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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보부상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10/12 [11:15]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요즘 거리에는 너나없이 배낭을 등에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교복자유화로 청소년들의 유행이 변하여 학생들이야 무거운 책가방을 대신하여 책을 등에 메고 다닌다지만, 나이든 어른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등에 지고 다니는 모습에서 우리는 역사 속의 아린 모습을 본다. 서로 얼굴도 안보이지만 말도 이젠 아예 없다.

 

그런가하면 요즘 방역의 시대로 인해 잘 만나지도 못하고 있겠지만 방문판매를 하는 분들이 여기저기 상품설명회에 참가하러 다니는 모습도 소문 없이 많아 보인다. 이 모두 역사가 남기는 환란의 시대에서 유래가 있는 낭인들의 서러운 모습들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부상은 땅 한 평 없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무언가를 팔러 다니는 당시로선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가뭄이나 홍수나 지진이나 화산폭발로 대기근이 나거나, 기나긴 역병이 돌거나, 오랜 전쟁이 나면 부쩍 더 떠돌이 하는 보부상이 늘어났다고 한다. 거기에도 등급이 있어서 작고 비싼 봇짐을 지면 보상이고, 크고 무거운 등짐을 지면 부상이어서 보부상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유럽일대의 떠돌이 상인들의 해상과 육로의 교역을 묶어놓아서 생계가 막연해지자 이들이 결국 국제적인 한자동맹이라는 상인길드를 내밀히 만들어 각 나라와 싸우기도 하면서 발트해 연안의 거점 도시를 정해 한자동맹의 아지트를 만들어 오늘에도 그 흔적을 전하고 있다. 독일의 뤠베크에 본부가 있었고, 런던, 암스테르담,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 에스토니아 탈린, 라트비아 리가 등에 수백 년을 한자상인 거점을 가지고 처절히 장사하며 살았다. 지금도 이들 도시에 가면 그대로 있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동맹이란 이름의 그 한자이다. 기원전에는 이탈리아 해안이나 그리스 앞바다의 섬들 마다 상인들이나 금융인들의 피신거점이 만들어져 지중해의 끊이지 않는 역병과 전쟁과 지진과 화산을 피해 교역하면서 다녔다. 세계사의 델로스 동맹이 그 흔적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떠돌이 보부상을 나라에서 인정하고 일정한 전매권도 주는 양성화의 길을 열어준 바 가 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보부상들의 공로를 인정한 보상이라고 당시의 기록은 전하고 있다. 특히 16세기 이후 임진왜란으로 왜구에게 유린당한 농민들이나 이앙법으로 지주가 직접 많은 땅을 광작을 하게 되어 소작을 놓친 사람들이 전국을 돌며 행상을 했다. 훗날 시골장터의 숨은 애환이기도 하다. 권율장군의 행주산성 전투의 식량도, 병인양요의 군량미도 이들 보부상이 날랐다.

 

요즘 인터넷으로 물건판매나 정보소통이나 공동체교류를 주선하여 팔고 있는 비대면 보부상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활동이 어려워지자 너나없이 비 대면으로 새로운 살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또한 “보이지 않는 거리”의 비대면 보부상들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당초의 제작자 의도처럼 유튜브나 블로그가 사적으로 개인 기록이나 작품을 올리는 개인 문화공간이 아니라, 각종 영상이나 자료를 기획하여 올리며 구독자를 늘리고 무언가를 팔고 광고를 유치하려는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심지어 정치 가십이나 대중스타 신변에 끼어들어 온갖 객담을 담아내고 구독을 원하는 만담가나 호사가들도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듯이, 이 또한 과학기술의 변화속도로 보면 그리 오래갈 일은 아닌 것 같다. 미디어 기술이 변하면 보부상은 다시 또 사이트를 뜯고 옮겨야 한다. 그동안 천리안에서 출발하여 PC통신으로 유료전화로 홈쇼핑으로 블로그로 유튜브로 정처 없이 가상세계의 보부상들이 떠돈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실은 세상은 늘 변한다는 것이다. 이미 플랫폼인 아마존이 배달용 자동차도 직접 전기차로 고안하여 유수의 자동차회사에 주문한다고 하니 일은 벌써 터진 셈이다. 곧 무인차로 배달하고 드론으로 배달하면 거리의 오토바이도 이젠 곧 그만일 게다.

