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청호 칼럼]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광화문 광장, 그리고 휘날리는 태극기(2)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6/11/16 [02:23]

 

[한국인권신문=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장 황청호]

 

대한민국의 운명과 너무나도 닮은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운명이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북쪽 관문이 한반도라면, 남쪽 관문은 베트남이다. 바로 외부 세력의 침투로이자, 중국의 침략로(侵掠路)이기도 했다. 이 두 침투로를 통해 과거 북방초원길의 문명과 남방비단길의 문명이 한반도로 들어왔었을 것이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중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던 역사의 흔적이, 또한 서로 비슷하다.

    

BC 108년 고조선이 한무제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면서 한사군(낙랑, 진번, 임둔, 현도)이 설치된 것처럼, BC 111년 베트남 역시 중국의 침략을 받아 한삼군이 설치됐었다. 또한 수·당이 고구려를 침략한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역시 수·당의 침략으로 1000년간의 식민지 역사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 뒤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고려가 몽고에 굴복하고, 조선조에 들어 저항의식이 한풀 꺾이면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역사시대로 접어든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사대주의로 이렇게 받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이와는 정반대로 저항의식이 거세지고, 자주독립의식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결국 통일조국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슬픈 분단국가로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 바딘 광장에 서서 베트남이 가장 사랑하는 국부 호치민의 묘를 바라다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온 국민들이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국부가 없다. 통일조국이 없는데 어찌 국부가 있을 수 있을까? 호치민과 이승만, 호치민과 백범 김구, 나는 이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사색에 빠져든다. 베트남은 독립국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독립국이 아닌 분단국이라는 현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나는 힘없이 서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역사적인 독립운동사를 무심히 생각해본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이곳 하노이 시의 원래 이름은 탕롱(昇龍), 바로 용(龍)이 승천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승천한 용이 하강하여 베트남의 외적을 물리친 곳이 바로 할롱(下龍)베이다. 이곳 하노이의 탕롱을 처음 수도로 정한 사람은 바로 베트남 리 왕조의 시조 리타이또(李太祖)이다. 지난 2010년은 그가 탕롱을 수도로 정한지 10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독립선언을 한 황제이다. 바로 리 왕조 시절인 1075년 송나라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병사들이 불렀다는 '남국강산 남제거(南國江山 南帝居: 남국 강산에도 중국과 대등한 황제가 살고 있다)'라는 노랫말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다음으로, 베트남이 중국의 속방(屬邦)이 아닌 오랜 전통문화를 가진 독립국임을 재천명한 사람이, 바로 레러이(Le Loi)이다. 몽골의 징기스칸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베트남을 침범한다. 이때 베트남의 쩐(Tran) 왕조(1225~1400)는 몽고 침입을 세 차례나 격퇴한다. 그리고 1427년 레러이라는 인물이 응우옌짜이의 도움을 얻어 명나라를 격퇴하고 후기 레(Le)왕조를 창건한다. 이때 응우옌짜이가 지은 평오대고(平吳大誥)란 시문이 바로 두 번째 독립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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