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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국민자본은 새로운 기본권이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5/12 [20:22]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우리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에는 국민자본권이란 말은 없다. 자본이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선택적 결과로서 모두가 추구하거나 또 국가로부터 보장받은 권리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당면한 세상은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2020년 지구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그가 누구이든 삽시간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고, 그래서 자기의사에 반하여 어딘가에서 격리되어 차단될 수 있음을 절절히 실감하게 해준 사건이다.

 

누구는 자유로운 생활이 좋아서 지구촌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아보기도 한다. 그게 좋다고 자기의 필생의 버킷 리스트에 적어두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방송은 남의 나라에 연예인들을 데리고 가서 식당도 해보고 이발소도 해보는 프로도 방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 한 때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유행병이 돌면 자기 집 밖으로도 못나오는데 무슨 해외에서 살아보기인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소득에서 재산으로 점점 생활상들이 변모해 왔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활동은 대체로 도시에서 서비스산업이 발전하고 가정은 조금씩 재정상태가 유복해지는 변화를 보여 왔다. 그 결과로 외출복도 많이 사고, 외식도 늘어나고, 캠핑도 늘어나고, 해외여행도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갖고자 노력하였으며, 경영자들은 싸고 편리한 물건들을 많이 생산하여 아예 쇼핑을 야외에 만든 대형 아웃렛에서 가서 박스채로 물건을 사들이는 세상을 만들었다. 소비자가 돈이 모자라면 소소하게 빌려주는 곳도 많아졌고, 소비가 늘어나면 포인트도 적립하여 또 소비가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어느 소비자학자는 소확행이란 세상이 왔다고 그러기도 했다. 그 또한 지금은 많이 낯선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몇 달을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살아본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대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확신도 가질 수 없다, 생각해보니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 국가적인 방역대책 차원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고 나서 주식시장의 주가는 대폭락을 했다. 코스피 주가지수 기준으로 2,600포인트가 최고치인 우리 주가는 단 며칠 동안에 1,400포인트대로 무너졌다, 거의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런 일은 직업투자가인 펀드 매니저도 두렵다. 심지어 미국의 대 투자가인 워렌 버핏도 내려가는 주가에서 주식을 팔아서 현금을 가지고 팬데믹 끝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가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에서는 폭락하는 주식시장에서 수조원대의 주식을 사들이며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고 일갈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개인투자가들이 어디서 돈을 구해 와서 주가폭락의 소나기 앞에서 꿋꿋이 주식을 사들였다. 누구는 이를 동학개미라고 했다. 아마도 동학운동과 개미투자자를 합성한 모양이다. 특히 외국인들이 연일 팔고 있는데도 개인들은 매수에 들어갔다. 이런 일은 1956년 한국증시 개장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누구는 이런 일을 두고 주식은 공포에서 사라는 말로 대중들의 집단적인 투자지혜의 발로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더 복잡한 내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주가가 많이 내려서 싸진 것도 있지만 더 핵심은 많은 사람들이 수입이 없어진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일이 없어지지만 다시 회복의 기약도 없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도 집안에서, 그것도 아주 작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많이 하락한 주식을 사보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돈이 수중에 있는 경우의 일이다.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일이 없어지면 바로 집안에 돈이 똑 떨어지게 되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누구의 눈에도 주식은 싸다고 보이지만 돈이 없다.

 

좋은 공기는 누구나 마실 수 있고, 맑은 시냇물도 누구나 손을 담글 수 있다. 이젠 국민들이 자본 앞에서 최소한의 권리는 누려야 한다고 본다.

 

수익자 부담과 재산의 사유화로 보면 논란이 되지만, 이번 일을 겪어보니 이젠 누구도 미래의 실업과 재무적 곤경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다 4차 산업혁명이 겹치면 개인근로 기반의 노동시장 대기자 입장은 더 감감해진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본형성과 자산소유에 접근하는 경로가 어느 정도는 공평하고 개방적이길 원한다, 그 공공의 역할은 국가에서 국민자본 형성을 기본권으로 설정하여 법리적 단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벤담은 공리주의에서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주는 국가를 갈파한 바 있다. 지금 우린 벤담의 주장을 현실적으로 보완하여 오늘에 소환할 필요가 있다,

 

유태인들은 8촌 이내의 가족들이 모여 성년의 나이를 맞은 집안 청년들에게 자본을 모아주는 좋은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그 청년이 28세까지 적어도 세 번은 가족들이 십시일반 하여 사업자본을 대준다고 들었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의미라고 했다.

 

우리는 근로소득으로 중산층을 만들다가 경공업의 조기종료로 인해 그 구상이 멈춘 나라이다. 그래서 저임금 근로자는 도시에다 집 한 채 갖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 입장에서 자녀를 가르치고 부모를 모시다가 이렇게 모두가 손을 놓고 집안에 갇히게 되었다. 이러다간 밀레니얼 세대의 자녀들은 베이비부머인 부모를 모셔야할 형편이다.

 

이제 국가는 청년들의 자본형성을 국민기본권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도와야 한다. 예를 들면 남자 청년의 경우 군대생활을 통해 사업이나 투자의 교육도 받고 제대와 함께 국가에 사업이나 투자계획을 제시하여 국가의 전문적이고 세심한 심사를 받아서 미래에 그가 가져 갈 수 있는 사회지원이나 기본소득을 당겨서 (28세까지라도) 국민기본자본이 되도록 검토해보자. 부유층의 상속이나 증여로 징수되는 재원 중에서 청년자본형성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겠다.

 

무슨 근거로 젊은 국민들에게 자본을 나누어주느냐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가치와 기여가 있는데, 갑자기 달라진 산업 환경으로 개인노동활동이 봉쇄되고 해외진출도 극히 어려워지는 지금, 산업구조 고도화의 시대적 희생이란 이름의 “구성원적 구상권”을 청구하여 공유자본의 배분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문제 제가가 되면 국민들 사이에서 치열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일이다.

 

아무튼 이제 국민이라면 누구나 화폐자산으로 된 국민자본을 청년의 시기에 배분받고 자신의 노력과 지혜와 협업으로 그의 사업이나 투자에서 그 성과를 혁신적으로 거두는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엄 길청(글로벌애널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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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12 [20:22]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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