 

그러고 보니 아무개 회사도 우리 국민들의 배달주문 데이터만 수집하여 외국회사에 넘겨주고 창업자들은 사라졌다. 애초 그들이 영혼이 있는 사업가이기나 했을까. 어쩌다 전자통신이나 전산이나 컴공을 공부하고 어쩌다 그런 일을 하는 부서에서 동료들과 그렇게 구상하여 지금의 모모한 포탈이나 게임사들도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들 중에서 조 단위의 부자들이 속출한다. 정말 어부(어쩌다 부자)들이다.

 

코로나 방역으로 역세권이란 말도 꼬리를 감추고 유동인구란 소리도 이젠 점점 들리질 않는다. 당장 거리의 노점상들이 자취를 감추고 포장마차가 모습을 숨긴지가 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찬바람이 나면 군밤도 팔고 군고구마도 팔아야 식구들과 살던 거리의 사람들은 또 어찌하나.

 

전쟁과 재해와 질병의 돌림은 그동안의 삶을 산산조각을 낸다. 정든 동네를 떠나 타지로 가고, 식구들이 헤어지고, 전답을 팔아야 하고, 한숨이든 물건이든 심부름이든 각자 등에 무언가를 지고 산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보부상을 pack man또는 street vender라고 한다,

 

당장의 역병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이렇게 살아남아도 이러는 동안에 그동안 유지하던 힘든 삶의 그 나마의 기반조차 놓치고 나면 평생 대대로 가난과 온갖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낭인의 숙명이 더 무섭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수많은 종교도 온갖 샤머니즘도 다 이런 싹쓸이 재난에서 서럽고 애타는 연원이 비롯된다.

 

이젠 어느 단계에서 방역과 생존과 사이에서 국민적인 대합의가 정치인 주선으로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특히 어린이들과 여성들과 노약자는 미래가 없다. 이건 재난의 역사가 엄중히 전한다. 시간이 가면 정부의 돈도 힘도 전과 같지 않아진다. 정말 만에 하나 요즘 뉴욕 런던 서울 등의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라도 동시에 폭락하면 그건 정말 대재앙의 시작이다. 세상에 오르기만 하는 가격이 어디 있나.

 

대면 없이 인간은 도무지 살 수가 없다. 작고 미진하지만 다시 대면의 원칙과 교류의 질서를 새로이 정하고 생명의 회랑을 만들어 그 틀 안에서 서민들과 청년들이 그 좁고 가는 길 위에서라도 다시 나가 살아가게 하자. 대통령이 방역도 잘하고 경제도 잘하겠다는 의지는 고맙고 또 믿어야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역병의 역사는 모두의 소리 없는 고통과 기약 없는 긴 세월이 답이었다.

 

정말 여기서 더 추워지고 혹시라도 더 감염의 숫자가 올라가면 이젠 정부도 국민도 정말 지치고 더 실망할게다, 수천 년을 딱 붙어살면서 수많은 역병과 싸운 유럽 선진국들의 사뭇 비정해 보이는 방역관리 태도에서도 (수천 년을 국경접경이 많지 않은 한반도에서의 삶을 살아온 우리는) 그 숨겨진 지혜와 속사정을 찬찬히 찾아보자.

 

섬나라 대만사람들이 도착지도 없는 비행기로 제주 하늘을 나는 일도 훗날 역사의 비극을 전하는 애잔한 에피소드일 게다. 이제 찬 서리가 내리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자, 의료인들의 고언을 잘 알지만, 이렇게 숨어 지내서만 무슨 답이 나오는지. 약자의 생명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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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12 [11:1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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