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신문=안명옥 교수] 중세 기독교와 금욕주의
이와 같이 기독교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자 모든 성적 행동은 기독교의 계율에 따라 억제되었고 성욕은 그 자체가 음란하고 불결하며 죄악시되었습니다. 그 예로, 서기 67년까지 생존했던 성 파울은 육체를 악마, 여성을 요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재림이 자신의 생존 중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금욕생활만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결혼은 약한 사람들이 육체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타협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11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성직자의 독신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신도들은 성교를 불결하고 사악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종교적으로 강요받기까지 하였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와의 지나친 성교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여자다움을 감추기 위해 베일을 감싸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성에 대한 인식은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는 쾌락을 위해 행해진 성행위는 자연에 대한 죄이며, 정상위를 제외한 모든 체위와 자위행위는 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현재까지도 성에 관한 대부분의 사람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성 인식의 변화 십자군 원정의 결과 참전했던 병사들에 의해 전달된 이슬람 문화와 성모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비잔틴 문화의 영향이 유럽에 새로운 자극으로 상류층 여성들의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으며 동시에 전체 유럽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낭만적인 사랑은 그 당시 여러 문인에 의해서 문학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등장인물은 대부분 귀부인의 외도를 말하는 내용이었으나 이들 사이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육체적인 욕망을 억누르며 정신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갈등과 사랑의 모험을 주제로 한 승화된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낭만적인 사랑은 이 시대에 나타난 ‘기사도 정신’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지위를 학대와 멸시를 받던 지위에서 귀부인으로 탈바꿈되어 사랑과 미덕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급기야 14세기 인간 중심으로의 르네상스 문화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인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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