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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격차와 거리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3/03 [09:49]

 

 

[한국인권신문=엄길청]

 

박 원순 서울시장은 젊어서부터 사회운동에 투신해온 법조인이다. 그가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끈 일은 아름다운 가게를 운영하거나 참여연대란 시민단체를 이끌던 기억이다. 그런 사회활동의 기반을 바탕으로 그는 서울시장에 세 번이나 당선이 되었고 장차 그 이상의 역할도 꿈꾸는 듯하다. 모르긴 해도 그의 삶의 외부적인 가치의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기반은 대체로 인간들의 수평적이고 차별 없는 사회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회운영 방식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가 2020년 1월에 한국을 덮친 우한 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맞이하면서, 그는 2월에 서울 광화문 정치집회장에 나타나 시민들의 광장활동을 행정력으로 해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고, 서울시민에게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지내자고 제안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번엔 다시 이 사태가 서울을 더 위협하게 되자 최소한 3월의 2주간은 시민들의 사회활동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소위 인간의 사회적 거리 좁히기의 리더라는 한 사회정치인의 이 모든 낯선 일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세계적인 공유와 교류의 위생환경에서 발생하고 번지고 있는 파괴적 질병감염사건 때문이다.

 

로버트 트랙터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무리를 이루려 한다”고 말했는데, 지금 이 상황을 통제하고 해결해야 하는 대도시 행정가들은 그가 어떤 정치철학을 가졌던지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를 두도록 황급히 행동을 제한하고 계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집회도 극력 막아야 하는 형국이다.

 

인간이 그 오랜 세월 만들어오고 발전시켰다는 인문가치와 사회문명과 정신가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이번 사태는 삽시간에 깨닫게 해준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인식은 수천 년을 만들어온 공동체 가치의 위대함이나 경건함을 한 순간에 허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선 살아있는 신 같은 추앙을 받는다는 어느 팔순노인의 노약한 모습과 곤궁한 처지를 그의 기자회견에서 보기도 했다,

 

생활의 안전이 개선되고 삶의 환경이 나아지면서 누군가에게 말로써 정신으로 깨닫게 하고 행동을 조정하는 일은 이전에는 가장 차원 높은 리더십이자 영향력이라고 여겼다. 주로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이나 종교인들이 이런 구조 위에서 일정한 지지자와 추종자를 이끌어 왔다.

 

그들은 주로 빈부격차를 내세우며 사회적 분배로 물질적 평등을 이루는데 주력했고, 개인들의 인격적인 처우가 주된 개혁의 주제였다. 특정한 종교도 아마 내부의 재정기반 공동화와 평등한 생활체험으로 현실적인 결속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 누구라도 인간이 공동공간에서 감염의 매개라는 희대의 대 사건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충격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그 공간이 크루즈라는 호화유람선이든 성스러운 성전이든 어린이들의 보육현장이든 감염의 확진만 나오면 바로 폐쇄한다. 그리고 우려되는 곳을 거친 이동하는 무리와, 국적이나 거주지 등 사회배경이 같은 집단은 바로 일정하게 격리하고 위생안전을 검역한다. 여기엔 인격도 사랑도 평등도 없다. 복지도 민주도 없다. 그저 개개인의  생명의 안전이고 사회위생의 보존이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아온 매스로우라는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욕구를 생리와 안전의 욕구라고 일찍이 주장한 바 있다. 그런 기초 위에 생활이 나아지고 지각이 발달하면 소속과 사랑, 존중, 자아실현 등의 순으로 발전한다고 덧붙인바 있다.

 

우린 지금 인간의 기초욕구가 다시 각자의 마음속에서 모락모락 자라게 되는 이 웃프고(funny but at the same time sad) 엄중한 현실을 본다. 아마 이번의 사태가 수습이 되어도 오래오래 두고두고 이번의 충격과 내밀히 엄습한 생각이 떠나지 않을 터이다. 이것은 분명 자유와 민주와 사랑과 평화와 번영의 가치가 이끈 현대 인류의 정신문명에 대한 일대 충격이다.

 

누군가가 궁금하고, 왠지 돕고 싶고, 더불어 살고 싶고, 서로 격의 없이 부대끼는 교류가 다시 살아나기까지 우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인류의 공동체적 질서와 공유체제는 바로 무역과 금융의 교류이다. 지금 세계는 지역과 국가의 역할로 분할되어 있다. 이를 공존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시장경제 용어로는 지역 간 국가 간 비교우위론이라고 한다.

 

수송과 통신의 발달로 지금 현대인류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서로에게 유리한 다른 곳에 있다, 식량을 멀리서 구해 와야 하는 나라, 물이 이웃나라에서 오는 나라, 에너지가 없는 나라, 원자재가 없는 나라, 소비자가 모자라는 나라 등의 교류나 교역의 필수성은 이제 생명의 안위와 같은 값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덮치고 나면 이 질서가 얼마나 공정하고 원활할지는 예단이 어렵다. 한번 내려진 차단의 장막을 다시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도 많은 충격이 따를 것이다. 당장 주요 정당의 당명에 담긴 정치풍경을 보면  열린00, 더불어00,  한00, 자유00 등의 명칭이 주류였는데, 과연 이런 공동정치 정서가 얼마나 다시 국민들의 마음을 서로 잡을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무역과 금융과 지식교류는 효율과 공동번영과 자유를 향해야 한다. 돈이 필요한 나라, 물자가 필요한 나라, 지식이 필요한 나라는 너무도 많다.

 

지금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 당장의 지불능력이나 내부 해결책 없이 벌려놓은 일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선진국들의 교역과 금융과 지식은 서로 공유한다는 국제적 약속과 공조가 그래서 꼭 필요하다.

 

그러려면 미국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 우선 미국 연준이 여차하면 금리를 내려주고 중국에 대한 관세도 조금 더 감해주는 일은 그래서 필요한 일이다. 마침 미국 연준 파월이사장이 그런 언급을 적절히 했다. 다행이다.

이것으로 사태가 그쳐지면 참 좋지만 실제로는 더 나아갈 소지도 크다. 우리도 그런 내부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행의 통화관리나 국제교역의 시장기능을 북돋는 국가적인 지원이 신속히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타이밍이다. 그리고 이 대란 속에서 숨소리도 못 내고 지내야 하는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의 어두운 삶을 아무리 경황이 없고 내 사정이 급해도 우린 꼭 기억하자. 격차보다 더 무서운 게 마음의 거리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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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03 [09:49]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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