장인 조선산업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조선산업이 재편을 요구받을 때 노동자가 구조조정으로 일방적 희생을 당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중앙정치에서 할일이 있겠다고 생각해 입당을 결심한 것. 그의 제1야당 입당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 단체를 이끄는 인물인만큼 강한 투사의 이미지를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난 이석행 위원장은 푸근한 옆집 아저씨와 같았다. 푸근한 인상 속에 단호하고 확고한 노동관과 경제관이 있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면서도 노동현장에 달려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특히 사양길을 걷고 있는 광산업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광부들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광산업에 종사하신 분들의 형편이 어려워졌다. 특히 탄과 돌가루 때문에 많은 분들이 진폐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을 위한 정책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 분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분들 못지않게 많은 고생하신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하면서 과거 노동운동 할 때 못지않게 움직였다. 그는 당 노동위원장을 하며 당원을 모집하러 노동현장을 많이 다녔다. 현실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한다면서도 진보정당이 아니어서 가입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들을 어떻게 묶어 낼지를 고민했다.

결국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 배강욱 전국노동위 부위원장과 “당이 제대로 노동정책을 펼 수 있도록 냉철히 견지하는 조직을 만들자”는 것에 공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준비해 10월에 전국노동연대를 발족했다. 대부분 현직 노조위원장이 함께하고 있다. 조직회원은 320개다.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과 함께하게 된 인연은 무엇일까? 이석행 위원장은 1983년과 1990년 대동중공업에서 두 차례 해고돼 재판을 받을 때 문재인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 개인적으로 큰 인연이 있지는 않았다.

2012년 입당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대선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그는 비례대표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대신 당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다.

지난 2012년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은 이석행 위원장은 문 후보가 선거에서 낙선한 후 노동현장의 바닥 민심이 함께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5년 뒤 대선에서 뛸 현장을 조직하자고 마음 먹은 후 ‘현장으로, 현장으로’라는 구호를 걸고 당 노동위원회 조직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는 바로 ‘적폐 청산’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노동부문 최대 적폐를 “노동과 자본이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공정하게 소통하면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노동현장을 위해 정치권에 입성했다. 그럼에도 현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노동현장을 위해 승리의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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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10 [14:04]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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