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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칼럼] 우리도 가중평균 사회가 온다
 
한국인권신문 기사입력  2018/11/09 [09:12]

 

 

[한국인권신문=엄길청] 미국의 상하원 선거가 끝이 났다. 하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어 트럼프가 선거에서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상원에서 공화당이 여전히 다수당이 된 것이 트럼프에게 사실은 더 중요한 성과이다. 미국은 인구수대로 뽑는 하원의원이 435명이 있지만, 각주에서 2명씩 뽑는 100명의 상원의원이 사실상 상위의 의결기구이다. 하원이 의안을 발의해도 상원에서 통과해야 법이 된다.

 

미국의 동부의 주들은 아주 작다, 인구가 100만 명 남짓한 로드아일랜드도 2명의 상원의원을 뽑고, 인구가 4천만 명이 넘는 거대한 주 캘리포니아도 상원의원은 2명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들은 이민자들로 채워지는 대형주들의 의사를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북동부의 오래된 작은 주들에 사는 백인들의 주류사회가 언제나 국가를 좌지우지한다. 트럼프도 바로 그곳 출신이다. 그들은 말만 평등한 민주주의이지 가중치(weight)가 있는 민주주의인 셈이다.

 

이해찬 여당대표가 놀라운 발언을 했다. 기업들과 그들이 원하는 자유기업으로서의 각종 규제해제와 정부가 원하는 사회적 소득분배를 대타협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 이는 강경한 진보개혁주의자인 이 대표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마침 경제부총리를 경질하려는 순간에 그는 이런 말을 던졌다.  

 

내년 성장률이 2.6%대로 거론되면서 요즘 시중에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한계에 부딪친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구제가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즈음에 집권당의 초 강성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그 함의가 어느 나변에 있을까?

 

결국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업의 협조가 없이는 고용도 투자도 성장도 어려운 것을 진보정부가 스스로 시인한 셈이 되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이 여기서 더 기세를 올리면 이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질 것을 잘 알고 있는 눈치이다. 만일 이 대표의 언급대로 이렇게 된다면 현 정부 집권이후에 서슬 퍼렇던 적폐청산도 서서히 수그러들 전망이다.

 

인구 500만 명의 아주 작은 선진국 덴마크는 1899년에 이른바 9월 대타협을 했다. 기업이 노동자를 유연하게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되, 노동자에게는 노동3권을 보장하고 경영참여를 허용하고 소득을 안정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역사적인 사회적 대타협을 보았다.

 

이런 타협은 인근의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로도 번져갔다. 말하자면 기업을 하는 자본가들에게는 자유기업의 경영공간을 주고, 대신 노동을 하는 국민들에게는 소득안정과 삶의 평온함을 나누어 준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이 따뜻한 일상의 희구를 의미하는 휘게(hygge)라는 독특한 인생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그들만의 사회문화적 배경도 있다. 휘게는 요즘 우리 사회에 도 회자되는 소소한 행복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는 자본가나 기업들이 국가를 하나의 공동이익 주체로 인식하고 그 이익을 적절히 국가에 분배해 주면 각종 규제를 풀어 자유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정규직이나 고용안정이란 형식으로 직접소득을 얻게 하여 시중에 돈을 돌게 하기엔 우리나라에서 이미 진도가 빨라진 4차 산업혁명의 행보 속에서는 도저히 달성하기 늦은 탓이다. 결국 갈수록 고용사정이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을 내다보게 된 현 정부는 여기서 하루라도 빨리 기업의 이윤을 서민사회가 공유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임종석비서실장이 국회답변에서 더 이상 민노총이나 전교조를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는다는 놀라운 평가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일이다. 더 이상 특정한 그들의 이기적인 집단이익을 보호하기 보다는 보다 많은 국민들의 제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차원의 사회적 소득을 강화하고 안정화하는데 집중한다는 현 정부의 전략적 이동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이미 얼마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제 우리는 포용국가로 가야한다고 역설한 데서 도 잘 알 수 있다.

 

사실상 이 사회의 기업을 하거나 자본을 가진 기득권 국민들에게 민족과 동포로의 포용적 아량을 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사적인 이익을 제도적으로 국민들이 일정하게 공유하는 노력을 함께 하자고 대타협의 손을 내민 것이다. 이미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에도 이익을 공유하도록 권유한 최근의 여당의 언급도 나와 있는 상태이다. 점점 산업사회는 혁명으로 인하여 수평적 분업에서 수직적 계열화로 소득과 수익의 배분이 깊어지고 있고 좁아지고 있어서 정부만의 힘으로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공평한 분배를 감당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국면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동산 보유세도 머지않아 각종 토지개발이나 도시규제를 풀어 주고 바로 보유세를 도입하는 절차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 낮아지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건설경기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꼭 필요한데 이를 이런 식으로 빅딜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이나 민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사회적 혁신정치인들이 현실의 자산가들이나 자본가의 실체를 사실상 인정하는 역사적인 일이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논의의 과정이 간단치 않겠으나 우리는 이렇게 또 남북한 평화의 시대를 불현듯  앞당기듯이, 그동안 불신의 골이 깊은 사회 빈부계층 간의 양극화 불화도 사실상 거대한 사회적 합의로 이끄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듯하다.

 

엄 길청(공익경영평론가/글로벌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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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9 [09:12]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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