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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2020의 소망 : 더 나은 미래로(to a better future)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20/01/02 [10:06]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현실과 미래는 언제나 괴리가 있지만, 2020년을 맞이하는 이 시각의 지구세계는 한마디로 혼돈 속의 각자도생이다. 국가이고 집단이고 개인이고 이렇게 자기 몫에 혈안이 된 세상은 근 현대 인류역사에선 유례가 드물다.

 

이 역사적인 아수라장의 본질은 미국과 유럽이 1980년경부터 2000년 부근까지 금융공학경제로 허상의 파라다이스를 접근한 서구 신경제(new economy) 정책의 패착에서 온 그림자이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걸으려고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금융자본 대형화, 금융특화도시 지정 등의 정책을 초기단계에 밀고 가다가 그만 이들의 여파에 주저앉은 바 있는 그 일들이다. 다행히 우리는 제조업이 아직 온전히 살아있는 가운데 범용 산업기술에서 첨단과학 신기술로 막 넘어가려는 터이라 오히려 이 세기적인 혼돈의 어부지리의 행운을 얻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예컨대 이제는 중국도 우리가 필요하고, 미국도 우리가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까닭은 미국과 유럽이 이번 일로 대오각성하고 다시 제조의 나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라 그렇다. 그들이 여기서 다시 제조를 하려면 국제 분업의 제조협업 기반을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가 소재, 자본재, 중간재에서 선진국을 폭넓게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들이 먼저 첨단기술이나 미래기술을 학문적으로 앞서 있거나 요소 적으로 선점하고 있어서 그것을 따라가는 일이 당면한 과제이다. 최근의 한 일 간의 반도체 핵심 요소기술 문제가 바로 그 증좌이다.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열심히 대량생산을 하는 동안 우리는 이곳에도 소재와 자본재와 중간재를 보내고 있고, 또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도 많이 나가고 있다.

 

그 경제성장의 결실기반 위에서, 현 정부는 가계소득 주도의 성장이라는 공정분배 성향의 정책으로 지금 온 나라를 빠르게 보편적 복지사회로 이행시키고 있다. 사실 현재의 정부가 분배 정의와 사회 안정에 우선적인 중요성을 두는 성향의 정치인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풍요로운 국가 재정이 받쳐주지 못하면 복지지출 정책은 여야 간 아귀다툼 속의 빚잔치가 되어야 한다.

 

물론 국민들 사이에 이렇게 무상지출이 늘어나는 사회변화에 대한 아슬아슬한 사상적 갈등과 정치적 균열도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어디까지나 삶의 방식의 문제이지, 나라의 재정고갈을 놓고 다투는 극렬한 나라살림 투쟁 정도는 아니다.

 

그게 바로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우리의 대외 무역거래 수지흑자 때문이다. 자그마치 이 기조가 10년을 이어오고 있으며 외환보유고가 곧 5천 억 달러를 넘나 본다.

 

금리를 사상 최저에 갖다 놓아도 집값이 오른 것과 가계부채가 많은 것을 빼고는 물가도 안정이고 기업부채도 관리가 가능하다. 1998년 비루했던 IMF의 시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모두 우리 국민들이 불과 20년 만에 해낸 장한 일이고 역사적인 국가적 성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그림자는 큰 게 있다. 바로 청년이고 중년이고 장년이고 노년이고 막론하고 산업근로자 사회의 속절없는 붕괴이다. 이미 공업화과정에서 전통의 농어민사회가 붕괴된 우리는, 그래서 지금 도시근로자 사회나 대학이 서서히 정치활동으로 그 거대한 방향을 틀고 있다. 과거 유럽의 선진공업국들이 성장둔화 국면에서 나오던 사회전형 그대로의 반응이다.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직접적인 노동 관여나 가치의 기여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산이나 판매나 관리나 모두 서서히 현장에서 손을 놓고 나와야 한다. 이번 국회가 사실상 양당제에서 다당제로의 길목을 연 의회의 패스트 트랙은 그런 사회적 다층화와 좌우간 사고의 긴 간극(spectrum)을 예상한 본격적인 정치시대의 문전에서 세상에 그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마 이제부터 곳곳에서 생활정치인 집단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속출할 것이다.  정말 정치 말고는 딱히 많이 모여서 공개적으로 할 게 없다.

 

그러기 위해 구조적으로 대대로 평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향후 고공사회(고위공직자사회 )의 특권이나 그에 연루된 기득권의 제도적 온존가능성을 방지하려다 첨예한 대립을 낳은 공수처 아이디어도 그런 시대 함의가 간접적으로 담긴 입법 추진으로 보이기도 하다.

 

2020년은 이런 소동과 혼미함 속에서 그 새로운 시간의 장을 연다. 40년을 장기투자시장의 국제투자분석가로 일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장기투자의 위험을 경고할만한 일이 선진국에는 그다지 없다. 오히려 좀 더 나은 미래(to a better future)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선 미래세계는 필요한 곳에서 대체로 자기공급을 하는 그런 세상으로 간다. 중개자도 없고 전달자도 없고 운반자도 없이. 이미 정보와 에너지 일부는 그런 셈이다. 곧 물류도 그러리라. 요즘 화폐도 그런 조짐이 조심스럽지만 가능성이 엿 보인다.

 

물론 이러면 사람의 일은 현저히 준다, 그러나 이러면 사람은 달리 살아 갈 수도 있다. 우선 나의 최선의 삶(best self)을 찾아야 할 일이다.

 

차제에 우리 좀 위대해보자. 소소한 것도 어느 정도 꽤나 해 보았다면.

 

우선 세상을 광대하게 보자. 그리고 마음을 투명하게 열자. 또 사리를 잘 분별해 내자. 게다가 매사에 침착하자. 작지만 매일 성과를 만들고 그리고 나누자.

 

우리 국가는 올해 누가 뭐래도 2%대는 성장을 한다. 이미 탄력을 받은 신기술 상품들로 해서 무역수지가 올해도 적자는 안 난다. 꾸준할 서울 집값이나 공공지출 확대로 인해서 디플레도 큰 염려는 없다. 다만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더 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고가주택의 보유세를 더 받을 양이면 우선 그 돈으로 대도시에 사회주택을 많이 빨리 더 공급해야 한다. 고가주택과 사회주택 이 둘의 문제는 같은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공부에 취미가 있으면 과학과 종교학과 좀 친해지자. 그 지식 안에 가면 또 더 나은 미래의 길이 보인다. 이건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끝은 신학이다”. 과학공부로 미래 기술가치의 나만의 기대 트랜드를 찾아내고, 신학공부로 나 자신을 언제나 믿어주는 자기사랑의 마음을 공고히 하게 되면 “2020년은 좋아하는 주식을 사도 좋을 해”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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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2 [10:06]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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