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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울림을 주었던 영화 ‘안시성’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8/11/22 [11:00]

 

 

[한국인권신문=정혜련]

‘카톡 카톡’ 영롱한 음색이 공중을 가른다.

아침 8시 20분 조조 영화보기 번개팅!   앗~싸!!

일 년에 서너 번 영화를 보고 수다와 맛난 점심으로 맘껏 ‘라온’(즐거운) 시간~

바쁜 시간 쪼개 늘 초대해 주는 후배 덕분에 우리는 새벽부터 신이 나 상큼한 공기 맘껏 들이 마시며 즐거운 하루의 빗장을 연다.

관람 후엔 영화 평론까지 곁들이며 이른 점심을 먹고 나면 하루가 이틀인양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고 뿌듯해하며 모두 화사한 미소 한 가득이다.

 

어느 날 아침, 가끔씩 새벽에 나가 영화 보는 것이 꽤 부러웠는지 이번엔 남편이 조조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우후 ~’ 신나게 달려갔지만 인터넷 예약은 잘 못하고 기다리는 것도 싫어해 무조건 상영시간이 제일 빠른 영화표를 끊는 아날로그 훼미리 등장이요!

다행이 유일하게 시간 맞는 영화가 ‘안시성’이었다.

 

‘안시성’은 역사적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사실이나 자료에 근거해 고증을 거쳤겠지만 문서나 문헌의 사료가 많지 않아 감독이 여러 가지 상상력과 픽션을 각색하여 만든 역사 영화 장르이며 전쟁 사극이다.

645년 고구려 시대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재현한 ‘안시성’은 초반에 주필 산 전투와 두 번의 공성전(성곽을 공격하는 각종 무기와 공격 요령)과 토산 전투 등 네 번의 전투를 다뤘다.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당나라 대군 20만을 몰고 고구려를 침략해 국내성, 요동성, 백암성을 함락시키자 고구려 ‘연개소문’은 개마무사, 태학 출신 군사 15만을 이끌고 주필 산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크게 패한다.

 

첫 장면부터 처참하게 죽어가는 고구려 군사들의 처절한 전투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바로 볼 수가 없는 피 바다, 죽음의 골짜기였고 영화가 아니라 선조들의 눈물겨운 역사라 생각하니 두려움이 너울처럼 덮치며 공포스러운 전투 현장은 진저리치게 참혹하여 가슴을 도려내듯 속내를 후벼내었다.

이미 여러 성을 함락시킨 당나라가 병력이 5천 밖에 되지 않는 ‘안시성’에 위풍당당 들이닥치자 그들은 40배 이상 많은 당나라에 완강히 저항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이끈 ‘안시성’ 전투를 펼치게 된다.

당 군대가 공성전 초대형 돌팔매 투석기로 공격해 성이 부서졌지만 성 밖은 흙이고 성 안은 돌로 되어 있어 목책(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을 설치해 당 군대를 막아내니 이번엔 사다리와 공성 탑으로 치열하게 공격해온다.

 

‘양만춘’ 장군은 모든 상황을 잘 살펴 명령을 내리고 지략과 전략으로 모든 공세를 막아내며 매 순간 상상 이상의 거센 저항으로 수많은 당 군대를 막아내니 가볍게 성을 함락시킬 줄 알았던 ‘당태종’은 당황한다. 

선조들의 용감무쌍한 용기에 감복하고 암담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으며 당 군대를 막아내는 순간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여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환호 하였다.

 

산발적 교전 속에 항복 하라는 말을 전해들은 ‘양만춘’ 장군은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끓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라며 고군분투한다.

많은 군사와 무기로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 자그마한 성을 이기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한 ‘당 태종’은 화가 치밀어 60여 일 동안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안시성’ 동남쪽 귀퉁이에 성보다 높은 토산(흙산)을 지어 넘어가 공격한다는 황당한 전략을 준비한다.

 

완성되어가는 토산은 공포였고 ‘양만춘’장군이 좌절할 때 성 안 꼬마들이 흙을 갖고 노는 것을 보고 토산 밑 동굴을 파 무너지게 하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침공이 시작되자 채광꾼들은 토산 아래까지 뚫은 동굴 지지대를 걷어내 토산을 무너뜨리며 스스로 동굴 속에 생매장되어가며 목숨 바쳐 ‘안시성’을 지켜낸다. 

 

당 태종이 두 달이나 걸려 공들인 토산이 무너지는 걸 허망하게 바라볼 때 ‘양만춘 장군’은 그 틈에 진격해 토산을 빼앗고 큰 충격을 받은 ‘이세민’이 총력전을 펼쳐도 ‘안시성’은 성 위에 목책을 쌓아 대응하였고 하루에도 6-7회 교전하는 피 튀는 공방전을 계속하며 총공세를 물리쳐낸다.

‘양만춘’ 장군은 토산을 점령하고 유리한 지형에서 버티었지만 군대 수가 너무 적고 화살과 불붙인 바퀴를 굴리며 방어하다 마지막 전면전을 치르던 즈음 ‘양만춘’장군은 주몽 신만 썼다는 대궁으로 멀리 있던 당태종의 눈을 맞힌다.  

 

패배를 모르던 ‘당 태종’은 눈을 다치고 토산은 ‘양만춘’에게 빼앗기고 겨울은 다가오고 군량미마저 떨어지니 패배를 인정하며 퇴각한다.

고당전쟁은 ‘안시성’ 승리로 막을 내리며 ‘양만춘’ 장군의 기백과 용기는 고구려 부흥 운동에 계승이 되었다.

사료를 찾으니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데 고구려는 멸망했고 당나라 실록에만 나와 있어 정확도가 떨어지고 각종 야사(민간이 저술한 역사)와 픽션(작가 상상력으로 창조된 것)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숨 가쁘게 몰아친 아픔 역사를 다시 기억하며 선조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며 피와 눈물로 지켜진 이 나라 이 땅을 지켜내야만 한다.

 

‘양만춘’장군의 뛰어난 전략과 좌절의 순간을 돕는 부관들이 굳건히 자리를 버티며 호위하는 많은 부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처럼 생명으로 지켜진 이 나라 대한민국 역사를 기억하며 위정자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의 모든 위기를 잘 감당해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안시성’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한참을 일어설 수 없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이자 우리에게 가장 통쾌한 승리인 살수대첩과 함께 중국에 대한 승리로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던 ‘안시성!!’

사방의 대국들의 침략을 이겨내고 약한 나라의 슬픈 현실 속에서 벗어나 세계 경제대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고 훌륭한 나의 조국이다.

 

역사는 나의 본질의 뿌리이다.   

나의 조국이 세계만방에 그 뿌리를 내리고 정상에 우뚝 서길 간절히 소망하며 남편과 ‘안시성’에 빠져 소심한 애국심을 불사른다.

 

정혜련 1112jh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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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2 [11:00]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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