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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생존의 회랑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4/21 [09:18]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공습은 그 이전까지의 인간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 당대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슬픔과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누구는 역사 속에서 삶의 길을 묻고자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설문을 사들여 소장하는가 하면, 후일 르네상스의 뿌리가 된 정신문화의 재발견을 찾아서 인간 내면의 성숙을 위한 문예탐구 활동들이 부유층이나 지식 상류층을 중심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가장 큰 변화는 상류사회일수록 주로 실내에 머물고 실내에서 활동하는 정신적인 시간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큰 저택 안에 중정을 넣고, 층고를 높이고, 복도와 거실을 넓히고, 돔(dom) 식의 천정을 만들고, 마당에 조각상을 세우는 건축양식이나, 음악의 실내악 장르나, 회화의 실내형 대형작품 등장이나, 공예가들의 실내장식 예술들도 그 시대를 통해 본격적으로 더 활발해졌다,

 

그런가하면 이탈리아는 밀라노나 피렌체 같은 도시의 큰 저택의 주변으로 오늘의 소위 명품 삽들이 포진하는 주상복합의 정주생존 구조가 근거리에서 발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시 서민들의 삶은 전염병의 장기간 피해로 인해 점점 끊겨지는 상류사회와의 단절로 스스로를 지키려는 생존의 회랑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후일 시중계급(serve class)의 등장이라고 부른다.   

 

전염병의 피해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점점 사회적인 생존의 자원들이 줄어들고 서로간의 수평적 교환역량이 떨어지면서 저마다 상류사회로의 수직적 연결이 곧 생존의 회랑이 되어가게 되고, 마침내 서민들은 상류사회의 시중을 드는 직분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부지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시간이 갈수록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단순한 감염병의 이슈가 아니라, 그동안 현대에 오면서 점점 확장된 인류사회의 수평적 활동범위와 교류 효과의 근간을 흔드는 문명의 충격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류의 수평적 분화와 사회관계의 가치를 흔드는 충격이다. 이제껏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전문교육을 받고 경력과 직무훈련을 통해 강하고 유능한 사회인으로 단련하고 저마다 자신의 성장과 성공을 이루어 수직적 기존구조에의 도전을 보편화 해왔다. 또한 그동안 정보화 사회의 출현으로 더욱 수평화와 범위확장을 촉진하다가 이번의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와 비대면 일상이 덮치면서 일순간에 넓게 퍼지던 대중들의 사회관계를 단절시키고 외부화 행동이나 연결을 축소시키거나 아예 중단시키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저렴한 수평화가 가져온 지구의 재앙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코로나 사태는 누군가 여전히 결혼은 하고 있으나 결혼식은 줄어들게 하고 있거나, 학생은 있으나 학교는 오래 문을 닫고 있는 일들은 발생하게 하여 모두를 혼돈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장의 충격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이럴 때 돈을 벌자며 그동안 안하던 주식투자를 하려고 스스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실전에 뛰어든 국민들도 요즘 많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엄중한 것은 장차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사회관계가 사라지고 대중이 흩어지게 되면 저 기능 직업일수록 저 임금 직장일수록 그 역할이 줄어들고 없어져간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런 시간이 오래갈수록 그동안 대중의 심리에서 살아난 브랜드나 평판이나 소문도 시간이 갈수록 큰 효과가 없다는 것도 점점 다가오는 미래의 예비 충격들이다,

 

여기서 먼 미래를 한번 떠올려보자면 점차 과학자나 정치인이나 행정가를 제외하고는 국가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소득을 올리고 자기 역할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이란 생각이 엄습해 온다.

 

우리나라도 과거 신분제도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체가 높고 재산이 많은 상류신분 계층을 교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역관이거나 상인이나 의료인이나 예술가정도였다. 오늘날 현대교육에 와서도 학업의 실력과 학습역량이 큰 학생들이 주로 의학을 배우거나 법과 행정을 배우거나 상경분야를 공부하거나 하는 것도 다 이런 상류사회의 가장자리(edge)에서 생겨난 생존의 회랑들이다.

 

우리 역사는 이들을 중인계급(middle class)이라고 기록하기도 했고, 그들은 주로 한양도성 밖의 바로 문 앞에 모여 살았다고도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데올로기와 산업사회의 갈등의 주제에 몰입하고 있는 이 시대의 주류 정치인들은 노동의 환경개선이나 도시생활의 문제나 빈부의 격차 문제나 통일문제 등이 여전히 자신들을 뜨겁게 하지만, 이렇게 벼락처럼 찾아든 코로나 사태는 많은 국민들을 절박한 생존의 회랑이 필요한 사람으로 내몰고 있다.

 

이제 국민들도 스스로 이 문제를 알아차리고 우려와 근심에 빠지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을 본다. 어쩌면 이미 현실에서 그런 불안이 찾아든 국민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이번에 나라가 재난기본소득을 준다면서 정부가 처음 제시한 대상들의 가이드라인이 70%의 국민이란 점에서 이를 암시한다, 우리 국민들의 소득구조는 5분위로 보아 월 500여 만원에서 900여 만원을 2인 가구 이상에서 벌면 하위에서 위로 60-80% 구간인 4분위에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 이 구간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최 상위 80-100% 5분위 구간인 월 980만 원 이상을 2인 가구 이상에서 벌어야 그나마 이번 기본소득 지급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그러나 대중들이 이런 소득수준이 되려면 집세를 안내는 자기 가게를 운영하거나, 부부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다녀야 하거나, 전문직이거나 해야 겨우 들어가는 소득구간 범위이다.

 

그동안 흔히 해온 말로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땀 흘려 일해서 자기 생명과 가족의 생존을 지키는 사회는 이렇게 해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멀어져 갈 것이다.

 

국가의 문제가 여전히 크고 사회의 문제가 아직도 작지 않지만 지금 각자의 발등으로 떨어지는 생존의 회랑을 만드는 문제는 오롯이 국민 개개인의 몫이다.

 

점점 성곽(walled city) 안으로 사라지는 여유 있는 이웃들이 더 모습을 감추기 전에 가족과 나의 생존의 회랑을 찾아가기 위해, 험한 강을 건너는 다리와 높은 담을 오르는 사다리를 가족의 힘으로 함께 준비해보자.

어느 국가라도 기본적인 국민의 생존을 도울 뿐이지, 개인의 꿈이나 내 가족의 미래를 만들어 줄 정도로 관대하거나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 길청(글로벌경영평론가/국민경영캠퍼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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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21 [09:18]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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