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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칼럼] 양승태 사건을 보면서, 다시 국민을 생각한다
 
박병률 기사입력  2018/05/31 [13:54]

 

 


법이 법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한 국가와 사회, 가정과 개인은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우리나라도 삼권분립이라는 형태를 갖추어 근대국가 이후의 대열에 발맞추어 나온 지도 오래다.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두’형의 안정적 시스템을 통해, ‘견제와 균형’으로 서로 보완하라는 의미다.

 

역시 법에도 3심제라는 안정적인 형태의 시스템이 있다. 그 삼심제의 취지는 대법원으로 하여금 맘대로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완벽성에 보다 다가서서 최대한 인간과 자연의 보편 타당한 가치를 살리려는 노력과 진실의 과정이다. 헌법과 법률, 관습과 정치적 시대적 환경에 따라 법의 적용과 집행이 구체적이고 명료하고, 진지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법은 삼심제라는 틀 속에, 상위법 우선의 원칙과 특별법 우선, 신법 우선의 법칙과 법률 불소급의 원칙, 민법에 있어서의 예외성 있는 관습법과 조리 우선의 원칙, 헌법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 헌법 자체의 포괄성과 추상성 그 범주의 역사성 시대성 등 모든 제 조건은 법원의 독립성이라는 외투를 입고, 공정하게 서 있어야 한다.


법이 권력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고 왜곡·거래 되어 집단과 개인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도 아니고, 지켜야 할 의무도 없어진다. 법원이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은 심각하다 못해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도 그 지위와 동떨어지고 국정에 역기능적인 국정운용으로 국민에게 유무형의 피해와 불안을 조성할 때에는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지난 역사와 최근의 촛불혁명에서 목도했다.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대통령의 지위를 망각하고, 개인의 욕망을 권력이라는 틀에 담아 전횡했던 결과는 어떠했는가. 법관에게 있어 ‘법은 판결로 말해야 한다’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명제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충격적이 아닐까.

 

더구나 법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장’ 양승태 시절, 당시 그 법과 권력이 결탁하여, 자신들의 작고 협애한 진영의 입지를 위해 교묘한 논리를 들어 법치의 근간을 유린 했다는 보도와 사례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권 남용 실태를 보면, 사법권의 독립성을 스스로 헌납 한 거나 다름없는 것처럼 보인다.


갑을오토텍 통상임금소송, 콜트콜텍과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전교조 법외노조 및 시국사건 등 당시 청와대와 거래한 흔적은 고스란히 지워지지 않고 판결로 남아 있다.


사건별 구체적인 재심청구와 진행은 이제 시작되었다. 전임 법관이 재심 사건소송에서 그 사건과 관련하여 유죄판결을 받게되면 재심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대법원은 지상에 존재하는 이해와 인권의 보루가 아닌가.


수많은 안전핀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등 듣도 보도 못한 논리를 적용하여 청와대와 재계의 편에 섰다는 것은, 과학자와 의사가 미신을 맹목적으로 믿기로 결심한 것에 비견된다. 한반도에 신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아니, 전 대륙이 들떠있다.


모든 이목이 지금 우리에게 꽂혀있다고 하면 될까.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적어 볼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릴정도다.
이 모두를 형성한 근본적인 힘은 바로 ‘국민의 힘’이리라.
그 원천적 힘을 바탕으로 국정에 탄력을 받아 추진체가 순항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에 달라질 새로운 판, 문재인 정부의 탄생, 사법부의 환골탈태.
이제 남은 건 뭐가 있을까....
이 모두를 국민이 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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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31 [13:54]  최종편집: ⓒ 한국인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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