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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작은 정부여, 안녕!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9/02/15 [13:54]

 

 

[한국인권신문=엄길청]

정부는 공공의 안녕을 지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시장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작은 정부론(small government theory)은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등 고전학파(classical school)들이 주로 주창한 이론이고, 현실에서도 특히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핵심정책의 기조로 삼아 세금을 줄이고 민간시장을 통한 공급정책(supply side)으로 국가를 운영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건국이후 군사정부 이래 공고히 다져진 중앙집권 주도의 경제성장의 폐해를 줄이고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를 풀고 민간으로 경제추동력을 이양하는 작은 정부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입장이다.

지금 정부도 여전히 규제해제 등의 정부역할 축소의 의지는 밝히고 있지만, 그러나 2019년에 들어서면서 국내의 상황은 갈수록 국가의 재정투자를 늘려야 하거나 사회지출도 증가시켜야 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어 작은 정부의 스탠스를 지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당장 정부는 2019년 초에 접어들자마자 이른바 예타(국가사업의 예비타당성검토)면제라는 특단의 조치로 전국 곳곳에 24조원 규모의 공공투자가 대규모로 조기에 집행되도록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총 사업 규모 500억 원 이상으로 정부 부담이 300억 원 이상 일 때 적용되는 예비타당성검토를 면제해 주기로 한 이번 특례사업들은 주로 낙후된 지역이나 일자리 공급이 자생적으로 쉽지 않은 지역의 공공투자 사업들이다. 장기적으로 시설운영의 적자부담을 감수하거나 투자의 경제성이 낮은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당장 이런 규모의 큰일들이 새롭게 필요하다고 본 상황인식 때문이다.

 

바로 일 년 전에 치러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강원도 지역에 지어진 대규모 시설투자들도 지금부터 수익성 유지가 어렵게 나타나고 있어 향후 지속적인 유지부담을 위해 강원도 지방재정의 허리가 휠 정도로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예타 면제사업이 필요한 허약하고 초라한 지역경제의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 대통령은 어떤 자리에 가서도 일자리 창출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부는 눈앞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살림이나 국가기능을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닥트리고 있다. 당장 대통령 취임을 시작하면서 공공일자리의 대규모 공급을 약속해 놓은 입장이라 이번 대통령이 현 상황에서 스스로 작은 정부를 정치소신으로 삼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타날 것으로 예견이 된다. 우선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거의 무형적인 지식가치의 상승에 투자하는 연구개발 투자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의 R&D 투자비중이 선진국의 1-2위를 차지할 정도여서 참으로 다행이고 든든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기업들의 투자방향이 설비투자나 건설투자 등에서 늘어나야 일반 국민의 일자리 공급이 증가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점점 고도화되는 우리 산업구조에서는 이런 유형자산적이고 인적요소 투입지향적인 투자가 잘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 빈자리를 정부의 공공투자가 나서서 해주려다보니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제부터 누가 정부를 맡아도 시장의 기능이 커지고 정부는 작아지는 세상은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너가는 형국이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는 당면한 가계부채 과잉의 문제도 길게 보면 점점 커지는 정부의 재정환경 아래서는 언젠가는 사라질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세상이 온다 해서 과연 개인의 문제를 언제나 정부의 재정에만 기대고 살아가야 하는지는 다시 저마다 살펴볼 진지한 삶의 과제들이다.

시장은 개인들의 현명하고 다양한 의사결정의 복잡한 조화로 이루어지고 발전해야 하지만, 점점 공공의 일원적 서비스가 많아지고 공유의 정형화된 이용체제에 순치되면서 개인들은 그 운용의 과실만 향유하고 의존하는 체제유지의 국외자(outsider)로 내쳐지게 될 것이다.

 

치열하고 총명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혜안을 가지지 못하고, 최적화된 규격과 일치된 행동의 공유사회에 이끌리다 보면 과연 정치적인 자존(political identity)이 살아있게 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요즘 여러 이슈를 들고 일단의 지지자들을 자기 U-tube의 성안으로 휘몰아가는 사람 중에는 참 용렬한(dishonorable) 치기배(snatcher)들도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인플레 우려 소리도 들리지만 우리 입장은 금리와 물가가 온전히 오르기는 어려운 구조가 상당히 길어질 조짐이다. 이럴 때 특단의 경쟁력만 있다면 가족종사자의 구성원이라면 원가나 관리비가 오르기도 어렵다는 말이 된다. 자영업이 어려운 것은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가업(family business)이 어렵다고 보기는 좀 차이가 있다.

 

평균보다 하루 4시간 이상을 더 꾸준히 일하는 자영업자에게서 사업의 정착이 높은 것을 볼 때, 자발적 근로의사를 가진 구성원을 가지면 여전히 해 볼만 한 것이 창업이라고 본다. 큰 정부와 작은 가업들은 그래서 같은 시대를 함께 뛰는 이인삼각(three-legged race)인 셈이다. 사회복지가 성숙한 서구 나라에서 큰 부자들의 가장 많은 보유자산이 곧 자기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주식지분(owner-shares)이라는 사실이 이점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소소한 것이라도 사적인 소유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정치적으로 민감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엄 길청(글로벌경영평론가/글로벌캐피탈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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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5 [13:54]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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