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엄길청 칼럼] 7-8만 달러의 미래 짐작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8/19 [10:30]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사실상 우리나라가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부터 4만 달러까지는 연 평균으로 2-3%의 성장률을 유지한다면 8년-1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남은 기간을 10년여 안팎으로 본다면 2030년 전후에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나이가 40-50대인 사람들은 아마도 퇴직을 앞둔 무렵에 우리나라가 4만 달러 소득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대통령이 2019년 8.15 경축사에서 오는 2050년이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7-8만 달러에 달하고, 2045년이면 남북한 평화통일도 가능할 것이란 큰 소망을 펼쳤다. 이런 전망은 대략 수치상으로 앞으로 매년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동안 1인당 소득을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를 달성하는 단계에서 3%대의 평균성장률을 유지한 나라는 미국, 호주, 핀란드, 노르웨이 정도이다. 그리고 2%대를 유지한 나라는 캐나다,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이 있다.

 

하지만 독일과 뉴질랜드는 불과 1%대 경제성장률로 이 구간을 느리게 지나갔고, 프랑스와 일본은 아직도 이 구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무려 1992년에 3만 달러를 넘어서 이 구간에 장기간 들어와 있고, 프랑스는 2004년에 3만 달러에 들어왔는데 현재도 4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턱밑에 있다. 독일도 1990년에 통일을 하고 1995년에 3만 달러에 들어와서 이제 45,000달러 정도이니 좀 느린 편이고, 영국도 2002년에 3만 달러에 들어와서 이제 겨우 4만 달러를 넘은 상태이다.

 

그러나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나라인 미국은 일본, 독일 보다 늦은 1997년에 3만 달러에 들어와서 2008년에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은 뒤에도 다시 재정비하고 분발하여 지금은 5만 달러를 넘어섰고, 머지않아 얼마정도를 지나면 곧 6만 달러를 지나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 미국 앞에 덩치 큰 고소득 국가는 아무도 없다.

이제 우리가 겪을 소득 4만 달러 시대로의 국가적인 삶의 이동을 생각해본다. 앞서의 여러 나라 예로 보면 정치사회적으로 고용과 복지와 재정의 문제를 어찌 할 것인가에 우리의 선택지가 있어 보인다.

 

독일과 일본은 종래의 고용체질을 유지하기 위해 경영혁신과 산업구조의 혁신을 천천히 추진하다가 1%대의 성장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또 통일의 부담이 컸고, 특히 일본은 일자리의 보전과 특유의 소비절약으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0%대를 오르내리며 그만 길고 긴 “잃어버린 시대“의 늪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그 사이에 재정구조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캐나다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은 이 구간에서 사회주의적 복지재정 지출정책을 많이 반영하는 정부가 집권을 대체로 오래 한 가운데 경제성장을 이끌어 실업의 부담도 좀 있으면서 2%대의 성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미국은 그 중에서도 경제성장률 3.4%, 실업률 5.2%, 물가상승 2.4%를 보이며 성장을 했다. 우리가 만일 앞으로 쭉 이런 속도라면 2050년에 7-8만 달러가 가능할 수도 있다. 미국은 지식혁신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디지털혁신과 기술혁신을 추진하는데 중점을 두어 기존 산업에서 실업의 부담은 있었지만 성장을 어느 정도 지속 시켰고, 당국은 금리와 통화의 유연한 조절로 국내외의 투자도 일정하게 자극하면서, 시장에서의 소비자물가 추이도 경제성장률 안에서 일정하게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르웨이는 대체로 사회주의 정부가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성장률 3.1%, 실업률 3.7%, 물가상승 2.3%의 비교적 균형 잡힌 경제운용을 하며 이 구간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르웨이의 수치이다. 물론 인구 5백만 명에 국가의 석유유전이 있는 나라를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국가운영방식에서 참고가 될 만한 나라이다.

 

노르웨이는 우선 공공연금의 지원자금을 국가가 가진 원유수익에서 지나치게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연금이 있는 공공분야의 국민들이나 여유가 있는 일반 국민들도 65세가 정년이지만 62세에 조기 퇴직을 유도해 그 자리에 젊은 국민의 고용을 높이고 재정투자와 지원을 통한 산업과 기업의 기술개발도 장려해 직장 만들기와 근로자의 소비안정도 돕도록 했다.

 

이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에 직장근로자 출신 가정이 많은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나라이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상속자산이 취약한 입장이라 먼저 우선적으로 직장소득자로 배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고령자 직원의 임금이 더 오르기 전에 조기퇴직을 유도해 바로 정형화된 연금생활자로 이전시켜 자신들의 생활 소비를 스스로 제어 하게 하면서, 대신 그 사회적인 여력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만드는 것이 국가적으로 효과적이다. 얼마 전에 어느 정치인이 “청년사회상속법”을 발의란 일도 다 이런 배경에 있다. 이런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어느 정당이든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저 다 되는 일이 아니다.

