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길청 칼럼] 뉴욕의 새해

한국인권신문 | 입력 : 2019/01/02 [09:16]

 

 

[한국인권신문=엄길청]

세계 경제와 문화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은 실제 거주자는 다양한 다인종 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뉴욕을 건설한 백인 이민자들의 후예는 1/3정도이고, 흑인이 1/4, 히스패닉이 1/4, 그리고 동양인이 1/5 정도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로 뉴욕을 건설한 후 도시로 들어온 유색인종이 70%정도이다, 특히 맨해튼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아직도 많은 부랑인들이 있을 정도로 그렇게 근사하고 안정된 도시만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도시이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와 터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도시는 늘 더 커지고 또 부유층이나 중산층들이 늘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해야 하는 “분배의 역설”을 지니고 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같은 도시학자는 이를 두고 “도시의 승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뉴욕의 시장은 이제 거의 예순 줄에 들어선 재선의 블라시오라는 백인이다. 그는 시민정치가 출신으로 뉴욕대학과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한 진보적인 사람이고 부인도 흑인이고 자녀가 혼혈이다. 이전의 뉴욕시장은 역시 백인으로 존스 홉킨스대학을 나온 언론재벌로 알려진 블룸버그란 억만장자였다. 그가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12년 동안 개인재산을 시에 기부한 돈만 7천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진보적인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뉴욕은 더욱 초고층과 대단지의 도시재생이 한창이다. 그는 공공용지를 적극 활용하여 인근의 민간 용지를 전향적으로 개발하도록 통합개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그 주변에 낡은 도시 시설과 어려운 뉴욕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시장이 통합개발이란 용어를 사용해 여의도와 용산의 도시재생을 이끌겠다고 말한 내용도 이런 함의가 있을게다.    

얼마 전 대통령이 “포용성장”이란 말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그런가 하면 여당대표는 부유층이 사회적 후생부담을 흔쾌히 더 해준다면 보다 자유로운 개별적인 재정성장의 환경조성도 협의가 가능하다는 “사회 대 타협” 가능성을 제시했다.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성장하는 나라의 국가경영의 경험을 쌓고 나면 상당한 정책스탠스의 변화를 보인다. 지금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이고, 여당대표도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들이다. 국가의 실질적인 경제를 누가 이끄는지도 잘 알고,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다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상대적으로 크고, 여유계층의 재정적 성장의 정의로움에 대해 가치를 많이 두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디든 대체로 진보정치인 그들도 다 상당한 지식엘리트 출신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날 보편적인 성장과 안정을 누리는 사람들과도 과거를 공유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리더십 구조이고 지도자 세계의 현실이다.

 

진보주의자인 블라시오 시장의 뉴욕이 보수주의자인 전임 블룸버그 보다 더 과감하고 광폭의 도시재생이 활발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지금 맨해튼의 큰 재생프로젝트의 하나인 허드슨 야드는 기본 용적률이 1000%이지만 기부금 납부와 개발권 공공이양 등의 방법으로 인센티브 용적률을 더해서 무려 3300%가 된다. 

 

지난 날 서울의 상권은 누구 뭐라고 해도 종로와 을지로이다. 특히 을지로의 산업서비스 및 상업상권은 압권이었다, 그런 을지로가 지금 여느 지방도시의 마을시장만도 못하다. 충분히 글로벌 상권을 거듭 날 수 있는데, 바로 40년 전의 개발규정에 한정된 도시재생의 채산성의 문제이다. 그 주변에는 중구 동대문 성동구 등의 서민 주거지들이 있어서 종로나 을지로의 글로벌 수준의 도시개발은 바로 인근지역의 삶의 질이나 도시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게 바로 뉴욕이 시작한 포용적 도시재생이다. 서울이 미래지향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성장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서로 더 주고 더 많이 받아 나누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한 때 경제정의실천이란 시민운동을 한 서울시장은 소박하고 로맨틱한 취향의 사람인 것 같다. 지난번에도 부부가 함께 삼복더위에 삼양동 옥탑 방에서 서민생활을 체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수도이자 글로벌 도시인 서울의 미래를 위해 지금 새해에 할 일이 그런 보여주기 식 “낭만행정 이벤트” 만은 아닌 것은 최근 그의 언행으로 보면 본인도 잘 아는 듯하다. 다만 정치적 입장의 과감한 스탠스의 선회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가 아마 다른 큰 계획이 있어서 서울시 도시재생 정책 대전환에 주저한다면 서울시장으로서는 후일 역사의 평가가 직무유기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솔직하게 수정할 줄 아는 대통령에게 한 수 배우는 게 좋겠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부산시장이나 대구시장, 광주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 네 도시는 글로벌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시 2019년 새해를 맞는 곳곳의 뉴욕의 역동적인 재생현장 모습을 보면서 이제 선진국 미래는 대도시의 초지능형과 친환경의 디바이스 인프라구축과 글로벌리티의 포용적 수용임이 자명해 보인다.

 

엄 길청(글로벌캐피탈리스트/경영진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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