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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가벼운 업적은 없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8/22 [16:57]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일본 아베총리가 취한 적반하장의 터무니없는 무역공세로 인해 우리나라 입장이 돌연히 모두 비장해지면서도 현실은 뭔가 미진한 시간이 흐른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처하려고 한다” 이건 지금 대통령의 정책보좌를 총괄하는 정책실장이 근간의 한 일 간 상황대처를 묻는 기자에게 최근에 한말이다.

    

온건한 사람과 강직한 사람은 삶의 결이 참 많이 다르다. 가치가 다르지 않아도 반응은 차이가 크고, 사상이 다르지 않아도 태도의 스탠스도 상당히 구별이 된다. 자존과 부정, 분노와 척결의 상태를 인지하는 바는 다르지 않아도 처결의 수순은 또 완급이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온건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는 자기 삶 위주로 살아가고, 강직한 사람들이 사회도 바라보며 역할을 마다않고 행동을 서슴치 않기도 한다. 두드러지는 의인도, 투사도, 혁명가도 대개는 강직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정부에는 과거 민주화의 진행이 더디고 사회정의 실천이 답답하던 시절에 시민사회를 이끌고 정치개혁에 공헌한 인물들이 대통령을 도와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과문한 눈으로는 평소에 정의감으로 일견 강직한 삶을 살아오면서 주변에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언사로 살아온 인사들이 꽤 포진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총괄책사인 정책실장이 민감한 대일 외교현안의 내밀한 대통령의 입장을 놓고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굳이 언론에 밝힐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이무래도 그는 평소의 그답게 그런 말을 던졌다.

게다가 상대는 “혼네와 닷데마에” 란 일본말(본 마음과 겉마음은 다른 것이다라는 일본인 특유의 대중성과 사회인격을 가리키는 말)이 있듯이 도무지 그 속을 잘 알 수 가 없는, 어쩌면 때론 죽은 고기도 빼앗아 먹을 수 있는 하이에나 같기도 한, 미상불 오리무중의 사회집단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한 원로 국제관계 정책전문가이자 북한에도 밝은 통일안보외교관이었던 분의 얘기가 들린다. “국익을 위한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우방도 없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필자가 수색소대장으로 비무장지대를 방위하고 있을 때, 늘 손에 책을 놓지 않던 지장의 소속부대 연대장이었다. 후일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외교안보수석을 지내고 대사와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분이다. 참 지도자의 진중함과 역사진행의 숙연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무거운 지적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격연마의 도움을 받는 벤자민 플랭클린이란 미국의 국가지도자가 남긴 13가지의 일상좌우명 중에는 “절제” “중용” “겸손“ ”침묵” “결단”의 단어가 있다. 그는 사업가이고 언론인이고 외교관이고 80대의 나이에도 펜실베니아 주지사를 지낸 미국 창업기의 정상급 국가지도자였다.

    

그러나 도무지 요즘 우리나라 정치 언론의 새로운 주류사회의 인사들의 언사들은 도대체가 머뭇거림이 없고, 바로 돌직구이고, 그 맛이 사이다 같아야 한다. 아니 대중이 접하는 주류 미디어의 언사들도 신중함과 정제됨이 적고, 점점 그렇게 즉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때론 점점 더 치기로까지 흐르는 인상조차도 받는다.

    

일생을 비수 같은 깨달음의 결기로, 하지만 깊이 은둔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바로 수도원에서 일생을 자기헌신 속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침묵 속에서 담 너머의 세상을 흔적 없이 소리 없이 이끄는 성직자들이다.

    

독일에는 뮌슈터슈바르작이라는 수도원이 있다. 100년이 넘도록 사회적 구제경영을 하는 공유경제의 사업수도원으로 작은 사업체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영성의 삶을 이끌어 준다.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준 지역주민들이 300여명의 종사자로 있으며, 수도원 내부에서 창업을 한 20여개의 수공업체가 있고, 이전부터 하던 큰 농경지와 목장도 여전히 경영하고 있다.

    

이 수도원의 당가(재정책임자)인 <안셀름 그륀신부>는 “언어는 우리가 사는 집이다” 이런 말을 그의 저서에서 했다, 그리고 평생을 배워도 근본을 다 알지 못하므로 “자신의 믿음은 내 안에서 성장시켜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침묵과 묵상과 근로와 절제로 자신을 진정한 영성을 일깨운다고 했다.

    

앙가주망이란 프랑스어가 있다. 60년대에 유행하던 프랑스 지식인들의 자기존재 의식이자 저항에 대한 자유추구와 사회정의 실현의 행동다짐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에는 담보, 투기, 내기, 도박(gage)이란 말이 들어있다.

    

현대 사상가 사르트르도 이를 실천한 사람으로서 노동자 해방운동, 알제리 반 전쟁운동, 베트남 평화재판 등에서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몸소 도전하는 지식인들의 자기의식의 사회참여를 주장했다. 전체의 문제에서 자신의 존재를 병합하여 찾는 이 단어는 지금도 지식인들에게 주는 함의나 울림은 크고 깊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에서처럼 한편으로는 고급지식인의 “자기 인생실험” 같은 자아의식 내기와 외부저항의 도박성이 함께 내재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어. 누군가 한 날 홀연히 등장하여 세상을 뒤흔들다가 또 미래의 불확실성 속으로 훌쩍 들어가 버리는 흔적도 적지 않은 일들이기도 하다. 

    

경제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 일그러지기 쉬운 거울 같아서 산업이나 자본의 추한 경쟁의 부산물이 많은 것이 오늘의 뒷모습이다. 요즘 일본이 자행한 우리에 대한 어불성설의 경제도발도 그 범주에 있다.

수도원이 100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해 오는 힘과 지혜를 그륀신부는 “단순화하기”라고 말한다. 인생에 주어진 생의 의무를 진지하게 실행하며, 늘 자신을 깊이 숙고하는 것이 공동체의 일상이라고 했다. 같은 일이라도 휴식시간이 없이 감독자가 일을 시키면 마음에 없던 공격심이 생기지만, 자기가 기쁜 심상에서 침묵으로 행동하고 몰입하는 일에는 딱히 과로가 없다고도 했다.

    

소위 돈을 버는 투자를 잘하는 사람도 아주 더러는 있지만, 대개는 투자에 대해 많이 안다고 여기저기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그걸로 돈을 받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증시나 경매시장 같은 데는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전하는 투자의 대가들은 자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말로 인해 오게 될 행동을 참기 위해 말을 참는 사람들이다.

    

그륀 신부는 “수도원의 경제사업은 마치 자연환경처럼 자기 주위에 꽃을 피우고 무성하게 하는 사회환경에 대한 책임감으로 한다”고 했다.

    

갈수록 금리가 거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지는 가까운 미래에는, 아무리 필부라도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창업이든 직접 투자에 나서는 결단의 경지가 이쯤은 되어야 한다. 누구의 공로인지로 모를 무성한 숲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가 베어 버리고 뽑아 먹는 것이 투자가 아니다. 그 숲은 믿음, 희망, 사랑으로 만든다고 안셀름 그륀 신부는 책에서 전하고 있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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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22 [16:57]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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