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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 칼럼] 유럽 남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여행 이야기 - 1편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7/01 [16:55]

 

 

[한국인권신문=정혜련]

스페인은 풍부한 광물을 탐내던 로마 침략으로 약 600년간 지배당했고, 711년엔 북아프리카에서 침입한 무슬림이 800여년 군림하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갈등하다가, 1492년 이사벨 여왕이 기독교 왕국으로 통합하고 이슬람교도를 철수시키며 국토 회복 운동을 성공시켰다.

 

그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해 황금시대를 열었고, 1936년 ‘프랑코’ 장군의 독재 체제 아래 있다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하며 비로소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처음 만난 스페인은 갈회색 바위로 이루어진 민둥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비가 와서 그런지 을씨년스럽고 척박해 보였다.세월호 추모용 노란 리본이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표시라서, 아파트나 건물에 ‘카탈루냐’ 국기와 노란 리본을 달고 분리 독립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몸에 좋은 발사믹 식초·오일·포도주를 먹고 긍정적인 예쁜 언어를 쓰는 민족이란 자부심으로, 2040년에는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 자랑한다.

    

그런데 뜻밖에 1992년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1등을 한 ‘황영조’ 선수의 조각상이 ‘바르셀로나’ 언덕에 우뚝 서 있었다. ‘와우~’ 이런 곳에서 황영조 선수 동상을 보니 기쁘고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서니 그때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 벅찬 감동으로 짜릿했다.

    

다음 날 해발 1,235m ‘몬세라트’산의 가파른 절벽위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트램(노면전차)을 타고 이동했다. ‘몬세라트’산은 거대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푸른 하늘과 맞닿은 절벽 위 바위는 살아 움직이는 듯 신비로운 절경을 만들어 낸다.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죽기 전에 봐야할 1001’ 중 하나 ‘검은 마리아상’이 있다. 이 상은 양치는 목동들이 하늘에서 성스러운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 빛이 떨어진 동굴을 찾아가 발견했다고 한다. ‘마리아’가 들고 있는 구슬을 만지면 어떠한 소원이든 다 이루어진다고 해, ‘몬세라트’ 수도원은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성지가 되었다.

    

발렌시아 구조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역작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된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은 고래 뼈를 모티브로 설계해 물위에 떠 있는 고래처럼 보이는 건축물로, 거대한 수족관과 IMAX 스크린이 있고 수중 놀이기구와 보트를 탈 수도 있으며 공연도 하는 최첨단 과학 단지이다. 발렌시아 해변과 강 끝자락에 스페인 건축 기술로 집대성시킨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 박물관은 야경까지도 아름다웠다.

 

날이 저무니 과학박물관 하늘은 보너스까지 선사한다. 화려한 구름과 노을은 주황색 불꽃이 되어 화산 터지듯 변화무쌍하게 ‘매직아워’ 하늘에 걸작품을 쉼 없이 그려내었고, 강렬한 색감으로 붓 터치 화폭 같은 석양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를 한 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운 ‘알함브라’ 궁전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알함브라를 볼 수 없는 그라나다의 장님이다’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종교 전쟁 중에도 파괴를 면했다. 한때 집시들이 거하며 황폐하였다가, 19세기에 복원하여 이슬람 건축 중 가장 빛나는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정열적인 스페인을 기대하며, ‘플라멩고’와 투우의 도시이자 안달루시아의 꽃 ‘세비야’와 ‘헤밍웨이’가 사랑한 아름다운 절벽도시 ‘론다’로 향했다. 18세기 42년에 걸쳐 완공된 ‘론다’의 상징 ‘누에보’ 다리는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깊이 120m 되는 협곡다리로,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으로 이어져 있다. 구시가지 절벽에 위치한 좁은 골목엔 이슬람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고 ‘헤밍웨이’가 사랑한 산책로가 이어지며, 그 옆으로 ‘론다’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누에보’ 다리 옆 찻집에서 커피 한 모금 넘기니,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조상은 유적을 잘 보존해 눈부신 보물로 남겨주었고, 후세들은 조상의 업적을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배우며 계승하는 문화를 이어간다. 조금씩 여행의 가치를 알아가니 삶의 의지와 지표도 달라짐을 느낀다.

    

<다음 호 연속>

 

정혜련 1112jh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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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1 [16:55]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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