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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국가운영권 쟁탈전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11/16 [09:45]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플라톤은 “국가란 인간의 자연적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이지만 권력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인류에게 부단히 불행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선의 이데아 즉 선의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적 이정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그의 책에 남겨 놓은 바 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몇몇 현인들과 부자들과 정치인들이 모여 4차 산업혁명의 출발을 언급한 뒤로 어느 정도 미래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라마다 국가운영 쟁탈전이 피 튀기게 전개될 줄은 정녕 몰랐다.

 

미래지구의 운영방식이 인간조직에서 자율지능 운영체제로 경제가치 생성의 패러다임이 진화하게 되면 그동안 산업조직이나 시장구조에서 힘을 기르고 발휘하고 패권을 노리던 인간의 집단적인 결집과 도전이 대다수 국가운영권으로 향할 것이란 예단은 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래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될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예기치 않은 코로나팬데믹의 엄습으로 삽시간에 사람들의 생각을 더욱 초조하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보여준 극단적인 당파이권 현상은 더 이상 미국은 그들의 자랑인 거룩한 독립이념으로 뭉친 하나의 가치국가가 아니라, 국가운영권을 놓고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신하고 말았다. 이런 것은 현재의 영국이나 일본 등의 정치현상이나 집권방식의 사례도 비슷하다. 몇몇 공산당의 집권국가들이나 특정 종교인들의 나라운영권 유지도 같은 용례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도 지금 국가운영을 놓고 두 진영의 분리대결이 확연하고, 정치는 지금 나라의 발전방향이 아니라 상대진영 비리현안의 다툼으로 의회와 여론은 하루해가 지는 줄도 모른다. 국민들도 열성파들은 종일 사회관계망에서 자파의 정치이익 논쟁에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언론은 더 이상 민중의 지팡이나 사회의 목탁은 아니다. 그들도 하나의 이권생존 단위이자 사회운영권 지향적 카멜레온이다.

 

특히 이번 미국 대선을 전후하여 애초부터 여론조사 실적이 부진하던 미국 공화당의 대선결과에 대해 사전적으로 부정선거로 규정한 전략적 처신이나, 선거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에서 개표 후반에 트럼프 비난으로 돌연 변신한 미국 폭스뉴스 보도처신이 정당과 언론의 용열한 민낯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제 정치와 여론과 사회가치에 고유한 진리나 올곧은 정의는 없다. 우리 편이 가지고 오면 정의이고, 다른 편에 빼앗기면 불의이다. 다시 사람들에게 노동이나 사업이나 작업 등 작은 행동 권력이나 역할 자존이나 생활의 힘을 나누어 주지 않는 한, 각각 무리지어 그 투쟁의 칼은 모두 국가운영권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장차 과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지난 역사는 팬데믹의 사후세상이 더욱 비극적으로 분리와 결별의 세상임을 예고한다. 전염병이 돌고 난 후의 유럽대륙과 지중해연안은 번번이 더 작은 나라로 갈라지고 쪼개지는 변화가 나왔다. 오늘날 나라 크기는 작으나 사람들은 아주 잘사는 유럽 몇몇 나라들의 국가적 뿌리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과연 거대한 미국과 커다란 중국이 이런 격동기 시류가 안고 있는 분열징후의 짐을 어찌 짊어지고 저 가파른 파란의 역사언덕을 넘어갈지 자못 궁금하다.

 

민족문화의 뿌리가 유구히 같은 우리나라지만, 고대 한반도 역사에서부터 우리나라도 여러 지역 소국과 부족들의 결속과 연합에 그 연원이 있음을 우리는 다 안다. 그러나 현대국가로 오면서 1300년 이상을 하나의 나라가 되어 (외부요인에 의한 현 국토분단 상황을 배제하면) 아주 긴 시간을 모범적이고 성숙한 민족문화 국가로의 운영의 묘를 잘 살려온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인이란 가장 우수한 국민문화성을 갖는 국민으로 전 세계로부터 좋은 평판을 누리고 산다, 그러나 지금 평범한 지구인에게 찾아오는 미래의 두려움은 어느 나라나 다 같다. 점점 평범한 사람들이 생산적이고 이익적인 작업에서 무더기로 소외되고, 경제적 부는 자꾸 극소수 성취한 사람들에게 초집중하고,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후손을 잘 돌볼 자신감은 누구나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아마 속마음 들은 만인의 투쟁을 얘기한 홉스의 국가계약론의 심정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언필칭 정치권력도 초인들의 몫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모두를 미리부터 정치적 이해행동으로 몰고 가는 지도 모른다.

 

이 예민한 시기에 그동안 구분과 분리로 치닫기만 하던 우리나라 지방의 광역단체들이 수도권의 집중이 확연해지자 다시금 인근지역 간에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치여론은 다시 지역별 토착민심 회귀와 지역 이해관계의 세분화 현상도 되살아나 보인다. 게다가 지역현안이나 대외정책 구조도 서로 다른 지리환경을 가진 지방들이 엄연히 있어서 미래의 국토관리나 국가운영권의 분리논의와 진행속도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북극과 일본을 근접한 한국의 동남지역과, 중국을 인접한 한국의 서해연안과, 북한을 접하고 있는 군사접경 지역들은 서로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대외 외교나 국방철학이나 국토관리의 정책을 원 팀(one team)으로 받아들이기는 그 계산과 속내가 무척 복잡다기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나라도 실리적으로 국가운신의 폭을 넓히는 유연한 국가운영의 차원에서 전략적인 준 정부 기능을 가진 지방정부 단위의 자치적 통치권력 분권화가 필요한 타이밍 같아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네 정치문화에서 보이고 있는 파당적이고 분열적인 현상을 본다면 장차 우리의 중앙정부의 효과적인 국가권력 분화과정은 그 전개되는 양상이 몹시 걱정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 같은 중앙정부 권력의 지방자치정부 분화현상은 또 다른 국가운영 기득권 공직자들의 반발과 집단저항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방향에서 보면 이건 도도한 시간의 정연한 흐름처럼 여겨진다. 특히 국토관리나 산업정책이나 고용정책이나 대외교류와 지역개방은 이제 각 광역지역의 경제적 생존현실을 토대로 자유롭고도 조화로운 정부운영 전략의 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방자치 정부로 국가운영권의 파이를 나누면 권력다툼은 작아지겠지만, 전체헌법국가로서의 국방이나 외교, 환경, 법치 등의 운영에서 단합과 결속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도 짐작해야한다. 5천년을 누구보다 잘 단결해온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미래국가로서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할 시간은 차츰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나라마다 치졸하고 도무지 겸양이 없는 국가운영권 쟁탈전은 국민들의 환멸과 자성 속에서 점점 물리적 통치단위나 형식적 운영체계가 아니라, 이제 생존과정의 철학과 발달과정의 역사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정신가치의 플랫폼 시대를 향하고 있다.

 

이미 지구는 돌연한 코로나팬데믹으로 비대면세상과 가상환경에서 하나의 생활네트워크로 또 다른 초국가적 연결이 확장되고 있다. 이렇듯 연결과 내분은 같으나 다른 말로 국가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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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6 [09:4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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