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엄길청 칼럼] 다시 선물경제로 돌아오는 세상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5/07 [09:04]

 

 

    

[한국인권신문= 엄길청]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1925년에 그의 저서 “증여론(essal sur le don)"을 통해 인간은 선물을 주고받는 교환과 증여에 의해 사회구조가 작동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 인디언인 치누쿠(chinook)언어로 포틀래치(potlatch)란 단어는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란 의미로서 오늘날에는 선물경제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단어가 되었다. 모스는 아메리카의 포틀래치, 남태평야의 쿨라, 뉴질랜드의 하우(hau) 등의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 선물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초임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가치가 같아야 하는 등가교환이 아닌 부등가의 주고받기와 답례의 의미로서 오늘날 시장경제의 등가교환과는 그 함의가 다른 것을 설명한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바로 누군가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돈을 내고 누군가는 그 혜택을 받는 이 선물경제의 도입과 확산을 놓고 뜨거운 정치사회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선물경제의 국민적인 논란은 점점 무상교육으로, 노인기초연금으로, 최저임금으로, 청년지원금으로, 이젠 북한지원금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삽시간에 번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찬성론자들은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휴머니즘(humanism)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에 비해 반대론자들은 퍼주는 정책, 즉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비난한다.

 

그런가하면 2018년 국민소득 구조는 최하위 20%의 가구소득인 1분위 가구소득의 70%가 이전소득이라는 각종 무상소득이 차지해 이미 선물경제가 저소득층에게는 국민의 기본소득 구조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더욱이 적령기의 젊은이들이 4차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인해 이전의 산업조직사회의 직장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결혼이나 출산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은 집집마다 제각각 형편은 다르지만 이제는 그래도 무언가를 먼저 하나라도 물려주어야 자녀들이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제 때에 어른 노릇을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증여에 대한 생각들도 견주어보고 있는 게 요즘 세태이다. 지금은 정치 노선에 따라 반응의 온도 차이가 큰 문제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현실은 선물경제의 작동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게 될 것은 틀림이 없다. 

 

누군가가 사업을 시작하고 그 일에 필요한 사람들 찾고, 원료를 사들여서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든 것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들이 시장경제의 기본이지만, 그 원동력은 개인의 재정적인 성취동기이다. 그래서 사업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경영을 한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사업을 시작하고 일을 벌이게 되면 그 일이 꼭 개인의 재정적 욕구를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는 전과같이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 시장은 빠르게 손에 들어온 정보가 공유되고, 아는 것의 학습이 전파되고, 고객들이 스스로 경험을 혁신하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사업가의 이윤과 성공이 꼭 기다리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 서울 충무로의 영화거리에서 100개의 신작영화가 나오면 그중에서 1-2개 성공하는 것이나 요즘 창업의 성공가능성이나 점차 진배가 없을 양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사업가나 투자가의 도전은 왜 일어나는가, 그것은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사회적 선행이고 누군가의 공동체에 대한 자기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정부나 지자체는 누군가가 이 같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전과 달리 이런저런 지원을 많이 해주려고 한다. 창업지원자금도 대주고 세제혜택도 늘려주고, 판로도 도와주기도 한다. 그 일로 인하여 지역에는 일자리가 생기고, 시장이 활기가 돌고 사람들이 자기소득을 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청년이 일자리를 얻으려면 사업가들의 이 같은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경우에 경영은 선물(present)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원래에도 상품이나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시장에서의 모든 이의 행동은 구매나 만족이나 보상이란 등가거래의 의미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업하는 일을 장사라 부르기도 하고 돈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업가들은 우선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만들어 먼저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그 일에 관한 협력을 주변에서 수평적으로 구한다. 마치 영화를 만드는 일이나 같은 과정의 일들이 이제 여러 사업의 현장을 채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건 판촉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사회적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에 가깝다. 돈을 구하고 사람을 모으는 일은 그 다음의 순서이고, 우선은 사업가가 내 생각을 세상에 던지고 그 사회적 효용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른에게서 배우고, 또 학교에 다니는 일들은 그의 인생을 담아내는 프리젠테이션의 훈련이 될 것이다. 이미 자기재능을 기초로 하는 예능분야는 공개적인 프리젠테이션이 많은 매체의 노래경연 등으로 나오고 있으며, 나아가 자신을 표현하는 1인 방송이나 유트브 형식으로도 등장하고 있다.

 

이제 점점 사람 중에는 애써 모은 자기재정을 관리함에 있어 수익만 생각하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나서 투자하려는 선한의 행동으로 드러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선의의 투자자를 향해 매일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이나 기술의 건전한 프리젠테이션들이 매체보도나 정보망을 타고 우리 곁을 찾아온다.

 

만일 이런 행동들이 자리를 잘 잡으면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이 말하는 고유성(uniqueness)과 관계성(relatedness)을 바탕으로 설명되는 신성한 경제(sacred economy)나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ness capitalism)가 책에서 현실로 걸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니 가정의 달 행사가 많은 5월에 내수소비 경제지표가 좋아진다면 이 또한 선물경제의 증거일 수 있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글로벌경영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네이버 블로그
기사입력: 2019/05/07 [09:04]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42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