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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사회계약으로만 약하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1/27 [11:56]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1792년 루소는 사회계약론이란 저서를 통해 자연을 벗어난 개인들은 국가라는 사회적 계약을 통해 인위적인 생존의 기반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자유라는 사회의지를 제한된 자유의 근간으로 삼고, 인민의 주권을 평등하게 규합하여 그 힘을 국가에 위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힘을 스스로 만들 수 없으면 힘은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치엘리트들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물론 사회의지는 개인의 자각들에 기초해야 한다는 연결고리도 강조했다. 국가를 만드는 정치형태로는 완전한 민주정은 이상적이나 불가능하다고 본 루소는 군주정은 전체주의로 흐르기 때문에 귀족정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남겼다.

 

지난 60년간의 시간을 오로지 부강한 산업사회 건설과 잘사는 나라의 운영에 집중한 한국은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 5대 수출국가의 새로운 언덕에서 다시 서로의 가슴 속에 서로 다른 미래를 그려놓고 치열한 사회계약의 갈등을 맞이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발전과 변화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등의 산업사회 약자들의 규합을 바탕으로 평등한 인권의 사회의지를 권력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현재 정부를 맡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국가의 운영과 산업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자리를 잡게 된 소위 다양한 기반의 기득권을 가진 국민들도 국가를 고도의 엘리트전문가 질서와 법률적 규약들이 바탕이 되어 생산적인 효용을 높이며 규범적 가치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건 한 나라 안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국민정서의 중대한 분리국면으로 비쳐진다. 또 쉽게 접점을 만들 가능성도 그려보기 어렵다.

 

2020년을 맞이한  한국사회는 시민의 힘을 정의의 도구도 삼아온 시민지도자 출신의 현재의 국가운영 정치인들과, 법과 질서란 강력한 국가권력을 정의로운 도구로 집행해온 종래의 검찰기관 권력이 같은 나라 안에서 똑 같이 국가와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가치아래 극강의 일합을 겨루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가는 하나의 가치인지, 누가 국가의 주인인지, 우리 모두는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개인들의 삶의 형식이나 생존의 형태는 부지불식간에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있다. 홀로 점점 길어져만 가는 의료인생과 살아가는 노인들과, 보는 앞에서 일터가 사라져서 갈팡질팡하는 중장년의 사회적 미아들과, 기성세대 그 누구도 길을 안내해 주지 않은 채 거리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도울 수 없고 어머니가 딸을 보듬을 수 없는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닥치는 생의 주제들 앞에서 점점 할 말을 잃어가고 있다.

 

부모형제, 가족, 마을, 친구들이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되기 어려운 헛헛한 형국에서 사람들은 매일 정보세계를 통하여 사회적 관계망에서 새로운 연결가치를 찾아보지만, 자칫 돈이나 잃고 마음도 다치고 꿈도 버리게 되는 일이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비일비재 하다,

 

갑자기 등장한 소식 앞에서 폭로하고 모욕하고 비난하고 질시하는 마음들이 적나라하게 인간의 심리적 오욕과 본능의 나락을 보여주는 이런 세상은 분명 누구도 바라는 세상은 아닐진대, 누가 나서서 멈추게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기도 하다. 인간이 겸손하고 숙고하고 관용하고 용서하고 자중하는 세계는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물질의 세상이다. 신의 가호도 믿음의 효과도 사랑의 기쁨도 물질은 간단없이 흔들고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게 자연이고 인간이다.

 

물질을 곡식으로 보거나 금은보화로 보거나 돈으로 보거나 모두 물질을 구할 수 있어서 소중히 모으고 누구는 빼앗고 누구는 훔치고 하였다. 요즘 일각에서 삼삼오오 거래한다는 디지털 화폐나 사이버 화폐들도 그 자체만 전자지갑에 보관하고 있으면 오래갈 수가 없다. 점점 살아남으려면 물질 거래나 물질 소장으로 연결할 것이다. 너무도 그건 자명하다, 천하에 없는 비트코인도 많이 쥐고 있으면 큰 도시의 빌딩이 그의 눈 안으로 들어온다. 

 

사회금융이 이렇게 중요해지는 것은 사실 이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단순히 사회복지의 후방지원 수단으로 역동적인 산업사회의 안전망으로서 연금이나 사회급여적 금융은 다루어져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곰곰 생각해보면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유일한 젓줄로 사회금융이 하릴 없이 찾아든다.

 

세상에 모든 일은 모두가 기대하고 믿으면 믿었던 가치는 사실은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은 날 대형호재로 초보자가 대거 주식을 사면 돈이 잘 벌리지 않는다. 정부가 한 날 한 시에 밝힌 부동산규제가 어느 시기에 통계적 효과는 잠시 있을 수 있으나, 돈이 부족한 사람이 집을 살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물질은 항상 전통가치이다. 따라서 다루는 지혜도 변하지 않는다. 욕심을 내어도 안 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곤란하다. 아무리 많아도 낭비하지 말아야 하고, 흔하고 넘쳐도 남겨두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하나 보다 여럿이 낳고, 오래 쓰면 그만큼 내실이 있다.

 

형제가 옷을 돌려가며 입은 것이나, 자매가 함께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 것은 가난의 추억만이 아니라 어느 시기에나 변함없는 인생의 지혜이다. 혼자 먹고 마시고 살고 놀고 하는 일은 어느 인간의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그저 한 시대 흘러가는 휴대용 도시락 반찬 같은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그래도 힘이 좀 있다면 그들은 어딘가에 모여 살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물질도 모이고 있을 터이다, 이름 있는 학교에서 모이고 좋은 동네에서 모이고 서로 잘 아는 가게에서 모인다. 익명이나 ID에는 명예도 없고 실익도 분명치 않다. 무언가 내 이름을 등기부에 올리고 내 이름으로 서류에 서명하는 사람이 나라도 돕지만 가족도 돕고 스스로도 어느 정도 지킨다.

 

“검투사”란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최소한의 물질을 위해 세 가지는 실천하자, 검소하게 오늘을 살자. 투자하고 내일을 기다리자,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자.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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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7 [11:56]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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