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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compact & impact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5/01 [14:21]

 

 

[한국인권신문=엄길청]

 

2020년의 지구는 그동안 하나의 지구라는 하나의 인류라는 미몽(illusion)에서 헤매고 있던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며 제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새로운 새벽 같은 시간들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국제회의 탁상에서 보내고, 남의 나라 정치사상에 간섭하느라 각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바치고, 지구의 환경이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리우와 교토에서 일갈하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참 한가롭고 우스운 일들처럼 한순간에 주마등이 되어 지나간다,

 

그리곤 정말 삽시간에 수많은 인명을 새로 창궐한 바이러스로 우리 눈앞에서 생떼처럼 잃었다, 자그마한 국가가 하나 통째로 없어지는 인명의 희생이 지금 쓰나미가 되어 온갖 나라의 병상에서 철지난 꽃처럼 꺾여 간다, 특히 연로한 노인들은 장수의 축복에서 고위험군으로의 인생추락이 허망하게 찾아왔다.

 

가장 먼저 지정학적인 희생자가 되어 그동안 선망의 선진국 신입생에서 국가적 병실로 내몰리며 나락으로 내려가 조롱과 멸시로 견디기 어려운 수난의 시간을 보낸 우리나라가 그래도 가장 먼저 3개월여 만에 한 숨을 돌리고 나니 그 다음의 일들이 먹장구름처럼 저 만치에서 기다리고 있다.

 

당장 너나없이 돈이 똑 떨어진 국민들이 너무 많아서 나라에서 급한 돈을 좀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궁리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다른 나라들의 어려운 사정들이다.

 

우리는 지난 60년을 해외 거래관계로 이만큼 성장하고 국민들이 밥을 먹어온 나라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오늘의 옷은 그렇게 커지고 그렇게 나아지면서 입고 있는 옷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연 이대로 이 옷을 입고 있을 수 있을까.

 

악마처럼 찾아와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본 우리는 이젠 생명의 보존을 위해서는 내가 나를 지키는 일 외에는 누구를 믿거나 남을 탓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아야 함을 깨닫고 있다, 명예도 흐물흐물해지고, 사랑은 사치에 가깝고, 소망은 한낱 구름조각처럼 흩날리는 것을 단 100일도 안 되는 시간에 다시는 잊지 않을 교훈으로 찾아온다. 종교도 교육도 전투도 토론도 모두 중단이다.

 

아직은 지난 시간의 관성으로 여러 미디어 앞에서 혼자 웃고 쉬고 뭔가 찾아보고 하지만 곧 모두는 달라진 세상을 온 몸으로 쓸쓸히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지구의 삶의 질서는 어떻게 회복을 할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절대 이전의 거주와 이동의 자유와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교역과 교류의 상황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백인 선진국들은 그동안 넓어진 세계를 좁히려는 여러 명분을 찾아오고 있었다. 언제는 식민지가 필요해서 찾아가서 침략하여 지배하다가, 그로인해 식민지 출신들과 자신의 본토에서 섞여 살다가, 다시 자기들만의 삶의 원형을 찾으려던 참에 이 일들이 생겨났다.

 

미국 트럼프나 영국의 톰슨은 그런 대표적인 국가수반들이다. 영국인들이 결정한 브렉시트가 그런 생각의 나변(where)이다. 심지어 이 와중에 미국은 연방국가의 단결도 결속도 흔들린다, 트럼프란 사람은 이번 사태를 보고 중국이 자신의 재선을 막으려고 일으킨 사건이라고 무서운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

 

정말 국제관계는 이제 막 가자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정말 국제간에 큰돈들이 다시 차입이 되고, 장시간 투자가 이루어지고, 이민체제가 유지되고, 유학을 가고, 타국 간에 삶의 파트너십이 가능할지 섣불리 장담이 안 간다, 공항은 다시 자유로울까, 여행은 다시 설레 일까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

 

아마도 너나없이 국내에서, 또 가까이에서 다시 삶을 수습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하리라. 당장 눈앞에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손 안에 들고 있는 수단에서 다시 수습을 해야 하리라.

 

우리나라는 2020년 4.15선거로 인한 한국의 생경하고 갑작스러운 정치지형이 그 답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안하무인의 아베가 우리에게 결국 방역의 도움을 청하며 한일교역을 정상화하려는 모양새가 바로 그 꼴의 연장선상이다.

 

이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누구나 한 평생 살아가는데 있어 너무 멀리 갈 일도 없고 멀리 볼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익숙하고 서로 도움이 가능한 장소와 관계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침 2020년 4월에 서울 시장이 가장 먼저 새로운 삶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서울의 5곳을 정하여 청년들을 위하고 오늘의 충격을 이기기 위해 미래 서울을 콤팩트시티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대찬성이다. 또 시기도 적절하다,

 

흩어진 나라는 어딘가의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사람을 모아서 다시 힘을 만들어야 하고, 미래는 젊은 국민들에게 먼저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모여서 살고 일하고 돕고 다시 뭉치게 해야 한다.

 

이번에 서울시장이 장소도 잘 골랐다. 공릉역 일대, 방학역 일대, 홍대입구역세권, 신림동역세권, 보라매역일대로 우선 골랐다. 왕십리역과 영등포역, 청량리역 부근도 효과가 좋은 장소인데 좀 아쉽다. 바라건대는 더 많이 콤팩트시티를 서울 주요 역세권에 만들어서 10-20-30대 젊은이들이 운동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일하고 창조하고 모으고 희망을 만들게 하자,

 

반드시 그 효과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주변에 흩어져 사는 인생선배들인 40-50-60대들에게도 새로운 용기를 주고, 다시 시니어세대인 70-80-90대에게 여생의 안도감을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콤팩트 시티가 주는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이다.

 

시야를 돌려 장차 우리의 국제관계도 그렇게 다시 재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장소에 외국인이 무시로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동선이 제한되고 체류정보가 관리되는 장소로 안내하고 경험하게 하고 교류하고 교역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서울 부산 인천 정도의 대도시가 그런 용도에 적합하다. 나머지는 지역별로 중심을 만들어 우선 내부의 힘을 만들고 저마다의 지역자립과 독자적 역할을 재결집하고 재창조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결국 더 넓어지는 온라인의 비대면 기반위에서 실제의 삶들은 오프라인으로 더 좁아지고 더 세분화되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게 2020년 코로나19가 찾아와서 우리에게 묻고 있는 질문의 첫 번째 대답이다.

 

엄 길청(글로벌애널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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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1 [14:21]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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