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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저장의 축복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12/05 [13:13]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경주에 가면 석빙고가 있다. 조선 영조시대에 축조한 얼음 창고이다. 한 여름에 시원한 얼음을 맛보려면 겨울의 화강암으로 된 석굴 속에 저장해 둔 석빙고의 얼음을 찾아야 한다. 화강암은 집을 지을 때 가장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강하고 품격 있는 건축소재로 사용하는 돌이다.

 

프랑스의 와인은 카브(cave)라는 지하저장고에서 오래 저장해 둘수록 가치가 높다. 10년 이상 지나야 제 맛이 난다는 와인을 사둔 사람들은 인내심을 갖고 사서 저장해 둔 와인이 훗날 맛을 보려고 하면 더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한 박스를 사두고도 2-3병만 꺼내 마시고 계속 보관하다가 남은 와인을 몇 배의 가격으로 되팔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시중에선 수집가(collector)라고 한다.

 

사실 얼음이나 와인이나 직접 사용하는 상품의 효용기간은 아주 순간이지만 이처럼 저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깊고 의미심장하다.

 

뉴욕 맨해튼의 고급 주택들은 대개는 57번가 주변의 오래된 동네에 있다. 주변에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보석상점, 공원 뭐 하나 오래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이곳의 집값이 그 가치가 높은 이유는 소유자들이 한번 사면 잘 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팔게 하려면 구매자가 그의 마음이 움직일만한 더 높은 가격을 제안해야 한다.

 

주식시장에서도 대주주의 지분이 낮고 유통주식이 많은 주식은 장기투자에 적합하지 않다. 기업가치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평가 요소는 배당가치이론(dividend yield)인데, 이는 배당의 장기지속성(going concern) 때문이다. 사고파는 시세차익(capital gain)은 그 장기배당의 기대가 약화되거나 무너지면 그 때 투자가치에 영향을 준다.

 

우리 정부가 지금 사회복지 정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특히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분야로 여겨지는 분야로 이전소득(transfer income) 지출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직접 나오는 것은 정책을 만든 정치가의 생각뿐 만이 아니라, 정부가 거두어서 모아둔 재정의 여유(governance reserve)에서 나온다. 그래서 각국은 중앙은행을 두고 국가의 재정을 모아두고 관리한다.

 

가정이 경제적인 독립을 유지하고 가족의 안위를 지키려면 저축을 반드시 해야 한다. 선한 정책 입안자들이 서민들에게 이런 저축심을 장려하기 위해 정책금리로 이득을 높여주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정이라면 이자에 관계없이 늘 수입을 저장해두고 잘 모아두려는 마음이 소중하고 깊어야 한다.

 

어느 순간에 부유해지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만일 있다면 그건 벼락같은 행운이 있을 뿐이다. 카지노에 가거나 복권을 사거나, 먼 곳의 빈 토지를 사두거나, 소외된 주식을 사두는 사람 중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도박(gamble)이나 투기(speculation)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선형적 성장(linea growth)의 시대가 있었다. 산업화 시대는 순차적인 산업구조의 개선으로 국가를 잘 운영하면 점진적으로 성장률이 올라가고 또 한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경제사정이 좋아지는 방향성을 말한다. 흔히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을 그렇게 부른다.

 

올해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 선진국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거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저성장(leaner growth)의 신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낮은 의미를 갖는 leaner는 의지하는 사람이란 말도 있다. 선진국이 되면 오히려 자신의 삶을 국가나 이웃이나 타인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래서 국가는 선진국이 되면 자연스럽게 포용이나 배려나 관용이나 공유나 공존의 단어들이 정치 주제어로 등장을 한다. 그러나 좀 더 강한 정치사회적 주장에는 균형이나 평등이나 공동체의 단어들이 등장을 한다.

재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저장은 참으로 의미가 큰 단어이다. 평소의 소득을 쌓아두면 저장(stock)이나 유보(reserve)가 된다. 그리고 그 저장은 좋은 사업방안에 투자되어 다음에 더 큰 소득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연구개발(R&D)은 그동안에 모아둔 내부유보금(reserve)이 있을 때 가능하다.

 

국가의 복지재원도 그동안의 국가재정이 저장되고 여유가 있을 때 순조롭게 지원이 된다. 그래서 기업들이 내부 유보를 늘려서 투자를 하면 정부는 투자비를 세액공제해 주기도 하고 손비처리로 비용을 공제해 준다. 그러나 이익배당을 하면 이미 법인세를 물린데다 다시 배당소득세를 이중으로 물린다.

 

그런데 점점 우리나라가 저성장 기조로 가면 기업들은 그동안의 이익금으로 내부유보를 늘리고도 미래의 기대이익이 낮아서 투자를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 지출이 지속되려면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이 지속되거나 복지재원이 추가로 조성되어야 하는데 이 선순환이 순조롭지 못하면 정치는 기업의 내부유보 이익금에 과세하여 사회로 환원하게 하는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

 

사회복지 지출도 건강한 사회의 온전함을 위해서는 사회적 투자로 보는 견해도 분명히 있다. 기업을 통한 지속가능하고 확대 재생산적인 복지재원 증대정책도 있지만, 사회복지 지출을 직접 늘려 사회 안정성이나 보편적 삶의 생동감이 강화되어 다시 국가적인 생산이나 소비의 활력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바로 근간에 논란이 된 소득주도성장이론도 그런 맥락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또한 국가의 저장된 재정여유가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면 모두가 사상누각이다.

 

사실 저장의 효과 면에서 사회적 저장과 개별적 저장은 그동안 개별적 저장방식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서구(free economy countries)의 시장경제가 그 입장을 지켜왔다. 그래서 서구사회는 개인소득과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증가하면서 사회가치를 위한 국가적 저장이나 사회지출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 여기에는 무의식으로 합의된 사회적인 도덕적 해이(socialized moral hazed)문제가 따르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도 GDP 대비한 R&D 지출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사회복지 지출을 통한 사회적 투자도 역대급으로 강한 상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첨단기술 국가와 사회복지 국가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우리가 그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한 것이나 같다.

 

이런 양수겹장의 국가운영은 우리나라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균형 잡힌 선진국 진입이라고 평가할만한 놀라운 시도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리 없이 국민적인 자부심이 생길만한 상황이지만 문제는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가 재정적 저장(stock & reserve)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금리가 올라가고 가계부채가 서민가정을 압박하게 된다.

 

주택을 사회적 주거기반으로만 보기에는 이미 우리나라가 많은 가정에서 사유재산의 가치보장(reserve)수단이 되고 있고, 주식은 그 거래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가치저장(stock)수단으로 그 기능이 미약한 형편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서울의 주택공급을 적정하게 허용하고,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촉진한다면 오늘의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지방도시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이나 실업국민의 문제는 정치가들이 정말 잘 보살피고 살뜰히 지원해야 한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가치 이해와, 수도서울과 대기업의 경제적 역할증대는 양면의 종이와 같다. 이 같은 “통 큰 통합적 생각”이 지금 국가리더십과 정치지도자들의 상황인식에 꼭 필요한 융합사고의 혁신이다. 우린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웃나라 중국은 최근 들어 국가의 외환보유와 재정여유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어 걱정이다. 한편 우리 증시는 지금 배당투자 철이 찾아오고 있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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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5 [13:13]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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