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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 칼럼] 화려한 봄날을 감사하게 맞이하기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3/26 [09:22]

 

 

    

[한국인권신문=정혜련]

운동 안하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려니 컨디션이 별로 좋지가 않다.

그래도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날이라 억지로 나지막한 산꼭대기로 올라서니 새로 설치된 레드 브라운 빛 벤치가 반가이 맞는다.

‘헉헉’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기대보니 산뜻한 산 내음이 코끝에 있다.

관산에서 연결된 앵자봉까지 언젠가는 등반 하자는 남편의 계획을 귓등으로 흘리며 제 멋에 겨워 콧노래 흥얼거리니 맑은 공기가 떼창하고 정신도 맑아진다.

아직 누런 풀과 낙엽 세상이지만 여전히 푸른빛을 띤 나무들은 추운 겨울 잘 견디었다고 함박 미소 날리고 산수유는 이곳저곳에서 노란 꽃으로 몸단장한다.

 

언제나 고향처럼 편안한 숲길을 내려오며 오가는 동네 분들과 인사를 나누니 모두 밝은 목소리로 화답하고 시골 길은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니 집 근처에서 겨우내 말라 있던 풀들과 나무들을 모은 영농 잔재물과 폐기물을 소각하는 이웃이 있었다.

작년에도 불을 놓아 우리 집 옆 공터 마른풀을 다 태웠었는데 또 불을 놓으니 이웃이라 말은 못하고 즐거웠던 마음은 급냉이다.

 

점심을 먹고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니 담 너머 연기가 자욱했다.

놀라 튀어 나가 보니 우리 집 펜스 안으로 이미 작은 불꽃들이 여기저기 춤을 추고 있었고 잔디는 ‘스물스물’ 검게 타들어 오고 있었다.

남편은 겨우내 꽁꽁 싸매어 놓았던 수도를 뜯고 긴 호스를 연결 하는데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다행히 바람이 빈터 쪽으로 불어 불이 옮겨 붙는 속도를 늦추어 주었고 난 부엌에서 물 조리개에 물을 받아 뛰어다니며 불붙은 곳에 뿌리기를 반복하며 급한 마음에 불길을 발로 밟으면 큰 불꽃은 실내화 양옆으로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불이 ‘후루룩’ 커다란 고사목으로 옮겨 붙더니 다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집 뒤쪽은 개울가가 있고 가파른 산인데 날씨가 가물어 물은 별로 없고 마른 풀들만 잔뜩 인 곳에 불똥이 떨어져 대형 산불이 날 긴박한 상황이 되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우여곡절 끝에 호스가 연결되어 물을 뿌리며 불길을 잡았지만 고사목에 붙은 불씨는 바람이 불면 또 불꽃들이 일렁였다.   그때 하늘에 소방헬기가 나타나 물을 뿌려주고 소방차가 도착하여 소방관들이 잔불들을 완전 진화해 주었다.

가끔 TV에서 보던 화재가 집 마당에서 일어나고 헬기에서 물을 뿌려주니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놀라 정신이 몽롱하고 꿈꾸는 것 같았다.

 

남편 ‘버킷리스트’ ‘앵자봉’ 숲길 다 날아가고 9시 뉴스에 나오는 줄 알았다.

불길이 잡힌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윗동네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와 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예부터 불구경, 싸움구경이 젤 재미있다고 하는데... 

당해보니...  넋이라도 있고 없고...

블루베리, 감나무, 장미와 잔디에 불길을 빨리 잡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며칠 후 화단의 소나무들이 화염에 화상을 입은 듯 점점 누렇게 변해 가는 것을 보니 화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옮겨 심은지 6년 된 소나무들 매년 전지하여 예쁘게 모양내고 정성 들여 정이 잔뜩 들었는데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 앞으로 어찌 지켜볼지 한숨만 나왔다.

그렇지만 눈부신 생명의 봄날이 오니 자연의 순리대로 다시 찬란한 빛을 뿜으며 독야청청 푸르른 소나무로 우뚝 서길 소망한다.

 

봄에는 모든 것이 말라 있어 불을 놓으면 안 되고 대낮에는 불길 번지는 것이 잘 안보여 순간 대형 화재가 된다는 소방 교육을 들었다.

급한 마음에 발로도 불을 껐다고 하니 불을 진화하다 옷이 불길에 휩싸여 화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까 발로 불을 끄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겁 없는 행동이었는지 소름이 돋았다.   

머피의 법칙처럼 지인의 아버지는 담배 불이 야산으로 번져 진화하다 돌아 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담배 불이 큰불이 되듯 아주 작은 나태함이 큰일로 번지기도하고 한 순간 실수나 부주위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의외로 허다하다.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 대부분이 논, 밭두렁을 태우다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데 산림이나 산림인접지역에서 소각행위는 절대 금지하고 영농 잔재물 처리방법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예민해진 우리를 편안하게 안정을 찾게 해주시고 헌신해 주신 소방관과 경찰관께 감사를 드리며 큰일을 당해보니 세금을 낸 보람이 느껴지는 날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어스름해지는 저녁녘에 폭탄 터지는 굉음이 울려 뒷마당으로 나가 보니 아랫집에 몸에 불이 붙은 사람 2명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놀라 119 신고를 하려는데 손이 떨려 제대로 눌러지지가 않았고 말도 엄청 더듬으면서 간신히 신고했던 기억이 난다.

 

젊은이들이 본드 흡입을 하다 담뱃불을 켜는 순간 터지면서 몸에 불이 붙었는데 안타깝게 한 사람은 사망했고 한 사람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하였다.  

몸에 불붙은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달려드니 옆방 노인은 놀라 정신 줄을 놓고 있었고 나중 응급차로 실려 가던 악몽이 되살아나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불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미술시간에 엄청 그렸던 불조심 포스터가 새삼 떠오른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자나 깨나 불조심!’ 불조심 표어에 담긴 뜻이 새삼스럽고 생각없이 스쳐 지났던 산 속에 시뻘건 불조심 팻말이 마음속에 각인된다.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강력하게 부르짖어 본다.   불조심!  또 불조심!!

긴 겨울 움츠리다 봄맞이로 들떠 있었는데 어마 무시한 화재 사건으로 정신 번쩍들어 앞으로 불조심 철저히 할 것이며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이미 벌어진 흉흉한 기억 모두 덮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각오로 화려한 봄날을 감사하게 맞이해 보려한다.

    

- 2005년 양양 산불 진화에 동원되었던 산림 공무원 수기 중 -

“불길과 불길이 서로 부딪칠 때 상상할 수 없는 폭음과 함께 엄청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바람을 타고 낙하산처럼 이 산 저 산으로 불이 옮겨갔다. 

마치 미사일처럼 200m-300m씩 날아가는 불꽃들은 차량보다 더 빨리 지나갔다.  평상시 같으면 1주일 걸려야 번질 거리가 2시간도 채 안 걸렸다.”  

봄철 산불의 무서움을 잘 표현해 주는 글이라 널리 알림.

 

정혜련 1112jh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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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26 [09:22]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Jason 19/03/31 [19:26] 수정 삭제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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