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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유가 속에 보이는 초고층 건물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4/24 [17:00]

 

 

[한국인권신문=엄길청]

 

2020년 4월 20일에 국제원유시장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2020년 5월 인도분의 선물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달러가 된 것이다. 원유를 사고도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원유의 재고가 많고 수요는 줄어들어서 원유를 사더라도 보관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원유가 필요한 사람도 아니면서 원유가 꼭 필요한 인류를 상대로 폭리를 취하기 위해 사재기를 해오던 검은 욕심들의 글로벌투기자들이 폭망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이 얘기는 이렇게 한가하게 말할 사정은 절대 아니다. 원유가의 폭락이 가져오는 이면의 세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구획과 분리의 냉혹한 세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충격은 간단히 그칠 사안이 아님을 시간이 갈수록 감지하게 된다. 우선 의료선진국 미국의 허약한 대중적 질병관리 대응력을 보면서 실망 속애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대립과 갈등을 보면서 그들이 그저 여러 주의 연합체 정도란 생각도 들게 하고 있다. 근사한 역사와 문명의 나라들이 수두룩한 유럽의 빈약한 생명보호 능력도 우리는 그 실체를 보았다.

 

급기야 그들은 원망의 화살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독일의 유력한 언론들이 연일 중국의 책임과 배상을 주장하는 글을 쓰고 있다. 나아가 시진핑의 멸망도 독일 언론은 원하고 있다, 이건 새로운 분리주의의 시작이다, 그들은 앞으로 독일과 중국의 단절을 원하는 게 본질이다, 그 뒤의 여타 후진국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국제유가는 이 작아지는 지구경제와 인류 교류의 분리되고 구분되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걸 계기로 인종별로 지역별로 문화별로 사상별로 근거리 지역 국가로 축소되고 다시 구획될 것이 자명하다, 이렇듯 국가나 사회는 소득계층별로 생활문명의 수준별로 구분되고 나누어지게 될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아마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주와 유럽이 다시 결속하는 세상도 예상이 되고, 개도국은 개도국 수준에서 서로 교류하고, 지역권역 국가들은 지역권역 국가 내에서 서로 교류하는 새로운 중간규모의 글로벌구획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산유국의 분열과 이로 인한 이슬람과 아랍의 쇠퇴는 분명히 짐작이 간다, 다만 우리가 동아시아에서 터놓고 교류할 나라가 마땅히 없다는 점에서 원거리의 대서양연안 국가들과의 관계유지는 이전보다 많이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여기서 어느 권역에 들어갈 것인가는 서구 국가들의 우리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리의 자체의 선택이 만나서 결정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가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다시 개인 간의 문제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제 선거를 마치고 나니 국민 누구에게 재난소득을 나누어 줄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당초 정부는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월 7백만 원 이하의 가구에게는 재난기본소득을 주자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70%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제시하였다. 이 정부의 수치는 이후에 등장할 고소득과 저소득의 분계선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번 코로나사태도 물론이지만 이후의 4차 산업혁명은 아주 많은 사람들을 비정규적이고 일용적인 저소득자로 내몰고 간다, 이를 두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일찍이 부른 학자도 있다. 

 

수평적인 비대면 사회는 이번 일로 빠르게 확산되겠지만, 여전히 이전의 질서로 사는 대면사회는 다수의 곁을 떠나 소수만의 그들의 성곽도시(walled city) 속으로 들어 갈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이후에 비대면 사회와 대면 사회와의 관계는 과연 수평적일까 하는 문제는 아직 속단이 이르지만, 역사는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4세기부터 16세기의 르네상스시대는 흑사병과 천연두와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인간문명의 부흥과 사회개선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성곽안의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제 대중이 많은 여유를 가지고 살기는 점차 더 어렵다. 저렴한 민간소비가 이제 공정한 공공소비로 변해갈 시점도 점점 다가온다. 그래서 마케팅은 점차 대중을 향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요즘 갑자기 대중의 관심을 끄는 힘을 가진 사회관계망의 가치는 갈수록 희석이 될 것이다.

 

결국 성곽안의 소비자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을 역사는 생존의 회랑(corridor of survival)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마케팅은 관심 끌기가 아니라 그들의 시중들기로 변한다. 그래서 역사는 그런 상인들이나 전문직들을 시중계급(serve class)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늘의 피렌체가 그 대표적인 당대의 성곽도시이고, 메디치가문이 역시 대표적인 당대의 대구매자 가족들이다.

 

그동안 차별 없는 하나의 지구나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렇게 그 역사는 여기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길로 갈라서려고 한다. 서서히 이 코로나의 사후수습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선진국부터 인종, 경제력, 재능, 지식전문성 정도로 사람들은 다시 크게 구분되고 크게 나뉠 것이다.

 

그리고 성곽 안에서 다시 강력한 인간문명의 부흥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가 절대 권력의 교회를 비판하고 봉건사회를 종식하면서 문명화된 지적인 인간의 창조가치를 강조하듯이, 강력한 인간의 희망을 가진 주류인간들이 고전으로부터의 도덕과 영성과 영재를 소환하여 다시 고가의 지식과 미학과 교환의 고급인간의 고품격 소비사회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과연 타국인들이 타국 제품들이 이런 각국의 최고위 소비자의 이너서클을 직접 찾아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기업가들의 노력과 상품과 기술의 출중한 실력이 말해줄 것이다.  

 

만일 이런 세상이 온다면 정치나 행정으로 균질하게 다듬어 가는 국민소득 중심의 수평적인 외부세상과, 위대한 인간가치 재창조를 추구하는 내부세상 사이에는 다시 수직적인 생존의 회랑이 생길 수 있음을 역사는 우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금의 날개 없는 석유가격이 내포한 미래상은 이렇게 성곽 도시의 모습을 선진국 안의 글로벌 도시에 붐처럼 짓게 될 새로운 초고층 건물 속에 담게 할지도 모른다.

 

엄 길청(글로벌경영평론가/글로벌한국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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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24 [17:00]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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