 

미국과 같이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는 강력한 법치를 앞세워서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에 좀 더 의존할 수 있겠지만, 우리처럼 5천년을 한 자리에서 같이 살아온 민족끼리는 더 이상의 치열한 생존경쟁은 우리 사회나 국가의 힘이 감당하기에는 이미 힘든 경제현실로 보인다.

 

물론 지난 세월에 성과는 컸지만, 산업발전과정에서 대기업 육성모델과 교육엘리트 역할모델을 주로 활용하여 결과적으로 오늘의 빈부격차를 키운 것이 이제는 균등분배의 사회정의 구현이란 요구로 시대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가 되었다.

 

이 같은 현실 인식은 우리 국민이면 그가 누구든 이제 4만 달러로 가는 길이서는 다 같이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하고, 지금이라도 가급적 고용기회를 미래가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선배들은 남은 삶들을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내심 사회적으로 획정(delimitation)하는 집단욕구의 공감적 자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달리 큰돈이 없기도 하겠지만 70대-80대의 혹자는 번 돈을 다 쓰고 죽자던가, 어느 50-60대는 그렇게 간절하던 버킷 리스트를 만들던 일들을 이쯤에서 그만 저 가슴 속에 담아두고, 이제 후배에게 사랑의 종자돈으로 그렇게 우리의 생산경제와 국가재정을 건실하게 넘겨주면 어떻겠는가. 초근목피(herb-roots & tree-barks)로 시작한 우린 원래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고대 철학자 장자가 그런 말을 했다. 인생은 무위자연(leaving nature as it is)이라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 많은 젊은이들이 7-8만 달러는 고사하고, 4만 달러의 벅찬 고갯길에서 조차 준비 안 된 모진 세월과 사투를 벌어야 함을 앞선 여러 나라들이 절절히 설명하고 있다.

 

차제에 애국을 위한 불매운동을 계기로, 시니어국민들은 혹시 나도 모르게 가슴에 스며든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불씨가 있다면 (평생 고생만 한 자신의 세대를 생각하면 한번 쯤 위로받고 살만도 하겠지만) 그것도 한번 나의 조국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불매리스트에 올려보면 어떨지 싶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미래의 인식은 7-8만 달러의 시대에 예상되는 사회상이다. 우선 이 수치는 불과 0.1%의 극소수의 국민들이 주도해서 달성한다는 점이다. 지금 소득이 6만 달러에 가까운 스웨덴은 중위수 가구소득이 약 9천만 원 내외인데, 실제는 0.1%가 전체 부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도 90% 이상이 상속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전체 수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상속세가 없다. 최상위층 부자와 소득자가 전체 수치를 만드는 일은 역시 6만 달러를 바라보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그 위의 7-8만 달러 세상은 또 어떤 사회이겠는가. 덴마크가 바로 그 곳에 있다. 일반 덴마크 국민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하루하루 살기는 편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덴마크의 소위 평민(?)인 보통의 국민들은 희망이나 꿈은 원래부터 큰 게 없었다고 한다. 그걸 그들은 “휘게(hygge)문화”의 숙명적 토양이라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런 덴마크 인들의 삶을 겉으로만 볼 때, 누구는 여유가 흐르는 그 사회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소확행”이라는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원래 북유럽의 그들은 오래 전에 엄연히 귀족이 살고 있던 국가들이다. 사실은 스웨덴 노르웨이도 다 역사의 배경이 그렇다. 그런 그들은 지금도 소리 없이 최상류층의 부담을 근간으로 하여 정치적인 사회복지국가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최저 소득자에게도 최소한의 세금을 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은 고소득자에게 그렇게 높던 소득세율도 대체로 29-60% 안팎의 권역을 두고 대체로 30%정도로 조율을 해서 국민이라면 일정한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으며, 특히 부가가치세를 25%로 비교적 높게 두어 소비하는 모든 이가 세금을 다 내게 하는, 더 이상의 무한정 무임승차 사회는 유지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은 이런 배경으로 증여세와 부유세와 재산세도 없앴다. 세상의 앞날은 이렇듯 정말 누구도 모른다.

 

올바른 정의구현과 따뜻한 공정사회 건설에 힘쓰는 요즘 정치인들이 펼치려는 세상너머에는 이런 어느 역사도 넘지 못한 하늘(sky)만큼 높은 “성곽(castle)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참 인생의 고뇌와 고단함에는 끝이 없고 답도 없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불현 듯 어떤 낯선 드라마가 떴나보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네이버 블로그
기사입력: 2019/08/19 [10:30]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39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