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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광장으로 가는 정치, 하우스로 가는 경제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1/15 [09:10]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자신의 삶의 입장이나 방향을 놓고 사람들은 점점 자기 노선을 정해야 하는 <선택의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바라고 또 그 혜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불가피(unescapable)하게 자유민주노선을 사상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과 앞으로도 긴밀하고 깊은 신뢰관계로 나라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70% 이상의 국가경제 활동이 대외거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세계의 정치질서와 경제환경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시장경제와 민주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들이 우리나라에게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거래나 교류의 비중이 큰 나라이지만 중국 같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는 걸핏하면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대외교역이나 친선교류에 심대한 중단압박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번 사드파문에서 우리는 절절하게 보고 느꼈다.

 

한편, 점점 4차 산업혁명이 그 폭이 넓어지고 내용이 깊어지면서 <기계인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놓아야 하는 사람들이나, 아직 일자리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일자리 대기자들은 또 국가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나 서민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는 국가운영 방식에 점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사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이런 불안정한 미래를 가진 국민들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이나 불공정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는 정치인들과 이들의 입장은 서로 불가분(inseparability)의 관계에 놓이게 되기 쉽다.

 

이미 우리가 매일 보는 국가운영의 이슈들이 이런 기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2020년 대통령의 신년대담 역시 그 범주에서 진행되었다. 대통령은 분명하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사회적 약자와 서민에게 있음을 선명히 드러냈다. 아마 이 같은 기류는 미래의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엄청난 분수령을 만드는 기운으로 강화될 소지가 만만치 않다.

 

참으로 조심스럽고 안타까운 언급이지만, 이미 우리는 하나의 시대과제와 미래비전을 가진 통합된 국가와 단합하는 국민의 공동체는 아닌 것으로 보여 진다. 대결과 충돌과 투쟁으로 서로가 원하는 국가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치열하고도 그 끝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정치투쟁의 나라로 누구도 원치 않는 가운데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복잡한 갈등과 마찰의 국면과정에서 그간 지키고자 했던 양당제의 근간을 버리고, 다양한 주장과 가치를 대변하는 정파들이 결집하여 탄생하는 다당제의 길목으로 어느 새 들어서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두 개의 큰 구별된 사람들의 행동과 삶의 궤적을 보게 된다. 하나는 일상적으로 광장(plaza))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하나는 그들만의 정원(garden)으로 점점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과연 무엇이 누구를 광장으로 모이게 하고, 또 누구는 그들만의 정원으로 들어가게 하는가.

 

지금 서울이 이 두 가지가 극명하게 대립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그래서 매주 서울의 거리는 정치의 거리로 변한다. 어디서는 자유민주의 소리가 이어지고, 어디서는 사회개혁의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또 그런가 하면 서울 곳곳의 동네에서는 서로서로 안전하고 품격 있는 정원과, 또래의 오붓한 마당과, 소소한 정감이 흐르는 골목으로 끼리끼리 주민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서울 집값은 간단없이(ceaselessly) 새로운 저울질을 한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서민들의 시각에서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적시했다.

 

그런데 정치사상의 대립 이면에 요즘은 민족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자유민주를 내세우는 주장에도 자유와 민족과 민주가 병렬로 이어져 있고, 생활안정과 사회개혁의 주장에도 사회, 민족, 민주가 역시 병렬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지금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흐름은 오랜 선진국들의 자국보호와 우선주의이다. 이런 흐름은 주변의 유럽국가에게도 이어져 소위 나라마다 극우에서부터 국수적인 정치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일부 국가는 정권도 장악하고 있다. 지금 미국 트럼프대통령, 영국 브라운 총리, 일본 아베, 프랑스 마카롱대통령이 그들이며, 그중에서도 이민자에게 장벽을 쌓고 중국에게 등을 돌리는 나라 미국이나,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떠나는 영국이 가장 선두에 있다. 우리에게 지난 과오에 대한 몽니를 부리고 있는 일본이 자기들이 원래 2천년의 민족역사를 가졌다고 뜬금없는 소리를 던지는 것도 이런 종류의 민족단합 복고현상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다시 국가단합을 말하고 국민단결을 바란다면 그건 민족정신과 민족의 역사에 대한 공통의 자각과 하나 된 통찰이라고 본다. 이미 다양한 나라에서 일이나 결혼이나 교류나 여행으로 온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시급히 다시 정비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의 국가와 국민간의 대립과 분열을 막아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이전처럼 몇몇 이슈나 큰 선거에서 보여 지는 정도의 계절적이고 일시적인 대립과 분열이 아니다. 이미 서로 갈 길을 정하고 서로 다른 먼 길로 들어서는 분리 양상과 반목의 우려가 선하게 눈에 보인다.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무릇 나라는 이러면 안 된다.

 

정부의 힘으로 국민의 행복추구 행동을 다 막진 못한다. 우리 같은 수준과 규모의 나라에선 그건 착각이고 만용이다. 그렇다고 개인이 돈을 많이 가졌다고 국가를 좌우하게 할 수도 없다. 수많은 역사에서 보아도 그건 오만이고 허상이다.

 

부를 가진 국민들이 시장에서 사라지면 서민에겐 내일이 없다. 그러나 서민의 삶이 불우하고 흔들리면 국가는 내일이 없다. 과연 이를 어찌 할 것인가. 국가운영의 힘은 정치인의 인상 깊은 스피치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일은 몇몇 사람이 돈만 내면 오를 수 있는 노래방 무대도 결코 아니다,

 

국민 모두는 우리 조상들께서 수만리 길을 찾아서 도착한 한반도에서 다함께 오래오래 살아 온 한겨레임을 가슴에 담고, 또 선조들의 고단했던 인생이 남긴 삶의 진면목을 곰곰이 뜯어보자.

 

이미 우리는 집집마다 뿌리를 내린 사적소유와 개인이익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기엔 너무 많이 지나왔다. 국민 개개인은 공기나 바람은 자연의 공평함이지만, 돈은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기회비용이자 대가란 점을 언제나 냉정히 가슴에 담아야 한다.

 

정치는 삶을 도와 줄 수는 있어도 공평한 삶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복권조차도 수많은 사람의 작은 기대와 헛된 욕심들이 먼지 같은 대가가 되어 몇 사람의 벼락행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당장을 살아가는 데도 꼭 필요하지만, 또한 집은 마을과 가족들 대를 잇은 터전으로 오래오래 잘 가꾸고 잘 지니고도 있어야 한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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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15 [09:10]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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